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3(주일)
아내는 교회에 가지 못했다. 혼자 아이들 셋을 데리고 교회에 갔는데, 소윤이가 어찌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직접적으로 아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역할과 책임의 정도가 어느 정도 정해졌다. 소윤이는 정, 시윤이는 부.
“소윤아. 서윤이 좀 잘 챙겨줘. 시윤이는 옆에서 잘 도와주고. 알았지?”
뭐 꼭 아내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평소에도 비슷하다. 소윤이는 요즘 유사시에는 서윤이의 엉덩이도 닦아준다. 소윤이가 아주 먼 훗날 ‘어렸을 때 동생 똥 닦아주는 건 정말 하기 싫었다’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건 현실이니까. 소윤이의 도움은 아내와 나에게 필수 조건이다. 닦아낸 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을 묻혀주면 된다(말은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제로는 그러지도 못하지만).
“소윤아. 아빠 오늘 예배 끝나고 제직회 있어서 조금 늦게 내려가니까 소윤이가 서윤이 밥 좀 같이 먹여줘”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말해뒀다. 나중에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예배가 끝나고 제직회를 하는데 소윤이가 서윤이를 데리고 올라왔다. 서윤이가 아빠와 밥을 먹겠다고 했다는 거다. 하긴 생각해 보니 그게 더 현명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나 아빠가 붙어서 먹여도 속 터지게 할 때가 수두룩한데, 그걸 소윤이한테 맡겼다니. 소윤이는 서윤이를 나에게 인계하고 내려갔다.
“서윤아. 언니랑 밥 먹지. 왜 올라왔어”
“그냥. 아빠가 도아더”
서윤이는 일부러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막내딸’을 길러봤다는 건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복이다. 한 8개월 뒤면 서윤이도 막내가 아닐지 모르지만.
“여보. 괜찮나요? 오후예배도 드리려고 하는데”
“응. 밥 챙겨 먹을게요”
챙겨 먹을 밥이 없는데 뭘 챙겨 먹겠다는 건지. 정확히 말하면 반찬이 없었다. 아마도 어제 먹고 남은 죽을 데워서 또 먹었을 거다. 다른 걸 먹을 만한 속이 아니기도 했고.
교회에 있는 동안, 나도 아이들도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가영 집사는 좀 괜찮은교?”
“가영 집사는 좀 괜찮십니꺼?”
“가영 집사 괜찮아요오?”
“야들아. 엄마는 어딨노. 괜찮나?”
아내도 아이들도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감사했다. 아내에게 이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여보. 여보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
교회에서의 모든 시간이 끝나고 나니 소윤이와 시윤이의 관심사는 ‘바로 집으로 갈 건지’였다. 이미 오후가 많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남은 시간에는 집에서 좀 차분히 보내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어느 정도 언질을 줬다. 어제처럼 밖에 나가서 놀고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대신 백화점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나의 필요에 의해. 커피 캡슐이 다 떨어져서 사야 했다. 밖에서 뭘 하는 건 아니어도 일단 시내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의 ‘귀가거부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듯했다. 딱 캡슐만 사고 돌아오는 건 너무하니, 프레즐을 사서 나눠 먹고 왔다.
저녁을 먹고 산책도 다녀왔다. 이건 순전히 아이들을 위한 행위였다. 마치 애견인들이 반려견과의 산책을 건너뛰면 안 되는 과업으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달까. 오늘은 교회에도 다녀오고 백화점에도 다녀왔으니 집 안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산책’은 왠지 느낌이 다를 거다. 그러니까 심심치 않게
“아빠. 우리 오늘 산책 가자여”
라고 던져보겠지.
오늘은 아이들이 던진 낚싯바늘을 덥석 물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