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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4. 2024

먹기 전엔 안 괜찮고, 먹을 땐 괜찮고

23.09.10(주일)

아내가 함께 교회를 갔다. 지난 주에 한 번 빠진 건데 엄청 오랜만에 함께 가는 기분이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너무 많이 느끼며 한 주를 보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아침에 가장 약효가 잘 드는 것 같았다.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을 때까지는 거의 정상인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그때 모습만 보면 엄살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몸 상태를 봐서 예배만 드리고 바로 가거나,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아내는 오후예배도 드릴 수 있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오후에는 엄청 힘들어졌다. 밥을 먹고 난 후유증이기도 했고, 원래 오후에 가장 힘들기도 했고. 아내가 정상이 아니었지만, 아내가 있으니 비로소 완전한 느낌이었다. 안정감을 느꼈다.


교회에서의 모든 시간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차에 타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여보. 혹시 먹고 싶은 건 없어?”

“나? 글쎄”

“커피는 안 마시고 싶어?”

“커피? 고민이네. 한 잔 마실까?”

“그럴래?”


‘맛있는 커피’를 사러 시내로 나갔다. 아내가 괜찮은지 걱정이었는데 그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커피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장도 봤다. 아내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도 파스타를 좋아했고,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오늘 당장 사 먹는 건 좀 그렇고, 집에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내가 만든 파스타가 아내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그러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서 파스타를 만드는 동안 아내는 안방에 누워 있었다. 먹을 때는 괜찮은데 먹기 전에 음식 냄새가 나면 너무 괴롭다고 했다. 문을 닫고 누워 있었다. 파스타는 항상 양을 가늠하기 어렵다. 잘 먹을 때는 너무 잘 먹고, 안 먹을 때는 너무 조금 먹고. 열 번이라고 치면 여덟 아홉 번은 잘 먹는 편이니까 양을 크게 잡고 만들었다. 막상 면을 삶고 보니 너무 많이 했나 싶었다. 소윤이도 옆에서 보다가


“아빠. 이건 너무 많은 거 아니예여?”


라고 했다. 면이 너무 많아서 익힌 재료와 한 번에 섞어서 볶지 못하고 나눠서 해야 할 정도였다.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아서 먹기 전부터 아까웠다.


아내를 불러서 다 함께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많다고 생각했던 파스타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다행히 오늘은 아이들이 ‘엄청’ 잘 먹는 날이었다. 아내도 제법 잘 먹었다. 남기는커녕 싹싹 비웠다. 다시 한 번 아이들의 먹성에 놀랐고 여기서 한 명 더 추가되면 어마어마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도 나갔다. 물론 아이들의 요청이었고 기꺼이 응했다. 늘 가는 바닷가 산책이지만 지겹지는 않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소윤이는 ‘달고나 뽑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오늘은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스크림을 사 줄까 혼자 고민했는데, 자기 직전에 찬 음식을 먹는 게 영 내키지 않아서 입을 닫았다.


주말이 끝났는데 딱히 아쉬운 기분이 들지 않는 건, 평일만큼이나 촘촘한 주말을 보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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