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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0. 2024

맛도 향도 없는 음식을 찾아서

23.08.31(목)

아내는 오늘도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한 건 물론이었고, 내내 누워있기만 했다. 의욕도 힘도 없는, 그야말로 겨우 겨우 숨만 쉬며 사는 하루였다. 그만큼 아이들도 나름대로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을 모아 놓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어제의 메시지와 같은 내용이었다. 단 한 명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내 말을 기억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원래대로라면 소윤이는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교회에 가야 했다. 자기 상황에 관한 객관적인 판단 능력이 선천적으로 부족한 아내는,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오늘 피아노 못 가겠지?”


라며 고민하는 듯한 기운을 풍겼다. 아마 몸이 안 따라줬겠지만, 괜한 고민을 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불필요해 보여서, 출근하기 전에 ‘얼른 집사님께 연락해라’라고 재촉했다. 아내는 집사님께 메시지를 보냈고, 나도 안심하고 출근했다.


하루 종일 서윤이가 짜증을 많이 낸 모양이었다. 요즘 부쩍 짜증도 늘고 호통도 늘었다. 특히 오빠에게 어찌나 호통을 치는지. 아내와 나에게 그것 때문에 혼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짜증도 많이 낸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속상해 할 만큼, 서윤이의 짜증에는 웃음으로 대꾸할 때가 많아서 다행이다. 다행이 아닌 건가.


아내는 오늘도 먹고 싶은 건 전혀 없다고 했다. ‘무취무미’의 음식이 있다면 그런 건 좀 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게 ‘스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거 먹고 싶어’가 아니라 ‘왠지 그런 건 반응이 작을 것 같은데?’ 정도의 그저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에게 바람 쐴 시간도 주고, 아내가 먹을 만한 음식을 사러 가려는 의도였다. 먼저 카페에 들러서 레몬케이크와 스콘을 샀다. ‘먹을지도 모르는’ 걸 사기는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마 이것도 잘 못 먹을 거다’라는 생각이 더 짙었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차에서 기다려”


라고 할 때도 많다. 혼자 내렸다 타는 것과 자녀 세 명이 함께 내렸다 타는 건 생각보다 큰 차이니까. 오늘은 차마 그러기 어려웠다. 아이들도 하루 종일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썼을 거다. 그 수고를 향한 나름대로의 감사 표시였다(고작 차에서 내리라고 하는 게). 장을 보러 가서도 아이들과 함께 내렸다. 고작 ‘함께 내리자’라고 하는 그 한 마디에 신이 나서 튕겨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되도 않는 귀찮음으로 아이들의 먼지 같이 가벼운 욕구까지 말살했나 싶어서. 자연드림에서는 아내가 먹을지도 모르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모닝빵도 하나 샀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이 눕기 전에도 얘기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얘기했고 어제도 얘기했던 그 내용이었다. 체감상으로는 큰 효과는 없는 듯했다. 차라리 아무 말 안 하는 게 나으려나. 하려고 했던 것도 누가 시키면 괜히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말 안 해도 알아서 처신하려고 했는데 괜히 내가 말해서 청개구리 심보가 생기는 건가.


다행히도 아내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먹었다. 뭐라도 먹으니 다행이긴 했지만, 영양가가 조금도 없는 아이스크림이라 걱정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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