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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28. 2024

너희는 빵, 아빠는 치킨

23.08.22(화)

오늘도 오전부터 아내, 시윤이와 통화를 했다. 늘 비스무리한 주제다. 아내와 먼저 통화를 했고 시윤이와도 통화를 했다. 서윤이의 손과 발, 다리에 생겼던 수포들도 거의 자취를 감췄고, 시윤이는 애초에 얼마 생기지 않았고, 수족구의 전염력은 거의 사라진 듯했지만, 아내는 그래도 조심하는 차원에서 밖에 안 나갔다. 게다가 차도 일시적으로 한 대 뿐이라 아내와 아이들이 쓸 차가 없었다.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이랄까.


소윤이가 얼마 전부터 ‘깨찰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빵 가게에서 파는 건데 ‘그래, 먹자’, ‘그래. 사러 가자’ 하고 미룬 게 이미 여러 번이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기 전에 집 근처의 빵 가게에 갔다. 시윤이는 아내와 함께 집에 있겠다고 해서 소윤이와 서윤이만 데리고 나왔다. 딸 둘의 손을 잡고 걷는 기분은 매번 뿌듯하고 괜히 자랑스럽다. 아들이 주는 동질감이나 든든함과는 다른 묘한 감정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찰떡같이 이해할지 모르겠다. 딸과 아들을 모두 키워 본 사람은 알 거고, 딸을 여럿 키워 본 사람은 더 많이 공감할 거다.


서윤이는 치즈스틱, 시윤이는 고구마생크림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시윤이가 원하던 고구마생크림빵은 없었다.


“소윤아. 그거 말고 시윤이가 뭘 좋아할까?”

“땅콩크림빵?”

“그래? 시윤이 그거 좋아해?”

“네. 지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보통 좋아했어여”


나보다 시윤이를 더 잘 알지도 모르는 (그럴 가능성이 큰) 소윤이의 말을 신뢰하기로 했다.


“시윤아. 고구마생크림빵은 없대. 그래서 땅콩크림빵 사 왔는데”


소윤이의 예측대로 시윤이는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빵은 저녁을 먹고 나서 먹었다. 다들 저녁을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는데도 빵까지 잘 먹었다. 아이들이 뭔가 먹는 걸 볼 때마다, 게으름을 쫓아내게 된다.


‘그래, 아빠가 열심히 벌게’


운동을 다녀와서 치킨을 한 마리 시켰다. 어제 아이들을 발라주느라 몇 점 못 먹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치킨을 엄청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가 지나면서 숙성이 됐는지 어제의 그 바삭바삭함과 입이 델 듯 뜨거운 기름의 온도가 그리웠다.


“여보. 치킨 먹을까?”


사실, 왜곡된 질문이다. 아내는 잘 안 먹으니까.


“여보. 나 치킨 먹고 싶은데 여보는 안 좋아하잖아. 그래도 괜찮아. 생활비에서 쓰는 거라 아내의 결제가 필요했다. 너그럽기 짝이 없는 아내는 흔쾌히 허락했다.


얘들아. 아빠도 먹고 살아야지. 치킨 먹고 힘내서 너네 치킨 더 많이 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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