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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Feb 28. 2024

1년 전만 해도

23.08.23(수)

아내는 저녁에 K의 아내와 만나는 약속이 있었다. 둘(아내와 K의 아내) 다 꽤 한참 동안 기나긴 간병 육아의 터널을 지나다가 이제야 끝이 조금 보이고 여유가 생겨서 성사된 만남이었다. 난 K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끝나는 시간을 조금 앞당겨서 아내들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아내는 내가 저녁으로 먹을 반찬까지 만들어 뒀다. 아이들에게는 계란밥을 해 주면 된다고 했다.


“아빠. 계란 두 개 넣어 주세여”

“두 개? 그냥 한 개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엄마가 두 개씩 넣어 주신다고 했었어여”

“아, 그랬어?”


계란 하나 더 얹었을 뿐이었는데 다들 계란이 많아서 좋다고 하면서 잘 먹었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이제 소윤이, 시윤이는 웬만하면 스스로 샤워를 한다. 덕분에 저녁 시간의 육아 강도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 부작용도 있다. 서윤이는 아직 혼자 씻지 못하니까 씻겨줘야 하는데 그게 몇 배는 더 귀찮아졌다. 자녀를 먹이고, 씻기는 건 부모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이지만 늘어지다 보면 그게 그렇게 귀찮을 때가 없다. 고작 4살 밖에 안 된 서윤이에게


“서윤아. 너도 이제 스스로 씻어 봐.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아직 멀었다. 이제 기저귀를 거의 다 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짓이겨진 똥을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덕분에 삶의 질은 향상됐다.


모든 걸 끝내고 각자 자리에 누웠는데 서윤이가 한참 동안이나 잠들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잠들지 않으면 상관이 없는데 자꾸 떠들고 언니와 오빠에게 장난을 치고, 갖은 핑계를 대며 들락날락 했다. 덕분에 여러 번 강력한 훈육의 시간을 가지게 됐고, 서윤이는 슬픔 속에 잠들었다. 문득, 서윤이에게 전혀 훈육을 하지 못하고 그저 애지중지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게 불과 1년 정도 전이었다. 이런 감정이 든다는 건, 훈육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섞였다는 증거였다. 영 찝찝했다.


서윤이는 아내가 돌아오고 나서 잠깐 잠에서 깼다. 거실로 걸어 나온 서윤이를 품에 안고 물어봤다.


“서윤아. 아까 아빠한테 혼나서 속상했어?”

“아니여”

“안 속상했어?”

“네”

“그래? 괜찮았어?”

“네”

“아빠가 서윤이 엄청 사랑하는 거 알지?”

“네”

“서윤이는?”

“아빠 사랑해여”


늘 느끼지만, 애들이 나보다 크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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