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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0. 2024

건강한 10개월을 위한 인내

23.09.01(금)

최근 며칠 동안 아내에게는 밤낮이 따로 없다. 밤이고 낮이고 내내 입덧이 심하다 보니 대체로 누워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게 된다. 어두워지면 밤이고, 밝아지면 낮이라는 걸 인지할 뿐 아내의 생활은 밤이나 낮이나 비슷하게 고통스럽다.


혹시나 오늘 오후에라도 산부인과 예약이 되면 가려고 했다. ‘윤이’를 보러 가려던 건 아니었고(물론 가면 보게 되겠지만) 아내의 입덧 약을 처방 받으려는 이유였다. 엄청난 졸음과 몽롱함을 유발한다는 부작용과 실제 후기가 있었지만, 일단 속은 조금이나마 나아진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아내도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약을 먹어봐야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당일 예약은 불가능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각각 뱃속에 있을 때, 이미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이 날로 심해진다는데 산부인과에는 항상 사람이 넘쳐났다. 당일 예약은 언제 불가능할 정도로. 여전히 비슷한 듯했다. 약효를 엄청 기대한 것도 아니었는데 못 먹게 되니 괜히 더 안달이 났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약이라도 먹으면 ‘혹시 극적으로 괜찮아지는 건 아닐까?’하는 기대를 막연히 품고 있었다.


아내는 탈이 났는지 식은땀이 나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어제 맛있게 잘 먹은 아이스크림이 의심스러웠다. 아이들 점심으로 김밥을 시켰다고 했다. 엄마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도 나름대로 고생이었다. 먹는 것도, 지내는 것도. 아내의 입덧과 함께 낮 시간의 일상도 잠시 멈춤이었다. 학습이고 뭐고 다 중단이었다. 외출도 나들이도. 아이들과 통화를 하면서


“얘들아. 내일 주말이니까 아빠랑 재미있게 놀자. 알았지? 조금만 참아.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아빠랑 주말에 재밌게 보내자”


소윤이는 자전거, 시윤이는 축구를 향한 욕구가 거의 머리 끝까지 차 있었다(서윤이는 잘 모르겠다). 주말이 되면 자전거를 타러 가기로 잠정적인 약속을 했다. 축구는 일단 다음에 기회를 보기로 했고. 안타깝게도 나의 반복되는 당부이자 가르침이었던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무엇보다 서로 다투지 말아라’는 먹히지 않았나 보다.


“오늘 정말 종일 싸우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내가 보낸 메시지였다. 누가 종일 싸우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빠의 당부’는 잠시 삭제된 듯했다. 아마도 시윤이와 서윤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서윤이와 소윤이는 잘 다투지 않는다. 서윤이가 일방적으로 신경질을 내거나, 소윤이 혼자 속상해 하는 경우가 많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안 다투는 건 아니었지만, 주로 은근한 신경전일 경우가 많다. 소윤이는 압도적인 논리와 전략으로 시윤이를 압박하고 시윤이는 당해내지 못하는 누나에 짜증을 내거나 억지를 부리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자주 다툰다. 서윤이는 자기가 오빠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기어오르고, 시윤이는 자기보다 한참 한참 한참 아래라고 여기는 서윤이가 깐족거리는 게 열 받고.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 했다. 반주나 특송 같은 순서를 맡은 게 없었지만 가고 싶었다. 일단 아내의 입덧을 생각하면 절로 기도가 나왔다. 거기에 잠시나마 아내에게 혼자만의 시간, 고요함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자기 한 몸 가누기도 힘든 와중에 아이들을 어떻게든 먹이고 입혀야 했던 아내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얘들아. 오늘은 너희도 기도 열심히 할 거지? 엄마랑 윤이 위해서”


교회에 가기 전에 얘기했고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자세에서 풍기는 느낌은 그랬다. 아빠의 어떤 직감으로 봤을 때, 정말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확실했는데 서윤이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분명했다. 엄마와 동생이 모두 건강하게 10개월을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건 모두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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