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만들어 준 평화의 밤

19.03.04(월)

by 어깨아빠


금요일부터 쉬어서 그런지 엄청 긴 연휴를 끝낸 느낌이었다. 차를 가지고 출근해서 그리 일찍 나간 것도 아닌데, 모두 자고 있었다.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와 준비를 하고 출근했다.


날은 다 풀렸는데 미세먼지 수치가 최악 중에 최악이라 어디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복닥거리는 아내가 참 대단하다. 그 고생스러운 와중에도 아내는 어제의 고난을 교훈 삼아, 오늘은 꼭 낮잠을 일찍 재워보겠다고 했다. 다 나를 위한 일이다. 아내가 자유시간을 가지는 월요일이고, 어제와 같은 사태가 발발하면 그 고통은 모두 내 몫이기 때문에.


[재우려고 하는데 엄청 뺀질거린다]


1시가 안 되어서 카톡이 왔다. 1시간쯤 있다가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1시 10분에 재움]


일단 다행이었다. 요즘 시윤이를 보면 이것보다 일찍 재울 수는 없다. 더 늦게 자는 경우는 허다해도. 아내는 오늘 일찍(나의 퇴근과 동시에) 나갈 거라며 각오를 다졌다. 언제나처럼 부다 그러기를 바라며,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퇴근했더니 소윤이는 나를 반가워했지만 반가워하지 않았다.


"아빠. 오늘은 좀 늦게 왔으면 좋았을 텐데"

"왜? 아빠 일찍 오면 엄마 금방 나가니까?"

"네"


그렇게 말하자마자 내 등 뒤에 올라탔다.


"아빠. 말타기 하자여 말타기"


깔깔 거리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웃음의 대가는 나의 연골이다. 언제나 내가 먼저 소윤이에게 부탁한다.


"소윤아.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아빠 무릎이 너무 아픈데"


층간소음은 둘째 치고, 내 무릎을 위해서라도 온 바닥에 매트를 깔고 싶다.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장난감이며 책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마침 소윤이가 다른 장난감(어지러움의 정도를 가중시키는)을 꺼내려고 하길래, 그때를 틈타 얘기했다.


"소윤아. 우리 여기 정리하고 놀자"

"아빠. 이거 먼저 하고여"

"아니야. 정리 먼저. 정리하기 싫으면 놀지도 못하는 거야"

"아빠. 이거 먼저 할래여"

"정리 먼저 하세요. 정리 안 하면 바닥에 있는 거 다 버릴 거야"


소윤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울먹거렸다. 조금 불쌍하긴 했지만 했던 말을 거두지는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리했다는 착각]에 가까울 정도로 소윤이의 정리는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이제 소윤이의 정리가 큰 표가 난다.


"우아. 소윤이 진짜 정리 열심히 했다"


아내는 어제 잘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즉, 전혀 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저녁 준비를 해서 아이들한테 차려 주고는 자기도 옆에 앉았다. 원래대로면 나가야 하는데, 왜 앉았나 보니까 생선 가시를 발라주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생선 때문에 발목 잡혔다"

"왜?"

"잔가시가 엄청 많아"

"아. 그래? 무슨 생선인데?"

"나도 모르겠어. 예전에 어머님이 주신 건데"

"엄마가? 이번에?"

"아니. 꽤 됐어. 잔가시가 너무 많아서 차마 그냥 갈 수가 없다"


가시를 발라내는 것처럼 섬세함이 필요한 일을 나에게 맡기는 건, 내가 아내여도 엄청 못 미더울 거다. 아내는 애들이 밥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앉아서 맨손으로 가시를 발랐다.


"생선은 잘못된 선택이었어"


아내는 애들 씻길 때쯤 나갔다. 다 씻겨 놓고 조금 더 놀다가 자러 들어가려고 보니, 애들이 입고 있는 내복이 몹시 꾀죄죄했다.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 너무 귀찮았다. 하긴, 힘든 것과 귀찮은 건 또 다르지. 아무튼 불쌍한 나의 딸과 아들은 조금 더러운 내복 차림 그대로 자러 들어갔다.


"아빠. 코 골지 마여. 시끄러우니까"

"소윤아. 그건 아빠 마음대로 안 된다니까"


재우면서 졸다 보면 자주 코를 코는 것 같다. 내 소리에 내가 놀라서 깨는 경우가 많으니까.



소윤이는 쉬이 잠들지 않고 계속 뭔가를 얘기했다. 코 골지 말라, 어느 물병에 물을 담아 놔라, 엄마 오면 자기 옆에 누우라고 해라, 엄마는 언제 오냐 등등. 시윤이의 빠른 취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라, 소윤이의 말이 시윤이의 잠을 방해할까 봐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소윤이가 몸을 일으켜 시윤이 쪽으로 가서 시윤이 얼굴을 한번 쳐다 보고 다시 누웠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시윤이가 잠들려다가 다시 깬 것 같았다.


"소윤아. 아빠가 움직이지 말고 자라고 했지. 얼른 자라니까"


조금 무섭게(나도 모르는 짜증이 섞여서) 말했다. 조용하길래 잘 알아 들었나 보다 싶었는데, 잠시 후 울음을 참는 듯한 소윤이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좀 미안했다.


"소윤아. 시윤이 깰까 봐 그런 거야. 얼른 자. 알았지?"


소윤이는 그대로 잠들었다. 시윤이는 계속 뒤척거렸다. 졸린 것 같긴 했다. 사실 이게 제일 무섭다. 이러다 언제 벌떡 일어날지 모르니까.


"강시윤. 얼른 자. 눈 감고. 손 빨지 말고"


낮고 근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오호. 작전이 먹혔는지 가만히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번 뒤척거렸지만, 그때마다 비슷한 톤으로 얘기했더니 얌전해졌다. 다행히 적당한 시간에 잠들었다.


[탈출]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애들이랑 건성으로라도 거실을 치우고 들어갔더니, 집도 심하게 너저분하지 않았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다행스러운 밤이었다. 물론 중간에 시윤이가 한 번 깨긴 했지만, 바로 옆에 누워서 토닥거렸더니 금방 잠들었다. 근래 보기 드문 여유로운 밤이었다.


이게 다 아내의 노고 덕분이다. 여보, 고마워. 앞으로도 월요일에는 꼭 1시 전에 낮잠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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