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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01. 2024

너의 이름은

23.08.26(토)

축구를 하고 와서 아내와 아이들을 모아 놓고 태명 후보를 발표했다. 서너 개 정도의 후보를 알려주고 각자 가장 별로인 것부터 말해보자고 했다. 신기하게도 다들 비슷했다. 그렇게 하나씩 제거하고 남은 태명은, ‘윤이’였다. 공교롭게도 아무 의미가 없는, 그냥 ‘어차피 ‘0윤’으로 이름을 지을 테니 익숙한 걸로 부르자’라는 취지였다. 그렇게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우리 집 넷째의 태명은 ‘윤이’로 결정됐다.


“아빠. 세차하러 언제 갈 거예여?”


아이들은 언제 세차를 하러 갈 건지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대충 허기를 채우고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세차장으로 갔다. 서윤이는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잘 설득해서 아내와 함께 머물도록 했다.


한창 땀을 흘리며 세차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서윤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몰라도 서윤이와 비슷하네’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게 아니라 서윤이였다. 우리가 나가고 나서 서윤이가 너무 슬퍼하기도 했고, 밖에 나가고 싶어 해서 그냥 나온 거라고 했다. 얼른 세차하러 가자고 난리였던 소윤이와 시윤이도 막상 너무 덥고 힘드니 흥미를 잃었는지 어느새 아내와 함께 그늘진 곳에 앉아 빵 먹는 데 열중했다.


점심은 짜파게티를 먹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잘 안 먹었다. 집에서 워낙 담백하게 먹다 보니 조금만 자극적이어도 잘 먹지 않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생겼다. 서윤이는 거의 먹은 게 없었다. 아내가 해 준 거라면 몰라도, 몸에 좋지도 않은 걸 계속 더 먹으라고 하기도 좀 애매했다.


“그래, 서윤아. 그만 먹어”


덕분에 내가 엄청 많이 먹었다. 엄청 배가 불렀다.


오후에는 바닷가에 갔다. 마찬가지로 아내는 집에서 쉬라고 하고 내가 세 명을 데리고 나왔다. 바닷가에서 축제가 열렸는데 일과 관련해서 살펴볼 것도 있고 하니 겸사겸사 나왔다. 아시는 분이 부스를 받아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각각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 커피박으로 만든 키링에 색칠하는 체험을 했다. 소윤이는 특유의 꼼꼼함으로 마지막까지 몇 번이나 덧칠을 했다. 그에 비해 시윤이는 일필휘지였다. 개인적으로는 시윤이의 작품이 더 내 취향이었다. 산책을 조금 더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아내와 아이들만 먹었다. 난 점심에 먹은 짜파게티 덕분에 여전히 배가 불렀는데, 역시나 조금 지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누운 뒤, 아내는 요거트가 먹고 싶다고 했다. 이제 아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윤이’가 먹고 싶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도 가능했다. 요거트를 사러 가면서 햄버거 가게에도 들렀다. 아내는 요거트, 난 햄버거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보. 이번에도 입덧 심하려나?”

“그러지 않을까?”


셋 모두 심했으니 이번에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괜찮지만, 조만간 기나긴 ‘입덧의 터널’에 입장할 거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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