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4(월)
아내는 나를 걱정했다. 일을 하지 않는 퇴근 이후나 주말에도 쉼 없이 육아를 하거나 집안일을 해야만 하는 나를. 가끔 ‘얼마나 더 버텨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까마득한 것처럼 느껴져서 힘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괜찮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니 별 생각을 안 하고 무아지경 속에서 움직이면 차라리 낫다.
아내가 먼저 저녁 외식을 제안했다. 나와 아이들만 나가서 저녁을 먹고 오라는 거였다. 메뉴까지 먼저 제안했다. 집에 먹을 게 딱히 없기도 했거니와 그 와중에 아이들에게 뭔가 먹여야 하니 이런저런 애를 써 가며 고생할 내가 안쓰러워서 그랬을 거다. 주말처럼 하루 종일, 세 끼를 내내 챙겨야 할 때는 ‘뭐 먹여야 하나’가 고민스럽지만, 오늘처럼 일하고 들어와서 저녁 한 끼 챙기는 건 의외로 큰 고민이 되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에 뭘 먹었는지 파악하고 최대한 겹치지 않게, 그리고 너무 부실했다 싶을 때는 조금이나마 부실을 메울 수 있는 정도만 하면 된다.
“여보. 퇴근이 막막하고 그런 건 아니죠?”
“전혀 아니야. 난 가족중심주의”
퇴근 무렵에 아내가 다시 연락을 했다.
“여보. 나도 같이 가서 만두전골 먹을까?”
며칠 안 되긴 했지만 생소한 모습이었다. 아내의 입에서 먼저 뭔가 먹겠다는 표현이 나온 것 자체가.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했다. 일단 아내의 목소리가 사뭇 달랐다. 어느새 10년이다. 아내와 한 이불을 덮고 산 세월이. 목소리를 들으면, 특히 요즘처럼 특수상황일 때는 더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가영이 오늘 좀 괜찮네?’
괜한 제안이 아니었던 거다. 먹고 나면 너무 힘들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걱정스럽긴 했지만, 결국 아내는 함께 먹으러 갔다. 일단 반가웠다. 아내가 뭔가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게. 우리는 만두전골을 먹었다. 아내는 그 안의 핵심 재료가 무엇이든 ‘전골’ 종류의 음식은 대체로 선호한다. 불고기 전골, 만두 전골, 낙지 전골, 두부 전골 등등. 핵심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는 공통점 때문일 거다. 먹고 싶다가도 막상 마주하면 쳐다보기도 싫어지는 게 입덧하는 임산부의 일상일 텐데, 아내는 심지어 잘 먹기까지 했다. 할렐루야.
밥을 먹고 나서는 커피도 마셨다. 밥이야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정말 해로운 재료나 조리법이 아니라면 오히려 몸에 필수적인 거라고 해도, 커피는 이야기가 다르다.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오히려 더 팽배한 기호식품이다. 그걸 아내가 먹겠다고 하니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마치 아이들이 아플 때처럼 ‘뭐라도 먹고 싶다고 하는 게 어디냐’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아내는 커피도 맛있게 마셨다.
아이들을 눕히고 난 뒤의 아내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최근 며칠 마주한 아내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입덧하고 있는 임산부라는 걸 모를 정도였다. 그냥 평소의 아내 같았다. 오죽하면
‘이번에는 의외로 짧게 끝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까지 했다. 아내에게 생기가 도니 나도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보이는 것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