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3(수)
아내가 차를 써야 하는 공포의 수요일. 아내는 늦게 일어나니 너무 바쁘다며 내가 일어났을 때 자기도 깨우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아내를 깨웠다. 아내는 가만히 있고, 애들이 바스락거렸다. 결국 온 가족이 7시에 기상했다. 아내만 깨울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사실 그런 적이 거의 없다. 엄마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공기의 차이를 느끼는 건지, 바로 깨서 나온다. 이제 해도 길어져서 그 시간이면, 너무 밝다. 덕분에 아내, 소윤이, 시윤이와 차례로 인사를 나누고 출근했다.
홈스쿨 모임을 마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지금 나는 고민 중이야"
"뭘?"
"시윤이 낮잠을 안 재워볼까 하고"
"지금 어딘데?"
"차야"
"그게 가능할까?"
"얼른 집에 가는 거지"
아내는 카시트에 애들을 앉혀놓고 출발하기 전에 나한테 전화를 한 거였다. 안타깝게도 시윤이는 아내가 나랑 통화하는 그때부터 이미 졸기 시작했다. 시윤이는 순식간에 잠들었고 아내는 조금만 재우고 깨우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2시가 넘었으니까, 그때 1시간 넘게 재우면 아내의 밤 시간은 그대로 삭제될 가능성이 컸다. 잠시 후 유모차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헤롱 거리고 있는 시윤이의 동영상이 도착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조금 더 자게 하려고 주의를 기울였을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바람 따귀를 한 대라도 더 맞게 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시윤이는 30분만 자고 일어났다. 아내의 2차 작전, 성공.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었는데,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고 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 덕분에 평소보다 훨씬 늦게 집에 도착했다. 소윤이만 아기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누나가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틈을 타서 시윤이는 내 품을 독점했다.
시윤이는 잘 모르겠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아내는 1분 1초라도 빨리 애들을 재우려는 꿈.
소윤이는 1분 1초라도 아빠랑 더 노는 꿈.
나는 늦지 않게 축구하러 나가는 꿈.
"소윤아. 이제 얼른 씻자"
"엄마. 아빠랑 조금만 놀고요. 아빠 우리 숨바꼭질 하자여"
"소윤아. 먼저 씻고"
"아니에여. 숨바꼭질 한 번만 하구여"
난 가만히 있었다. 평소에는 아내가 나에게 전권을 넘긴다. 몇 시까지 놀 건지, 숨바꼭질은 몇 판 더 할 건지. 오늘은 아내가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고, 나도 아내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했다. 아니, 오히려 아내에게 넘겼다.
"아빠. 숨바꼭질 몇 판 더 할 수 있어여?"
"소윤아. 엄마가 먼저 씻으라고 하시잖아.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야지"
왜냐하면 아빠는 이제 축구하러 가야 하거든. 그러니 아빠는 살아도 산 게 아니야. 수요일에는.
10분을 더 놀고 씻기로 했다. (아내의 결정에 따라.)
오늘도 소윤이의 선택은, 숨바꼭질. 소윤이의 단독 행동이 가능해져서 나름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완전히 이해하고 참여하는 건 아니라 약간의 걸림돌이 될 때도 있긴 하다. 오늘도 시윤이가 술래일 때 나랑 소윤이는 열심히 숨었는데, 시윤이는 우리를 찾지 않았다.
"꼬꼬꼬. 꼬꼬꼬(꼭꼭 숨어라)"
만 연발했다.
"아빠. 시윤이 왜 안 오지?"
"그러게. 자기가 술래인 줄 모르나 봐. 좀 기다려 보자"
시윤이는 커튼 뒤에서 한참 동안 꼬꼬꼬를 외치고 나서야 나와 소윤이를 찾으러 나섰다.
"아빠. 시윤이가 너무 오랫동안 찾아서 시간이 다 가버렸어여"
"그러게"
소윤이의 딱한 사정이 정상참작되어, 아내는 씻고 나서 추가로 두 판 더 할 수 있는 아량을 베풀었다.
소윤이는 약속한 시간이 되자 스스로 놀이를 종료했다.
"어차피 이제 자야 되니까 (숨었던 이불에) 계속 누워 있어야겠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 아빠 갈 게. 여보도 빠이"
세 시간 동안 열심히 뛰고 돌아왔더니 아내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뭐해?"
"드라마 봐"
"로별?"
"아니. 다른 거"
"또 새로운 걸 뚫었구만. 시윤이는 금방 잤어?"
"어. 나도 잠들었다가 깼어. 시윤이는, 한 시간 만에?"
이 정도면 세 사람 모두 꿈을 이뤘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그나저나 재우는데 한 시간 걸린 걸 '금방'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이 슬픈 현실이라니. 그보다 더 슬픈 건, 내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 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