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7(주일)
아내가 아침부터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오늘은 기필코 늦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굉장히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도 아내의 움직임에 맞춰 틈 없이 부지런을 떨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10시도 안 됐는데 모든 준비가 끝나갔다.
"여보. 오늘은 일찍 갈 수 있겠는데?"
5년 차 육아인이 되며 자연스레 생긴 경계심이 발동했다.
'아니야.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괜한 염려라고 애써 찍어 눌렀다. 아내 말처럼 나도 잔뜩 기대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축포를 터뜨리고 있었다.
온 가족이 옷까지 다 입고 내가 화장실에서 마지막으로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데 희미하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윤아. 진짜야? 어디 봐. 하아"
아내가 뭘 봤을지, 왜 한숨을 쉬었을지. 보이지 않아도 안다. 역시 예상대로 평균 이상의 쿰쿰한 냄새와 함께 아내와 시윤이가 화장실로 왔다. 아내의 연약한 어깨와 팔을 생각하면 당장 시윤이를 받아 안는 게 마땅하다. 그러지 않았다. 시윤이를 안으면 스프레이까지 뿌리며 모든 단장을 마친 나에게, 내 옷에, 꼭 똥을 묻힐 것만 같았다.
시윤이 똥 치우느라 10분을 넘게 썼다. 하아. 이 정도면 천재지변 수준이 아닌가 싶다. 이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다. 거의 정시에 도착했다.
소윤이는 교회 집사님이 주신 핫핑크 점퍼와 핫핑크 머리띠를 착장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본인에게 해로운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나의 취향과 심히 어긋날 뿐이라 어쩔 수 없이 소윤이의 의견을 존중했다. 다음부터는 핫핑크 계열을 안 보이는 곳에 좀 걸어둬야겠다.
시윤이는 아침부터 똥 싸느라 힘을 많이 썼는지 평소보다 일찍부터 졸려했다. 덕분에 아내 무릎에 앉아 얌전히 예배를 드리는가 싶더니, 역시 참지 못하고 바둥거렸고 결국 난 시윤이와 함께 다시 자모실로.
예배를 마치고 난 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을 화정역에 내려줬다. 내가 목장모임과 축구를 하는 동안 장모님, 장인어른을 일산에서 만난다고 했다. 저녁에는 교회에 부흥회가 있어서 다시 교회에서 보기로 했다. 애 둘을 데리고 지하철 타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닐 것 같은데 아내는 의외로 수월하다고 했다. 만원 지하철만 아니면 소윤이랑 시윤이도 얌전히 가니까. 거기에 시윤이는 잠들어서 유모차에 누워 있었으니 가는 길이 그리 험난하지는 않았을 거다.
축구를 끝내고 집에 들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쯤 아내와 아이들은 파주 처갓댁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발했다.
"여보. 애들은?"
"졸려해. 나도 졸리고"
"오늘 괜찮겠지?"
"그러게"
아내가 먼저 교회에 도착해서 날 기다렸다. 반갑게 아이들을 향해 인사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윤이를 보고는 울었냐고 물었을 정도로, 눈에 피곤이 가득했다.
설교 전에 30분 정도 찬양을 했는데 그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찬양 소리가 워낙 크니까 애들이 조금 시끄럽게 굴어도 묻혔다. 찬양이 끝나자 소윤이는 급격하게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한테 기댔다가 나한테 기댔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금방 잠들었다. 그렇게 자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남은 한 사람, 그가 문제였다.
시윤이는 답답하다며 나가자고 떼를 썼다. 내가 시윤이를 안고 자모실에 갔다. 잘 있는가 싶더니 또 엄마가 보고 싶다며 다시 본당으로 가자고 했다.
"시윤아. 다시 엄마한테 가면 조용히 해야 돼. 떠들면 안 돼"
"데"
다시 아내에게 안겼다. 소윤이는 곤히 자고 있었다. 잠깐 앉아 있는 듯하더니 다시 또 자모실로 가자고 했다.
"아빠아. 꺼. 꺼. 아자. 아자(가자)"
"시윤아. 니가 내려오자고 했잖아"
"아자. 아자"
"그럼 이번에 가면 이제 다시 엄마한테 못 와. 계속 거기 있어야 돼. 알았어?"
"데"
다시 자모실로 데리고 갔다. 이게 쉬운 여정이 아니다. 1.5층 정도를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3시간 가까이 다리가 부러져라 축구를 한 데다가 13kg이 넘는 시윤이를 안고 그 짓을 하자니 숨이 헉헉 차올랐다. 당연히 시윤이는 다시 엄마를 찾았고, 또 내려갔다. 아내에게 넘겨주고 숨을 좀 고르는데, 강시윤의 새로운 기술이 들어왔다.
"무. 무"
"물?"
"응"
하아. 물 갖다 바치러 로비까지 올라갔다 왔다. 그래도 마음의 평정심이 깨지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충분히 각오를 하고 있었다. 강시윤과 두 시간 넘게 예배를 드리려면 이 정도쯤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몸은 힘들었지만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 효녀 소윤이는 끝날 때까지 쿨쿨 잤다. 아니, 집에 가서 눕혔을 때도 계속 잤다. 시윤이도 돌아가는 길에는 잠들어서 그대로 밤잠이었다.
축구하고 나서 예배드리면 많이 졸까 봐 걱정했는데 하나도 안 졸았다. 강시윤의 공이 크다. 아마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폭풍같이 졸았을 텐데. 진짜 효자는 강시윤인가?
"여보. 내일 갈 수 있겠어?"
"내일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그래. 내 생각도 그래. 내일은 그냥 나 혼자 가야겠다"
내일과 화요일에는 내가 드럼을 쳐야 해서, 아내가 같이 가면 혼자 애 둘을 데리고 30분 정도를 있어야 하는데 오늘 경험해 보니 그건 무모한 도전이다. 아내의 체력이 조금 더 강해지던가, 강시윤이 조금 차분해지던가 그래야 엄두를 낼만 한 일이다.
아내랑 떡볶이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거의 마무리가 될 때쯤, 강시윤이 또 문을 열고 나왔다.
"헐. 여보, 쟤 진짜 양심도 없다"
"오늘도 깨다니"
양심이 있었으면, 나한테 그렇게 똥개훈련을 시키지는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