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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01. 2024

즐거운 산책의 마무리

23.08.27(주일)

온 가족이 1부 예배를 드렸다. 내가 속한 남선교회에서 점심 준비를 해야 해서, 2부 예배를 끝까지 드리기 어려웠다. 나 혼자 1부 예배를 드리면 될 일이었지만, 그러자니 아내와 아이들이 따로 차를 가지고 교회에 오는 것도 영 번거로운 일이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도 1부 예배를 함께 드리기로 했다. 아내는 예배를 두 번 드리는 셈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지난 주에 교회에 못 간 덕분에 ‘교회’를 향한 그리움이 폭발 직전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점심은 콩국수와 잔치국수였다. 회장 집사님이 대부분의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셔서 특별히 힘들 건 없었다. 보조 및 잡일 정도가 나의 역할이었다. 아이들은 예배가 먼저 끝나서 점심도 먼저 먹었다. 소윤이에게 서윤이의 식사지도(?)를 부탁했다. 평소에도 하는 일이긴 했다. 소윤이 정도면 이제 꽤 든든하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차이랄까. 시윤이는 아직 든든함을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시윤이도 소윤이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해야 할 판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시윤이는 자기가 누나와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주까지 오후 순서가 없어서,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바로 집으로 오면 됐다. 늘 그렇듯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꽤 오랜 시간 교회에 머물렀다. 교회 2층에서 1층으로, 1층 로비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차로, 각 구간마다 이동하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이제 가자”


라는 말을 모두가 여러 번 했다. 다들 헤어지기 아쉬우니까 그렇다. 어른들도 어른들이지만 특히 아이들이 더 그렇다.


겨우 차에 탔다. 아내는 시내에 있는 마트에 가자고 했다. 모바일 상품권을 종이 상품권으로 교환해야 했다. 새 차로 드라이브도 할 겸 기분 좋게 시내로 나갔는데 안타깝게도 정작 마트는 휴무였다. 맛있는 커피를 사고 장을 보는 것으로 허탕의 구멍을 메우기로 했다.


“여보.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없어?”

“글쎄. 다 좋은데?”


난 결국 ‘고기’를 얘기했고, 아내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인간은 미련한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낮처럼 배가 불렀다.


“우리 산책하러 갈까?”

“네. 좋아여어어어어”


아내는 집에 머물렀고, 난 세 녀석과 함께 집에서 나왔다. 바람이 무척 선선했다. 기분 좋은 바닷가 산책을 마치고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우리는 나무 데크 끝자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신발 던지기를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 소윤이가 날린 신발이 옆에 앉아 계시던 분에게 갔다. 그 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괜찮다고 하셨다. 소윤이에게


“소윤아. 그러게 왜 그쪽으로 갔어. 이쪽으로 와”


라고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소윤이가 날 째려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꽤 한참 동안 자기 혼자 앉아서 막 신경질을 내면서 울었다. 소윤이의 울음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난 뒤에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니가 잘못한 일인데 괜히 남 탓 하면서 짜증 내지 말아라, 도대체 니가 왜 짜증을 내는 거냐’


가 주요한 메시지였다. 아마 소윤이도 당황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평소에도 이런 모습이 많았다. 자기가 잘못한 걸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 다른 상황을 끌고 들어와서 핑계를 대는 일이 많았다.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따끔하게 얘기했다.


소윤이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착잡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시윤이까지 침울했다. 즐거운 산책의 마무리가 그렇게 된 게 속상해서 그렇다고 했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아내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난 소윤이에게 직접 들으라고 했다. 아내는 소윤이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소윤이는 자기가 아빠에게 보였던 모습이 부끄러워서 아빠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나에게 못 이기는 척 가서 먼저 손을 내밀 것을 권유했지만, 난 거절했다. 부끄럽든 어떻든 간에 자기 잘못을 인정했으면 자기가 어떻게든 해결하고 사과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소윤이는 그대로 잠들었다.


나도 참. 다 지나고 나니 꼭 그래야만 했나 싶고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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