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0(주일)
지난 금요일에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매우 낙심했다. 어제 다시 확인해 보니 흐리기만 할 뿐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길래, 마음을 졸이며 눈을 떴는데 비가 오지는 않았다. 오예.
나는 매 주일이 그렇듯 목장모임과 축구로 바쁠 예정이었고, 오늘은 아내도 바빴다. 점심때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소윤이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생일을 맞은 친구의 생일 파티를 겸해 모이는 자리였는데, 소윤이도 같이 생일을 챙겨준다고 했다. (사실 거의 매년 그렇게 챙겨주고 있다)
그럼, 시윤이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에게.
소윤이는 새싹꿈나무 예배에 가고, 나랑 시윤이는 자모실로 갔다. 옆에서 사부작 거리며 잘 앉아 있던 시윤이가 갑자기 앞 쪽으로 걸어갔다. 시윤이 또래의 남자아이랑 엄마가 앉아 있었다. 좌식 책상을 두고 앉아 있었는데, 시윤이가 그 주변을 서성이더니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치즈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리고는 손을 떼지 않고 아이 엄마를 계속 쳐다봤다.
"먹고 싶어?"
"응"
"그래. 먹어"
치즈를 손에 넣은 시윤이는 함박웃음과 함께 나에게 달려왔다.
"아빠아"
"시윤아. 그거 니꺼 아니잖아"
"아빠아"
"고맙다고 인사드렸어?"
"응"
"다시 가서 인사해"
"고마"
애들이라고 다 이런 건 아니던데, 우리 애들은 먹을 거 앞에서는 부끄러움이 없다. 니 장난감이 내 장난감이고, 내 장난감은 니 장난감인 자모실에서 시윤이는 자기가 가지고 간 건 하나도 없었으면서 양 손에 자동차와 상어 인형을 쥐고 있었다. 부모들의 적절한 개입과 중재로 나름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시윤이가 손에 들고 있던 상어 인형을 입에 넣으려고 하길래 넣지 말라고 했다. 또 넣었다. 또 뺐다. 시윤이는 크게 울기 시작했고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자모실이어도 그렇게 우는 아이와 함께 있을 수는 없어서 함께 나왔다.
"엄마. 엄마"
"엄마한테 가고 싶어?"
"응"
"그럼 거기 가서 울면 안 돼"
"데"
"짜증내면 안 돼"
"데"
"소리 질러도 안 되고"
"데"
"대답 크게 해야지"
"데헤"
아내가 있는 본당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예배가 끝날 때까지 큰 소란 없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더 집중해서 예배드릴 수 있게 도와준 거네. 고맙네, 강시윤?
새싹꿈나무 예배를 마친 소윤이와도 재회했다. 평소에는 교회에서 점심을 먹지만 오늘은 아내의 점심 약속이 있으니, 식당으로 가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차에 가서 축구 가방만 챙겨서 다시 교회로 왔다. 아내는 일단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갔다. 중간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오셔서 시윤이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아내가 둘 다 데리고 갔으면 엄청 마음이 불편했을 테고, 아마 그런 상황이었으면 내가 축구를 안 가고 시윤이를 봤을 거다. 한 명, 특히 소윤이랑 같이 가는 건 그 정도로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내 마음도 편하고, 아내도 덜 힘든. 즐거운 이별이랄까.(아무리 그래도 아내 입장에서 즐거울 수는 없으려나) 아내는 친구들과의 만남이 끝나고는 소윤이와 함께 파주(처갓댁)로 가서 저녁도 먹고, 잘 준비도 모두 마치고 오겠다고 했다.
툭 건드리면 와르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일단 샤워부터 하고 거실을 대충 치웠다. 그 바쁜 주일 아침에 다소 무리해서 설거지를 모두 하고 나간 게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텅 빈 싱크대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큰 안심이 되었다.
휴식을 겸해 설렁설렁 일기를 쓰고 있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소윤 안 잠]
정말 소윤이 너란 녀석의 체력은. 시윤이는 잠들었고.
어제도, 오늘도 아빠랑'만' 노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나를 대하는 소윤이의 태도가 매우 애틋하고 다정했다.
"아빠. 오늘은 아빠가 내 옆에 누워서 자여"
아내는 매우 고단해 보였다.
"여보. 오늘 힘들었어?"
"아니 그냥. 소윤이가 짜증을 좀 많이 냈어"
"그래?"
"졸렸던 것 같아"
비록 잠들지는 않았지만 출발 전 모든 준비를 마친 덕분에 집에 와서는 오줌만 싸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소윤이가 오늘은 나도 나가지 말고 방에 있으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기 옆에 누우라는 건 아니다. 소윤이 옆에는 아내가 눕고 난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이럴 거면 굳이 왜 있으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토를 달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순식간에 잠들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을 먹었다. 축구에 눈이 멀어 하루 종일 배고픈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내는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봤다. 막바지에는(이나영이 잘렸다나 뭐라나) 눈물을 찔끔 거리며 휴지도 찾았다.
언제 시윤이가 깰지 모른다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시윤이는 아내와 내가 들어갈 때까지 깨지 않았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어차피 내일은 또 깰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