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 빨래가 서말이라도 넣어야 보배다

19.03.12(화)

by 어깨아빠

화장실을 핑계로(진짜 마렵긴 했겠지만) 아내를 깨워 화장실에 다녀온 소윤이가 나에게 왔다. 아내는 화장실에 온 뒤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아빠. 우리 나가자여"

"그럴까?"


하고 시계를 봤는데 7시 40분이었다.


"소윤아. 아직 조금 이른데? 조금만 더 누워 있자"


아무 대답이 없길래 뭐 하고 있나 봤더니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소윤아. 아빠 휴대폰은 만지지 말고 꺼"

"아빠. 저 그림만 그리고 싶은데여"

"그림? 그래 알았어. 그럼 다른 건 하지 말고 그림만 그려"


넌 그림을 그리거라. 난 잠을 잘 테니.


아침의 시간은 진짜 말이 안 된다. 잠깐 눈 감았다 떴는데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소윤이는 여전히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 소윤아"

"네. 아빠"


시윤이도 깬 걸 보더니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시윤아. 우리 나갈래?"

"아자. 아자(가자)"


둘이 쪼르르르 나가더니, 덜그럭 덜그럭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 블럭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이좋게 나가더니만 얼마 안 돼 소윤이가 아내에게 와서 고자질 아닌 고자질을 했다.


"엄마. 시윤이가 내가 만들고 있는 거 다 망가뜨렸대-여"


점심시간쯤 아내가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잘 갠 옷과 수건을 찍은 사진이었다.


[얘네도 답이 없군]


잘 개긴 했는데, 넣을 곳이 없다는 말이었다. 정리의 필수요소는 수납이라고 하지 않던가. 칼 같이 각 잡아서 개어도 소파에 쌓아 놓느니, 아무렇게나 보이지 않는 곳에 쑤셔 박는 게 차라리 낫다. 미관상으로는.


별다른 해결책이나 묘안을 제시할 수 없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또 전화가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아빠가 내 초콜렛 과자 먹었어여?"

"어? 뭐? 어떤 거?"

"그때 파주할머니네 갔을 때 받은 거여"

"아. 어. 아빠가 먹었어"

"아빠. 얘기도 안 하고 먹으면 어떻게 해여"

"미안. 아빠가 오늘 갈 때 사갈게"

"똑같은 걸로 사와여"

"그래. 알았어"


칙촉 한 개(낱개로)의 반만 한 크기의 과자였다. 5살짜리 간식 훔쳐 먹었다가 호되게 야단맞았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려서 휴대폰을 봤는데 아내에게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와 있었다. 아차 싶었다. 소윤이 과자를 깜빡한 거다. 편의점으로 방향을 틀며 전화를 했다. 아내가 받았다.


"여보"

"어"

"어디예요?"

"나. 지금 가는 중"

"그럼 저녁거리 좀 사 와요"

"저녁거리? 뭐?"

"그냥. 여보가 알아서"

"알아서?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시윤이 때문에. 저녁 준비할 여력이 없어"

"시윤이가 왜? 계속 울어?"

"이따 와서 얘기해요"

"뭘 사가지?"

"여보가 보고 적당한 걸로"


주먹밥을 사 가려고 했는데 점심에 먹었다고 했다. 고민스러웠다. 일단 마트에 가서 과자 한 개를 사고 한살림에 갔다. 마땅한 게 없었다. 너무 어려운 숙제를 내 준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한살림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나왔다. 그냥 집 앞 만두 가게로 갔다.(주먹밥을 자주 사 먹는 곳)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를 두고 고민하다가 함박스테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여보. 뭐 사 왔어?"

"그냥. 함박스테이크"

"하나?"

"응. 하나만"


"아빠. 과자는여?"

"과자도 사왔지롱"


소윤이는 혹시나 내가 과자를 깜빡할까 봐 걱정했다고 했다.


아내가 시윤이 때문에 폭발한 건 다름 아닌 아까 그 옷과 수건 때문이었다. 아내가 공들여 개어 놓은 그것들을 시윤이가 헤집어 놓은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라고 했나. 아무튼 여러 차례. 내가 퇴근했을 때는 아내의 분노가 많이 식은 뒤라 그 온도를 체감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마 폼페이 대재앙 때의 화산 분출과 같지 않았을까 싶다. 시윤이로 촉발된 아내의 반복 노동(이라고 쓰고 똥개 훈련이라고 읽어볼까) 덕분에 집은 매우 매우 깨끗했다.


