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모두 다 함께

19.03.16(토)

by 어깨아빠

일찍부터 일어나서 꽤 한참이나 일어나라고 얘기하는 소윤이도 대단하고, 그걸 계속 버텨낸 나도 대단하고. 소윤이가 짜증을 전혀 섞지 않고, 매우 정중하게 애교를 섞어서 말했지만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이미 꽤 밀고 당기기가 진행되고 나서 몸을 일으켜 볼까 싶었는데, 시계를 봤더니 8시였다. 한 9시는 됐을 줄 알았는데. 억울해서, 늘 있는 일이면서도 주말에 8시 기상이라는 게 너무 억울해서 다시 누웠다.


"아빠. 일어나세여어어어"

"소윤아. 너무 일찍이야. 조금만 더 자자"

"계속 조금만 더 잤잖아여"

"소윤이가 너무 일찍 일어났어"

"아빠아아아아아"


그전에도 소윤이는 시윤이랑 거실에서 놀다가 방에 들어오다가를 반복했다.


"시윤아. 안 되겠다. 그냥 우리끼리 나가서 놀자"


모든 걸 체념한 듯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는 소윤이의 모습에, 조금 미안해져서 그제야 일어났다. 아내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주말에만, 드문드문 가동되는 주부 모드 On. 쌀 씻어서 밥하고, 두부 부치고, 계란 프라이하고. 애들 밥은 그렇게 준비했다. 아내가 원래 어젯밤에 먹으려고 사둔 오동통(?)인가 하는 [너구리 류의 라면]이 식탁 위에 있었다.


"여보는 라면?"

"좋지"


라면이지만 정성스럽게 끓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설거지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아침도 차려 주시고, 설거지도 하셨잖아. 우리 가족을 위해서. 아빠,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자"

"아빠. 고맙습니다"

"고마(고맙습니다)"


그렇지. 이거면 됐지.


밥 먹고 나서는 애들 책을 정리하느라 한참 시간을 썼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닌 것들은 따로 분류했다. 세 상자 분량이나 됐다. 두 상자는 누가 됐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고, 한 상자는 버리기로 했다. 일일이 훑어보고 결정하려니 꽤 품이 들었다. 소윤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호비책(수십권)도 버렸다. 소윤이한테 얘기하면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별 반대 없이 이해했다.


내가 책을 분류하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과 호떡을 만들었다. 반죽해서 숙성시키고, 속 넣어서 기름에 부치고. 짧은 한 줄로 설명이 되는 간단한 과정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과정에 자신들의 손길을 보태길 원하는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하는 여정이라 꽤 성가시고, 피곤하다. 아내는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육아도 뭐 엄청 거창한 일에서 어긋나는 게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 예를 들면 호떡 반죽으로 장난치다가 떨어뜨려서 먼지가 덕지덕지 붙는 일처럼 작디작은 일. 이런 일로 평정심을 잃고 부왁 폭발하면 그걸로 끝이다. 책 분류하느라 눈은 가지 못했지만, 귀는 열어 뒀는데 부왁 부왁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를 존경한다.


책 정리도 마무리되고, 호떡도 다 구워져서 상을 펴고 둘러앉아 간식 시간을 가졌다. 요즘 자주 사용하는 과하다 싶은 의미 부여와 함께.


"우와. 소윤아. 우리 가족 호떡 타임이네?"


다행히 소윤이도 즐겁게 호응한다.


호떡이 꽤 많이 있었는데 소윤이랑 시윤이가 엄청 많이 먹었다. 점심시간 무렵이었는데, 따로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여보. 애들 점심 안 먹여도 되겠지?"

"응. 그래도 될 것 같아"


몸에는 좋을 게 없다만, 호떡 만들기에 참여하는 너희의 즐거움을 위함이니 덜 미안해야지.


호떡 시간이 끝나고 아내는 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소파에 앉아 좀 쉬는데 소윤이가 쉴 틈을 주지 않고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 달라고 했다.


"소윤아. 아빠도 조금만 쉬자. 아빠 아침부터 계속 움직이고 일했잖아"

"그래도여. 이거 읽고 싶어여"

"소윤아. 아빠 조금만 쉴 게. 응?"


