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천적, 미세먼지

19.03.05(화)

by 어깨아빠

끝나지 않는 미세먼지의 습격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어디 나갈 수가 없었다. 아내가 전해주는 일상도 다른 날과 다를 게 없었다. 밥 먹고, 치우고, 어지르고, 밥 먹고, 치우고, 어지르고.


어제 아내한테도 얘기했는데, 소윤이가 한참 더 어렸을 때 아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보가 일을 하고 싶으면 내가 집에서 애들 볼 용의가 있다"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하곤 했다. 용의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러고 싶다는 뉘앙스를 담은 적도 많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지하고 무모한 발언이었는지. 바깥의 일과 안의 일, 모두 힘들고 고되지만 안의 일이 뭔가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사지를 저릿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이제 조금 안다. 특히 요즘처럼 꼼짝 못 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날은 더더욱.


그나마 소윤이는 오후에 잠깐 하람이네 놀러 갔다 왔다고 했다. 원래 아내랑 시윤이도 가려다가 시윤이가 기침을 하는 게 영 걸려서(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하람이 동생도 있으니까) 소윤이만 보냈다고 했다. 하람이 외할머니가 와 계시는데 소윤이의 방문을 그렇게 반기신다고 한다. 다행이다. 어디 가서 밉보이지 않아서.


시윤이는 요즘 3음절 단어를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아꺼 → 아꺼야" "엄마 → 엄마가" 이런식이긴 하지만.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도 부쩍 많아지고, 구사하는 단어(라고 하기에는 엄마, 아빠만 식별 가능한 소리에 가까운)도 풍부해졌다. 언어 구사력과 함께 지능도 약간 향상된 것 같다. 오늘은 처음으로 단독 술래잡기를 했다. 무슨 말이냐면, 그동안은 항상 나랑 짝을 지어서 같이 숨거나 소윤이가 숨으면 나랑 같이 찾았는데, 오늘은 시윤이랑 소윤이가 각각 숨었다. 지겨웠던 숨바꼭질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줄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해 본다.


아내가 애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고 난 헬스장에 갔다 왔다. 오늘은 둘 다 금방 잠들었다. 아내는 거실에서 웹툰도 보고, 지인들과 연락도 하고, 뭐 할 일 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로맨스는 별책부록인가 하는 드라마인데, 저번에 엄마 집에 갔을 때 같이 보다가 아내에게 이게 정말 재밌냐고 물었다. 차라리 타요 시즌1이 훨씬 더 재밌겠다)


출출함에 냉장고와 주방을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아내가 얘기했다.


"만두라도 쪄 줘?"

"아니"


아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나의 표정을 너무 정확히 읽었다.


"만두 따위는 무슨 이라는 표정 같은데?"

"아아니이인데?"

"내가 꼭 다른 걸 얘기해주길 바라는 거 같네?"

"저어언혀어어"

"치?"

"아냐. 난 결백해"

"뭘 결백해. 누가 잘못했대. 생각 없다는 거지?"

"사 주면 먹겠지"


30분 뒤, 우리는 귀하디 귀한 오늘의 마지막 치킨을 가지고 오신 치킨집 사장님과 마주했다. (그럴 거면 헬스장에는 무엇하러 가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적자면, 헬스는 살 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죄의식을 지우기 위해 하는 면죄 행위 같은 거다) 치킨을 뜯으며 제주도 여행 가면 가볼만한 곳을 찾아봤다. 알차고도 행복한 치킨과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강시윤이가 또 걸어 나왔다.


부스스한 머리와 눈으로 나한테 오랬더니 나한테 왔다가, 엄마한테 가랬더니 엄마한테 가고. 뽀뽀하랬더니 뽀뽀하고, 안아달랬더니 안아주고. 제발 좀 한번 자면 안 깨고, 안 나왔으면 하는 게 진심이지만, 막상 나오면 그때만 볼 수 있는 그 모습에 매료가 된다. 아내는 주변을 정리하고 시윤이와 함께 들어갔다.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에나 다시 나오겠지.


내일은 아내가 차를 써야 하는 수요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머리에 각인되었고, 급히 자리를 정리했다. 힘겨운 출퇴근을 이겨내면, 즐거운 축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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