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육아의 끝

18.09.12(수)

by 어깨아빠

소윤이랑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빠"

"응?"

"계란 냄새가 나니까 계란이 먹고 싶다"

"아, 계란 냄새가 나?"


응, 아니야. 아빠 방귀 냄새야. 아내는 목장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바쁘긴 해도 오전 시간을 포함해 늦어질 때는 오후 시간까지 훌쩍 지나간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도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목장 모임이 끝났다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소윤이 낮잠은?"

"오늘은 안 재우려고"

"왜, 이따 일찍 재우게?"

"그냥"


요즘은 보통 11시나 12시쯤 낮잠을 자는데 목장 모임 하느라 지나쳐 버렸고 너무 늦게 재우자니 밤잠이 늦어지는 데다가 오늘 밤도 아내의 독박 육아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과감히 낮잠을 건너뛰기로 한 것이다. 너무 늦은 낮잠은 고독한 밤 육아로 이어지니까. 졸음에 취한 소윤이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워지기도 하니까 퇴근할 때쯤 동태를 살펴서 여차하면 집에 들러 힘을 보태고 다시 나갈까 생각도 하고 있었다. 퇴근하면서 전화를 해보니 아내와 애들은 놀이터에 있었다.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괜찮아. 난 7시에 재우는 게 목표야"

"7시? 그럼 지금 들어가야 될 텐데 가능할까?"

"그럼"


난 카페로 가서 남은 일을 부지런히 해치웠다. 7시 30분쯤 자려고 누운 소윤이가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아빠, 보고 싶어여"


음성메시지라 아내의 기획 및 연출이 개입됐을 가능성은 다분했으나 기분은 좋았다. 서둘러서 일을 마무리하고

8시쯤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난 돌아가는 길이야"

"벌써? 금방 끝났네?"

"어, 부지런히 했지, 여보 나갔다 와"

"나? 갑자기?"

"어, 어제오늘 답답했잖아, 나갔다 와"


내일은 저녁에 약속이 있고 금요일은 교회에 가야 하고. 오늘이 아니면 아내가 나갔다 올 시간이 없었다. 집에 돌아가 아내와 바통 터치를 했다. 어차피 애들은 자고 있어서 그냥 불침번 역할이나 마찬가지다. 아내는 가계부를 챙겨나갔다. 분기별로 가계부를 쓰는 건가? 휴대폰 문자로 출금 문자가 몇 개 도착했다. 9월 예상 지출에 대해 아내가 이것저것 물어왔다. 카페에 가서 계산기 두드려 가며 이것저것 셈하고 살 것도 사고 그러다 좌절하고

그러는 아내의 모습이 안 봐도 선하게 그려졌다. 자유시간에도 가정 경제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경제권을 쥔 아내의 숙명이던가. 아무튼 나가서 계산기를 두드리든 멍 때리다 오든 드라마를 보든 어쨌든 집 안의 칙칙한 공기가 아닌 선선한 밤공기를 흡입한다는 것만으로도 아내의 숨통이 트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중간에 시윤이가 깨서 거칠게 울었지만 모르는 체 했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아내가 돌아오고 나서도 한 번 더 그랬는데 그때는 진정되지 않길래 내가 들어가서 다시 재우려고 했다. 한참 걸렸다. 계속 눈 떠서 나 있는지 확인하고 손으로 날 더듬고 잠든 것 같아서 몰래 나가려고 부스럭거리면 파닥 일어나고. 방 문은 열지도 못하고

베란다 창으로 도망쳤다.


어제오늘 많이 못 봐서 보고 싶긴 해도 지금은 아니다. 시윤아. 푹 자고 내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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