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Mar 12. 2024

Death Point

23.09.07(목)

요즘도 아침에 아이들이 깨어 있으면 모아서 짧은 연설(?)을 하고 출근한다. 내용은 항상 똑같다.


‘오늘도 잘 지내보자.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자. 너희끼리 다투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만큼이나 영향력이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진심이 통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자고 있어서 못 만나고 나오면 통화라도 꼭 한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혹시나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다. 없을 확률이 컸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애들이 00 가고 싶다는데”


돈까스 가게였다. 아내가 조금이나마 상태가 좋을 때라도 ‘고기’는 전혀 먹지 않았다. 고기의 응축이라고 볼 수 있는 돈까스를 아내가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아내는 파스타를 먹겠다고 했다. 돈까스 가게에서 파는 파스타가 과연 먹을 만 할지도 또한 의문이었다. 아무튼 퇴근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태워서 갔다.


퇴근하면 항상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또 뭘 먹었는지 물어보는데 요즘은 아이들 먹는 게 영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내가 제대로 한 몸 가누기가 어려우니. 소윤이는 조금씩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소윤이의 ‘해 보고 싶은’ 욕구와 아내가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이 만나서, 소윤이가 계란프라이를 해서 계란밥으로 아침을 차릴 때가 종종 있다. 시윤이가 자기도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게 제일 걱정스러운데 아직까지는 그러지 않는가 보다.


돈까스는 맛있게 먹었다. 아내도 파스타를 제법 잘 먹었다. 그래도 최근 며칠은 아내가 좀 나아져서 다행이었다. 입덧약의 효과이기도 할 테지만, 언제 또 나빠질지 모른다는 각오도 하고 있다.


저녁 시간에 극한의 상황으로 몰릴 때가 많다 보니 짜증도 많아졌다. 다른 건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 저녁의 모든 시간을 내가 맡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피로감이 꽤 크다. 물기가 다 빠진 걸레를 어떻게든 비틀어서 물방울을 꽉 짜내는 느낌이랄까.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별 거여도 충분히 다정하게 말 할 수 있는 일에도 자꾸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미안하다. 얘들아. 엄마, 아빠도 매우 힘든 시기야. Death Point랄까. 아빠가 엄마에게 조심하는 것처럼 너희들을 대하면 될 텐데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입덧약으로 얻은 작은 평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