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14(금)
원래 출근하는 길에 아내랑 애들을 병원에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온 가족이 늦잠을 자버렸다. 난 집에서 나가기 10분 전에만 일어나도 상관없으니 늦잠이라 할 수 없지만 꽤 준비가 필요한 아내랑 아이들, 아니 애들은 준비가 필요 없지. 애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아내가 나랑 비슷하게 일어났으니 함께 갈 수가 없었다.
"그냥 이따가 택시 타고 가든지 해야겠다"
소윤이는 내가 출근하기 직전 깨서 세상 못생기고 촌스럽지만 자주 보고 싶은 그런 얼굴로 등장했다.
"소윤아, 아빠한테 뽀뽀해 줄 거야?"
"안 해"
"그래, 알았어"
그렇게 튕기면서 출근하려고 신발 신으면 쪼르르 달려와가지고 뽀뽀를 시작으로 10가지 정도의 이별 의식을 거행한다. 뽀뽀, 윙크, 코 부비부비, 머리 위로 하트, 손 하트를 비롯해 왜 하는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요상 망측한 몸짓도 몇 가지 더해서. 시윤이는 못 보고 출근했다.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선 아내가 소윤이 사진을 하나 보냈다. [투머치] 라는 코멘트와 함께. 사진 속 소윤이는 공주 얼굴이 크게 프린팅 된 티셔츠에 노란색 속치마 위에 금박 땡땡이가 프린팅 된 레이스가 덧대진 치마를 입고 있었다. 아내의 분석이 정확했다. 평소 소윤이 옷을 입힐 때 아내와 나는 추구하는 철학이 비슷하다. 무난하게 무채색으로 튀지 않게. 아내와 나는 알고 있다. 정말 눈에 넣었다 빼도 아프지 않고 우리 눈에는 세상 어떤 아이를 몇 트럭씩 갖다 비교한대도 더 예쁜 소윤이지만, 어디까지 우리 눈에만 이라는 걸. 아내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막 예쁜 그런 얼굴은 아니지"
아내랑 내가 자주 하는 이 말도 어쩌면 부모의 사랑이 다분히 포함된 과평가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때문에 화려하고 예쁘고, 샤방샤방하고 블링블링하고 그런 옷들은 사지도 않고 누가 사줘도(거의 99%는 장모님) 교환이나 환불하기 일쑤다. 에그트리(아기옷 브랜드?) 스타일이 딱 아내와 나의 취향이며 소윤이한테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우리의 철학과는 다르게 소윤이는 네 살이 되면서 자꾸 핑크를 찾고 공주를 찾는다. 오늘도 시윤이에게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힌 걸 보더니
"나는 저런 옷 하나도 없어"
라면서 매우 침울해하길래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옷 중 그나마 가장 공주 옷스러운 걸 꺼내 줬는데 어찌나 좋아하는지. 버스 기다리면서 계속
"엄마, 나 어때?"
라고 물어봤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서 아주 무서운 경험을 하나 했다. 처음엔 사진을 보자마자
"이런"
하며 실소가 터져 나오던 게 자꾸 보다 보니까
'이 정도면 생각보다 괜찮네'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내에게 경계하자는 의미로 카톡을 하나 보냈다.
[이러다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입히게 될지도 몰라]
이럴 거면 차라리 조금 예쁜 공주 스타일의 옷을 잘 골라보자는 카톡과 함께.
소윤아, 너 예뻐 아빠 눈에는 세상 둘도 없는 미인이야. 아빠 눈에는.
다행히 소윤이 폐에 있던 염증도 사라지고 숨소리도 많이 좋아졌다. 일단 약을 좀 더 먹고 다시 경과를 보기로 했다. 병원에 다녀온 덕분에 소윤이 낮잠 시간이 많이 늦었다. 살짝 걱정이 됐다. 아내 혼자 애 둘을 재워야 하는 금요일인데 늦은 낮잠이 괜찮을지. 아내도 마음 같아서는 낮잠 안 재우고 밤에 일찍 재우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턱 밑까지 차오른 '숨 쉴 틈'을 향한 욕망이 너무 컸다.
퇴근했을 때는 놀이터에 있었고 조금 더 같이 놀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놀이터에서 만난 소윤이는 아까 그 공주옷이 아니었다. 역시 아내답다.
"소윤아, 아빠 교회 갔다 올게. 엄마 혼자 소윤이랑 시윤이 봐야 하니까 엄마 말 잘 듣고 잠도 얼른 자고. 알았지?"
나의 간곡한 당부는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찬양을 마치고 설교 시간에 아내에게 현재 상황이 어떤지 카톡을 보냈더니 매우 괴롭다며 답장이 왔다. 누운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 계속 잠을 안 자고 기침도 심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1시간 30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도 짜증 나고. 거기에 쉴 새 없이 들리는 소윤이의 기침 소리도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아내는 상황도, 본인의 마음도 감당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기침소리가 그렇다. 나도 아내의 천식 증세가 심해질 때면 걱정이 되기는 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기침소리가 듣는 나를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 때가 많다. 아내도 어릴 때
"가영아, 기침 좀 그만 해라"
라며 꾸짖는 듯 말하는 장모님의 말이 큰 상처였다고 했다. 기침이 죄다 기침이.
아내는 소윤이를 재우고 나와서 혼자 거실에 앉아 소윤이를 향한 미안함, 본인의 미성숙함 등이 버무려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꽉 막힌 답답한 심정을 해갈하기 위해 꺽꺽 울며 기도 했다고 했다. 집에 가서 보니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소윤이에 집중하다 보니 시윤이는 효자 노릇한 걸로 (훗날 시윤이 본인이) 오해할까 봐 적어두자면 강시윤도 만만치 않았다. 낮잠 자고 일어나더니 무한 울음 모드를 가동했다. 자빠져서 울고, 안겨서 울고, 매달려서 울고, 업혀서 울고, 엎드려서 울고, 앉아서 울고. 낮에는 시윤이 울음소리, 밤에는 소윤이 기침소리. 얼마나 괴롭겠는가. 오늘만큼은 아내의 고막이 Best Player of the Day.
천식을 앓지 않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하겠지만 설령 천식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그냥 덤덤히 받아들이고 싶다. (아직 그럴 깜냥이 아니지만 그리 되고 싶다는 말이다) 다른 수많은 질병들에 비하면 조금 불편하고 번거로울 뿐 생명에 막대한 위협을 가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천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지도 모르지만)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속상하기 시작하면 평생 울며 한탄해도 모자랄 거다. (라고 쓰고 실상은 그 누구보다 불같이 분노하며 울부짖고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애 키우는 게 그런 거 같다.
먹이고 재우는 거 하나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