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8(월)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어서 장거리를 다녀왔다. 차를 사고 첫 장거리 운전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매우 만족도가 높았다. 이전에 장거리를 움직일 때마다 노심초사했던 걸 생각하면 어찌나 마음이 편한지. 고장 걱정 없이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아이들도 나와 비슷했다. 달리는 차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아이들에게도 적잖이 스트레스였나 보다.
오늘 모임은 어른들의 교제를 위한 모임이었지만, 자녀들이 워낙 많다 보니 자녀들을 위한 시간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작은 잔디밭이 있는 교회에서 모였는데 남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시윤이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아빠와 하는 축구도 재밌지만 팀을 이뤄서 경기를 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항상 있었다. 오늘 그 욕구를 조금이나마 풀었다.
지금 헤아려 보니 어른 10명에, 자녀는 19명이었다.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녀들은 다른 공간에서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또 이것저것 하면서 놀았다. 나이가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역할을 대신했다. 동생들의 민원도 해결해 주고 여러 상황을 이끌어 주기도 하고.
시윤이는 처음에 엄마 옆에 있을 거라고 하면서 괜한 생떼를 부렸다. 어른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엄마 옆에 있는 것도 상관은 없다고 했다. 시윤이는 한 5분 앉아 있었다. 자녀들이 모인 방에서 웃음소리를 비롯한 ‘재밌어 보이는’ 소리가 들리니까 곧장 그리로 갔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서윤이는 날이 갈수록 화장실 배변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있다. 아주 가끔 실수를 하기는 해도 이제 거의 완전한 단계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오늘도 서윤이는 여러 번 똥을 쌌다. 처음 갔을 때 양이 좀 적길래 ‘아, 얼마 안 돼서 또 와야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틀림없었다. 두 번째 갔을 때는 엄청 시원하게 쌌다. 마치 어른의 똥인 것처럼. 그게 문제였다. 물을 내렸는데 물이 안 내려가고 차올랐다. ‘뚜러뻥’이 없는지 살폈는데 안 보였다.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도 없었다. 빈 휴지통이 보여서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우고, 물을 내리면서 한 번에 부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변기 끝까지 차올라서 찰랑거렸다.
하루 종일 우리의 식사를 준비해 주고 계셨던, Y의 장모님이자 아내의 친구 L의 어머니이자, 나를 여전히 PD님이라고 부르시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에게 가서 물어봤다.
“아, 혹시 교회에 뚜러뻥은 없을까요?”
“아, 잠깐만요. 그 창고에 있을 텐데”
“거기 없더라고요”
“아, 그래요? 잠시만요”
“아, 네. 아, 아이가 똥을 쌌는데 막혀서”
마지막 말을 안 하면 나를 범인(?)이라고 생각하실까 봐 굳이 말씀드렸다. 서윤이는 먼저 들여보내고 혼자 화장실 주변을 서성였다. 다시 한 번 창고도 살펴보고 교회 주변에 혹시 없나 살펴보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그렇게 교회 밖을 서성이는 나를 보신 L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 저희 집이 가까워서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아, 네”
아마도 남편 분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신 모양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L의 아버지가 ‘뚜러뻥’을 가지고 오셨다.
“아, 감사합니다. 애가 똥을 쌌는데 막혀서”
또 굳이 설명을 덧붙였다. 내 이미지는 소중하니까. 다행히 한 방에 뚫렸다.
저녁까지 먹고 출발했다. 3시간 30분 정도 거리였다. 서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소윤이도 오는 길에 잠들었다. 시윤이는 너무 졸렸는지 집에 도착해서 깨웠는데 아기처럼 짜증을 냈다. 한 5분 정도 후에 정신을 차렸는데, 앞에 짜증 낸 건 자기 의식 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듯했다.
아이들을 눕히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내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고, 아내와 내가 나눈 이야기의 주제가 그랬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우울한 류의 감정이었다.
하나뿐인 내 아들. 내가 제일 많이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