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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3. 2024

누가 누구한테 짜증을 내지 말래

23.09.08(금)

형님(아내 오빠)네가 미국으로 가면서 일부의 짐을 우리가 가지고 오기로 했다. 장인어른이 트럭에 싣고 직접 배송을 하려던 계획도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화물 배송을 받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 시간에 받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아침 7시에 도착하도록 요청을 했다.


아직 잠이 채 깨지도 않았을 때, 도착했다는 기사님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집 앞으로 나갔다. 짐이 엄청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책장이 문제였다. 특히 책장의 일부는 혼자 들어서 올리기 어려운 무게였다. 기사님은 딱 배송만 요청받고 오신 것이었기 때문에 2층인 우리 집까지 추가 작업을 요청하려면 추가요금이 필요했다. 막상 기사님을 보니 선뜻 추가 작업 요청이 어려웠다. 금액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기사님 연세가 생각보다 많으셨다.


“기사님 혹시 이거 2층까지 같이 옮겨주실 수 있으세요?”

“아이고. 안 돼요. 다음 일정이 잡혀 있어서”

“아, 네”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무거운 책장 하나만 함께 올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함께 책장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1분 남짓한 시간에 결심했다.


‘아, 저분에게는 뭘 요청하면 안 되겠다’


너무 안쓰러우셨다. 마치 내 할아버지와 작업하는 느낌이랄까. 기사님은 돌아가셨고, 난 혼자 남았다. 하나씩 차례대로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른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의자, 전자레인지, 서랍장 등은 괜찮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옮길 만했다. 책장과 화장대가 문제였다.


책장은 부피도 크고 무게도 제법 무거웠다. 이미 비 오듯 쏟아지던 땀이 폭우처럼 흘렀다. 슬슬 짜증이 났다. 사실 책장은 애초에 별로 내키지 않는 짐이었다. 원래 우리 집에 있던 책장에 나름대로 애정이 있었다. 애지중지 닦고 광을 낸 건 아니었지만, 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책장이었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마련한 책장이었다. 장모님이 마련해 주신 혼수 중에 하나였다.


‘언젠가는 저 책장을 내 서재에 넣어야지’


라는 꿈을 담기도 했었다. 지금 집에 살기 전까지 총 네 곳의 집을 거쳤는데 그때마다 책장은 항상 거실이었다. 집이 좁아 보인다는 단점을 무릅쓰고 굳이 거실에 뒀다. 이번 집에 오면서 아이들 공부방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장이었다.


아내는 그 책장을 바꾸자고 했다. 형님네가 쓰던 책장이 더 새 것이니 바꾸자는 거였다. 처음에 완곡하게 ‘별로’라는 의사를 표현했는데, 아내도 완곡하게 ‘뾰로통’을 표현했다.


“여보가 바꾸고 싶으면 바꿔”


로 결론이 났고, 아내는 책장을 교체하기로 했다. 새로 들어오는 책장이 어떤 책장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받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별로였다. 나의 감정이 개입된 것인지는 몰라도 원래 있던 책장에 비해 나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단지 ‘조금 더 늦게 생산된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바꾸는 게 못마땅했다. 그런 책장을 나르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더 짜증이 났다. 원래 있던 책장의 책을 빼고 그 책장은 집 밖으로 옮기고, 새 책장에 다시 그 책을 옮기고. 별로 예쁘지도 않은 책장을 들이느라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꾸 화가 났다.


거기에 화장대도 불을 지폈다. 형님네 짐 중에 무엇을 가지고 올 것인지 아내와 얘기할 때, 내 기억에는 화장대가 분명히 없었다. 아무리 예쁘고 좋은 무언가라고 하더라도, 공간을 잡아먹는다면 굳이 들여 놓을 필요 없다는 게 요즘 나의 주된 방향이었다. 한 마디로 ‘없는 게 최고의 깔끔함이다’랄까. 갑자기 튀어나온 화장대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심지어 아내가 생각한 자리에 맞지도 않았다. 결국 거실의 생뚱맞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일련의 ‘짜증스러운’ 감정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 누구 때문도 아니고 나 때문에. 짜증스러운 기운을 얼마나 많이 발산했는지 모르겠다. 두 시간 넘게 짐을 옮기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끓어오르는 짜증을 차마 억누르지 못하고 내뱉었다.


모든 짐을 다 옮기고 나서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사죄 아닌 사죄를 했다.


‘너무 짜증을 내서 미안하다. 책장이 마음에 안 드는데 그것 때문에 힘드니까 더 화가 나서 그랬다. 무차별적으로 짜증을 내서 미안하다’


가 핵심이었다. 시윤이에게 특히 부끄러웠다.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짜증을 표현하는 건 너의 의지의 문제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그걸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다니.


아이들 공부방은 채 정리를 마치고 나오지 못했다. 대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오늘 너희의 숙제는 이거야. 이 공부방을 정리하는 거야. 알았지? 엄청 깔끔하게는 아니어도 이 책들을 책장에 다 넣는 게 오늘의 목표.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소윤이가 방에서 막 짜증을 냈다. 무슨 일인가 보니 책이 잘 안 꽂아져서 짜증을 내는 거였다.


“소윤아. 그렇게 할 거면 정리하지 마. 됐어. 너네 오늘 그냥 다 그대로 둬. 아빠가 퇴근하고 정리할 테니까 그런 식으로 할 거면 그냥 손 대지 마”


그러고 집에서 나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 짜증을 누구에게서 물려받고 배웠겠니’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집에 가서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김밥을 시켜 먹었다고 했는데, 마침 한 줄이 남았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하나 사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전에 이미 공부방 정리를 어느 정도 해 놓은 상태였다. 폭풍 칭찬을 해 주고 다시 집에서 나왔다.


아내는, 조금이나마 좋아졌던 며칠에 비하면 다시 안 좋아졌다. 울렁거림이 심해지면 기력이 약해진다.


“오늘 김치 김 참치 계란 이렇게 먹어야 할 듯”


난 정말 괜찮은데 아내는 미안해했다. 홀몸도 아니면서.


저녁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금요철야예배에 갔다. 소윤이는 고민 없이 가겠다고 했고, 서윤이는 조금 고민하다가 가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처음에 안 가겠다고 했다.


“시윤아. 엄마 저렇게 힘들어 하는데 가서 기도 안 할 거야?”


그랬더니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가겠다고 했다. 가면 너무 졸리니까 고민을 했나 보다. 앞에서 드럼을 치는 동안 셋이 쪼르르 앉아서 예배 드리는 모습에 힘이 났다. 게다가 소윤이는 오늘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수고가 많았다. 화장실도 데리고 가고 업어주기도 하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중간에 잠들었다. 기도를 마치고 일단 서윤이를 차에 태우고 왔다. 그 다음에 시윤이를 안고 내려가서 차에 태우고 왔다. 이 때도 소윤이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 짐도 들어주고, 동생들 옆에 있어주기도 하고. 집에 도착해서도 서윤이와 시윤이를 차례대로 안고 올라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의 체력을 꽤 많이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넷이 되면 이런 순간이 비일비재하겠다는 생각도 했고.


아내는 잠시 좋았던 며칠을 보내고, 다시 힘든 상태로 회귀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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