소윤이는 마뜩잖은 표정이긴 했지만, 잠시 틈을 허락했다. 그렇게 순순하게 나오면 또 미안해진다. 소윤이가 고른 책을 두 권 정도 읽어줬는데, 자꾸 눈이 감겼다. 마침 아내가 정리해서 현관 앞에 고이 모셔둔 재활용 쓰레기가 눈에 밟혔다. 우리 집에 존재하는 모든 것(무생물, 유생물 모두 포함해서) 중 가장 빠르게 번식하는 게 재활용 쓰레기다. 졸면서 힘겨워하느니 움직이며 졸음도 쫓고, 집에도 유익한 일을 하기로 했다.


"소윤아. 아빠랑 재활용 쓰레기 버리고 올까?"

"지금여?"

"어. 재활용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소윤이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그러자여"


물론 쉬운 집안일부터라도 함께하는 습관을 길러 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정말로 소윤이의 도움이 없었으면 한 번에 가기 힘들었을 거다. 버리려고 분류해 놓은 책도 있어서 유모차의 힘을 빌렸다. 소윤이도 양 손 가득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를 거들었다.


"우와. 소윤아. 소윤이가 도와주니까 진짜 엄청 좋다"

"아빠. 그래도 나 없었으면 아빠가 혼자 못했겠지여?"

"그럼"

"엄마는 시윤이 재우러 들어갔으니까 내가 안 도와줬으면 아빠도 한 번에 못와여?"

"그럼. 소윤이가 도와줘서 우리 집도 깨끗해지고, 아빠도 큰 도움을 받았지"


사소한 일에도 좋은 의미를 부여하면, 그걸 따라간다는 가르침을 머리에 새기고 있다. 주말에는 애들이 있으니 방해가 된다고 핑계를 댔는데, 조금씩 같이 하면 오히려 괜찮겠다. 신발장 정리 같은 건 소윤이한테 시키면 나보다 더 잘할 거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왔는데도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카톡을 보내봐도 답장이 없는 게 잠든 것 같았다. 기왕 그렇게 된 거 좀 더 자게 두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엄마를 깨워 달라고 했다. 엄마 좀 자게 두자고 하려다가, 소윤이를 위해 깨웠다. 시윤이 없이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소윤이에게도 나름 소중한 시간일 테니. 뭐 대단한 걸 하지 않더라도.


오후에는 부모교육을 받으러 갔다. 마지막 시간이라 저녁까지 먹고 한참 대화를 하느라 8시까지 있었다. 소윤이는 두 살 많은 언니랑 내내 깔깔 거리며 재밌게 놀았고, 시윤이는 잘 놀다가도 툭하면 울음과 함께 나와 아내의 품을 찾았다.


시윤이는 요즘 많이 컸다. 뭔가 달라졌다. 이때의 다름은 주로 조금 더 '사람다워짐'이다. 말이 조금씩 느는 건 물론이고, 말과 행동에 숨은 의도를 담는다고 해야 할까. 아빠 좋냐고 물어보면 씨익 웃으면서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 때가 있지만,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나름의 유머일 테고. 능청스러움의 농도가 한껏 진해진 것도 그렇고. 훈육이 먹히는 걸 보면 생각과 표현이 꽤 모양새를 갖춘 듯하다. 덕분에 사라지는 아기의 '티'가 많이 아쉽다. 왜 뒤로 갈수록(첫째, 둘째, 셋째로 갈수록) 덮어 놓고 예쁘다는 건지 알겠다.


소윤이는 부모교육과 식사, 담소까지 모두 마친 후 집에 오려고 준비하는데 나한테 와서 속삭였다.


"하빠하. 후리히 가조혹 데히트흐 할거헌데헤. 카하페헤 가할까하혀?"


가족 데이트를 이렇게 악용(?)하려고 하다니.


"소윤아. 오늘은 너무 늦었어"

"아. 그래도여. 가고 싶어여"

"소윤이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잖아. 얼른 자야지. 오늘은 안 돼"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집에 도착할 때쯤 잠들었다. 시윤이는 깊이 잠들었는데 소윤이는 살짝 깼다. 아내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소윤이를 재우기 위해 누워 있었다.


"여보. 일단 씻어"

"그래야지"


결국 아내는 시윤이가 깨서 문을 열고 나오자, 씻으러 들어갔다. 물론 그 사이 아내가 놀기만 한 건 아니다. 설거지도 하고(싱크대도 박박 닦고), 집도 치우고 그랬다. 하여간 이 세상에서 가기 힘든, 멀고 먼 길이 아내가 씻으러 화장실에 가는 길이다. 멀기가 멀기가 만리장성이 따로 없다.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옛날부터 그랬다고.


그래도 난 아내에게 오늘도 감사한다. 논개처럼 아이를 안고 안방에 한 몸 던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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