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5(화)
요즘에는 아침에도 바쁘다. 아내가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지 못하니까 여력이 되는 날에는 내가 아침을 차려주고 나올 때도 있다. 오늘도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나왔는데 너무 더웠다. 막연히 ‘에어컨을 틀 시기는 지났다’라고 생각해서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땀이 줄줄 흘렀다. 옷도 입고 머리도 하고 출근 준비를 다 했는데 땀이 나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특정 대상을 향하는 건 아니었지만 집에 있는 모두가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느낄 만한 짜증이었다. 아침부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출근하고 나서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여보. 아침부터 힘들었을 텐데 수고해 줘서 고마워요”
“아니야. 더워서 너무 짜증 내고 나왔네. 미안”
“더우면 원래 짜증남”
부끄럽다. 이 덜 된 인간의 본 모습이.
잠깐 교회에 가서 일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갔다. 산부인과에 가는 날이었다. 아내의 입덧약을 받기 위해서 조금 서둘러 예약을 했다. 간 김에 윤이도 만나고. 병원에 우리 같은 가족은 없었다. 대부분 아내 혼자였다. 가끔 남편과 함께 온 사람이 보였고, 우리처럼 온 가족이 총출동한 경우는 없어 보였다. 네 번째였지만 오랜만이라 그런지 꽤 조마조마했다. 너무 초반이라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우렁찬 심장 소리를 잘 들었다. 신기했다. 네 번째면 덤덤할 법도 했는데 여전히 두근거리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울컥하는 게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생명의 신비라고 설명하고 싶다. 아이를 셋 낳고 기르다 보니 생명의 소중함을 더 뼈저리게 느끼고, 생명의 생성과 탄생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그저 겸손해지는 마음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서윤이는 아직 너무 어리고) 이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고 그 근원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길 바라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은 아이들이 철저히 배제된다는 거다. 이번에도 수술을 할 테니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가정출산을 할 용기는 없고.
“아빠. 저는 엄마가 서윤이 임신했을 때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게 기억나여. 뭐냐면, 아빠가 서윤이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펄쩍 뛰면서 좋아했던 거”
맞다. 그때는 정말 그랬었다. 그전까지는 ‘상관없지 뭐. 건강하면 됐지’라고 얘기하긴 했다. 거짓은 아니었다. 진심이었지만, 감춘 진심도 따로 있었다.
‘그래도 딸이면서 건강하면 더 기쁘지 않을까?’
감사하게도, 생각만 해도 뭉클하게 만들고 한없이 기쁘게도 하는 서윤이가 태어났다. 이번에는 정말 상관이 없다. 물론 나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난 ‘지체 없이’ 딸을 고르겠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큰 상관은 없다. 정말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나와 아내의 나이를 고려하면 ‘건강’ 분야에서 큰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래도 저래도 장점 뿐이다.
딸이면 다시 한 번 막내딸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고, 딸 부자가 돼서 좋고, 시윤이가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아들이 되어서 좋고. 아들이면 시윤이의 남동생이 생겨서 좋고, 경험해 보지 않은 막내 아들을 경험해 볼 수 있으니 좋고. 쓰다 보니 약간 딸을 강력하게 원하는 것 같…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고 일을 하러 나왔다. 아내는 오늘 상태가 조금 좋았다.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반찬까지 만들어 놓고 기다릴 정도였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손이 꽤 많이 가는 반찬들이었다. 힘이 생겨도 누워서 쉬면 좋겠는데, 아내도 주부 본능이 장착된 건지 어렵게 확보한 체력을 반찬 만드는 데 소비했다.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표정과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았다. 어제에 이어서 ‘이번에는 진짜 짧게 끝나나?’ 하는 기대감을 품기에 충분했다.
물론 생각처럼 진행되면 인생이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