함박스테이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내를 위해서도 김치볶음밥을 신경 써서 만들어 줬다. 모두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아내가 시윤이를 씻기는 동안 소윤이는 과자를 먹었다. 하나를 다 먹게 하기에는 너무 많아서(그래 봐야 칙촉 한 개 크기지만) 아내가 반을 먹기로 했다. 소윤이는 자기에게 할당된 반개 분량의 과자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남은 반에서 반 정도를 떼어 소윤이에게 주며 말했다.


"소윤아. 좀 더 먹어"

"아니에여. 엄마 먹어야지여"

"아니야. 먹어도 돼"

"아니에여. 엄마 먹어야 돼여"

"소윤이 좀 더 먹으라니까"

"괜찮아여. 엄마도 먹어야져"

"그래? 알았어"


한 1분 뒤에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그냥 내가 먹을까여?"

"그래. 소윤이 먹어. 엄마는 안 먹어도 괜찮아"


귀여운 녀석.


모든 잘 준비를 마친 소윤이가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랑 몇 분 더 놀아여?"

"어. 8에 갈 때까지"

"네"


1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마침 아내가 청소기를 돌린 덕분에 소윤이는 추가 시간을 잔뜩 얻었다. 긴 바늘이 무려(?) 10을 넘어갈 때까지. 이 시간에는 하는 게 주로 비슷하다. 숨바꼭질, 말타기, 무작정 몸 타고 놀기 등.


소윤이, 시윤이, 그들과 함께 누운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고 헬스장에 갔다. 열심히 운동하다 말고 휴대폰을 들었다. 아내가 봄 자켓을 하나 산다고 했는데, 오늘이 주문일이라고 했다. 9시에. 아내는 헬스장에 가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었다.


"여보. 9시에 주문인데 얘네가 잘까? 난 주문할 수 있을까?"


아내 말로는 열리자마자 품절된다고 했다. 운동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9시였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아내가 얘기했던 그 자켓과 색상, 사이즈를 골라 주문을 하려고 했는데 카드 등록이 안 되어 있었다. 다시 처음부터 카드 등록도 하고, 결제하려는데 자꾸 이상한 날씨 알려주는 페이지로 넘어갔다. 휴대폰 배터리는 5%. 아내한테 예쁨 받을 짓 좀 해보려고 했더니,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구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


몇 분 뒤 카톡이 왔다.


[시윤이 안 잠]

[자켓 주문했어?]

[응. 겨우 했음]


다행이었다. 아내는 아이스바닐라라떼를 한 잔 사 오라고 했다. 큰 사이즈로. 아이스바닐라라떼를 하나 사들고 집에 들어갔는데, 거실은 여전히 암흑이었다. 거실에 서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헐. 여보. 아직도?]

[응]


시윤이는 베란다 쪽 창에서 논다고 했다. 안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강시윤"

".....?....."

"누가 안 자고 장난치라고 했어. 엄마 나가세요"

"엄마. 엄마"

"엄마. 나가세요"


아내는 거실로 나갔고 난 문을 닫았다. 시윤이는 세차게 울어댔다.


"으아아아아앙. 엄마아아아아아아"

"강시윤. 자는 시간에는 자야지. 누가 장난치고 그래"

"으아아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아"

"엄마랑 자고 싶어?"

"응"

"네라고 해야지"

"데에"

"그럼 이제 장난 치면 돼, 안 돼?"

"아대"

"누워서 장난치면 안 돼?"

"데에"

"얼른 시윤이 자리에 가서 누워 있어. 누워서 기다려"

"데에"


시윤이는 쭐래쭐래 자기 자리에 가서 누웠다. 다시 아내가 들어왔다.


"시윤아. 움직이지 말고 코 자는 거야. 알았지?"

"데에"


한 10여분 있다가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현재 상황은?]

[아직]

[얌전히 있기는 해?]

[응. 돌아다니길래 아빠 오시라고 할까? 그랬더니 바로 제자리]

[저승사자 됨]


아내는 그로부터 한 5분 뒤에 나왔다. 이래서 '엄부자모'라는 옛말이 있는 건가.


어쨌든 내가 악역을 자처한 덕분에 평화로운 밤 시간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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