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13(목)
내가 출근해서부터 퇴근하기까지 아내의 일상은 이제 어느 정도 고정된 형태를 갖췄다.
[나의 출근 - 아침 식사 - 놀이터 - 낮잠 - 점심식사 - 놀이터 - 샤워 - 나의 퇴근 - 저녁식사]
물론 저 사이사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잔하지만 고되고 고된 일상도 함께 한다. 저 중 하나만 떼어서 맡더라도 엄청난 인내와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가 많은데 저걸 차근차근 차례대로 해내는 아내가 매일 놀랍고 놀랍다. 저녁에는 홈스쿨링을 같이 하게 될지도 모르는 (거의 같이 하게 되는 것으로 굳어진)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 그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좀 나누기로 했다. 첫째는 소윤이랑 동갑. 둘째는 시윤이랑 동갑. 소윤이랑 시윤이는 들어가자마자 자기 집인양 곳곳을 활보하며 어색함이라고는 전혀 없이 놀기 시작했다. 그 집 아이들도 굉장히 순해서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출몰과 주인 행세를 너그러이 받아들였다. 소윤이가 예전 같았으면 굉장히 낯을 가렸을 텐데 오히려 먼저 인사도 하고 말도 걸고 그랬다. 시윤이는 요즘 호통치기에 맛이 들렸다. 자기 뜻대로 안 되거나 누군가 자기를 방해하면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오늘도 자기 처지(남의 집, 남의 장난감)를 망각하고 빽빽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다 잘 어울려 놀기는 했다. 큰 애들은 큰 애들끼리 놀고 작은 애들은 작은 애들끼리 놀았다. 큰 애들은 둘 다 시끄러운 성격이 아니라서 같이 노는 것 같기도 하면서 따로 노는 듯, 굉장히 정숙한 분위기가 유지됐다. 작은 애들은 아직 같이 논다는 개념이 없어서 제 갈 길 가다가 우연히 조우하면 관심을 보이고 그러는 정도였다. 애가 넷이나 됐는데 굉장히 조용조용했다. 덕분에 어른들도 나름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꽤 오랜만에 어색한 만남의 자리였다. 부부가 함께 만나는 건 친분이 깊은 울산의 부부들을 만나거나 같이 일하는 형네 부부, 아내의 친구네 부부, 내 친구네 부부를 만나는 게 전부였다. 오늘처럼 부부가 함께 처음 만나는 자리는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전혀 모르던 가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달까. 비슷해 보였다.
큰 애는 계속 말 안 듣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동생한테 호통도 치고. 밥 먹을 때는 계속 돌아다니면서 잘 안 먹고. 둘째는 잘 놀다가도 누나한테 뭐 뺏기거나 그러면 막 울면서 엄마한테 매달리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울면서 성내고. 역시 애 키우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부모들이 우리보다는 조금 더 너그럽고 부드러운 듯했다. 반성해야지
소윤이가 낮잠을 30분밖.에 안 자서 밤이 되면 괴수로 돌변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주 잘 지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소윤이의 정서에 분명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엄마와 동생이랑 하루를 보내는 게.
만난 게 7시였으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10시가 넘었다. 얼른 씻겨서 재우러 들어갔다.
"아빠 오늘은 책 몇 권 읽어 줄거에여?"
"응, 한 권"
"너무 늦었으니까?"
"응, 한 권만 읽자"
책 한 권을 읽어주는 동안 아내는 이미 거의 잠든 상태였다. 시윤이는 아내 옆에서 뒤척거렸고 소윤이는 뭐라 뭐라 계속 쫑알거렸다. 결국 나만 살아남아서 거실에 나왔다. 아내를 깨울까 했지만 집에 오는 길 너무 피곤해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냥 뒀다. 나도 뭔가 피곤해서 막상 거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휴대폰 만지작 거리다 시간을 다 보냈다.
통계상으로도 목요일이 제일 고되다던데 육아인에게도 예외는 아닌가 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