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의 헛헛함

19.03.15(금)

by 어깨아빠

애들이 깨워서 막 잠에서 깨며 내뱉는 아내의 숨소리가 심상찮았다. 짜증이 많이 묻어 있었다. 어젯밤 가득 찬 콧물 때문에 자주 잠에서 깬 시윤이한테 시달리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잤나 싶었다. 그게 아니었다. 소윤이가 6시에 일어났단다. 소윤이든 시윤이든 깨서 거실로 나가지 않고 방에 있는 한, 그 뒤에는 푹 자기 힘들다. 아내가 아침부터 푹푹 가라앉은 건 꽤 오랜만이었다. 부디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길 바라며 출근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통화할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의 분위기를 살폈는데, 다행히 모두 잘 지냈다. 아내도 이제 달인의 경지에 다다른 건가. 그 정도 방해쯤이야 일상의 하찮은 일로 넘겨버릴 여유가 생긴 건가.


낮에는 505호 사모님이랑(+하람이) 스타벅스에 다녀왔다고 했다. 하람이네 집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올 시간이라 사모님과 하람이는 가야 했는데, 소윤이도 같이 따라갔다. 시윤이는 밖에서는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갈 때 잠들어서, 돌아올 때까지 깨지 않았으니까. 참으로 불쌍하다. 대신 누나 없는 동안 엄마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혜택을 누렸다.


미리 주문해 놓은 도시락을 퇴근하면서 찾아오라는 아내의 지시사항을 수행했다. 오늘 저녁은 도시락으로 해결한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내는 제육볶음 하나와 아보카도 치킨 샐러드 하나, 이렇게만 주문했다. 아보카도 치킨 샐러드는 내가 먹을 거고, 제육볶음은 애들이 먹을 수가 없는데. 애들은 집에 있는 반찬 주고, 아내가 도시락을 먹겠다는 얘기였나.


집에 들어서고 한 2-3분 애들을 관찰해 보면 대략 상황이 파악된다. 소윤이는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 얼핏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은. 말도 잘 안 들었다. 기분이 매우 좋기는 한데 엄마, 아빠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뺀질거리는 상태랄까. 졸려서 그렇다. 졸림이 극에 달했을 때, 많은 아이들은 오히려 흥분하고 기쁨이 가득 찬다. 소윤이가 딱 그랬다. 시윤이도 기분이 엄청 좋긴 했는데, 소윤이랑은 조금 다른 결(정상적인)이었다.


밥 먹는 소윤이에게 슬쩍 물어봤다.


"소윤아. 아까 하람이네 책 읽어주는 선생님 오셨어?"

"네"

"재밌었어?"

"네"

"아빠가 읽어주는 게 재밌어, 엄마가 읽어주는 게 재밌어?"


아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여보. 나랑 똑같이 물어봤어"


아내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난 책 읽어주는 것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너무 졸려서 나도 나를 어찌할 바를 모를 때만 아니면 최대한 재미있게, 성의 있게 읽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소윤이는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도 없이 검지 손가락으로 나와 아내를 번갈아 가리켰다.


소윤이는 무지하게 졸려 보였다. 함께 철야예배에 갈 상태가 아니었다. 난 교회에 가야 해서 시간이 없었지만, 틈새의 시간이라도 알차게 아빠랑 놀아야 하는 소윤이의 욕구 충족을 위해 짧고 굵게 헌신했다.


내가 나갈 때까지도 애들은 씻지 않은 상태였다.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더디게 진행된 현재의 상황을 푸념했다.


"하아. 벌써 7시 30분이네. 8시는 돼야 들어가겠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지"


그러게 말이야, 여보.


찬양 반주를 마치고 내려와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봉봉?]


답이 없었다. 30분 뒤에 답장이 왔다.


[시윤이 재우다 잠들어서 이제 나감]


10시였다. 아내의 헛헛한 마음을 상상했다. 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통화했다. 첫 목소리만 들어도 소파에서 졸다가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보. 졸리면 자지"

"안 돼. 빨래 널어야 돼"

"빨래 내가 널게"

"나 그것도 먹어야 돼"

"뭐?"

"아몬드 크로와상"


빨래야 내가 대신 널면 되지만, 크로와상은 내가 대신 먹을 수 없으니. 아내는 빨래 너는 건 나한테 미루고 일단 빵부터 먹을까 깊이 고민했지만, 빨래도 널고 빵도 먹는 가장 무난한 선택을 했다.


오늘도 야밤에 시윤이와 재회했다. 소윤이가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시윤이가 깨서 나오는 것도 그렇게 여겨야 하나.


그래도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매번 아내를 선택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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