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시윤이, 아침에는 소윤이

19.03.18(월)

by 어깨아빠

밤에는 시윤이가 매일 깜짝 등장으로, 아침에는 소윤이가 너무 빠른 기상으로 고달프게 한다. 둘이 아주 환상의 짝꿍이 아닐 수가 없네. 한동안 늦게 일어나더니 요즘 다시 일찍 일어나는 기간인가 보다. 오늘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아내도 깨우고, 나도 깨우고. 참고 버티다가 결국 소윤이에게 한마디 했다.


"소윤아. 엄마랑 아빠는 아직 더 자야 된다고 했지. 충분히 못 자면 엄마는 하루 종일 너네 보느라 힘들고, 아빠는 일 하느라 힘들어서 안 돼. 나가서 놀고 싶으면 혼자 나가서 놀고, 아니면 여기 누워서 자. 잘 거 아니면 가만히 누워 있어. 자꾸 엄마, 아빠한테 같이 나가자고 하지 말고. 알았어?"


당연히 소윤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울먹이기도 했고. 다시 자리에 가만히 누웠다. 한 두어 번 바깥에 나갔다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도 자려고 누워 있긴 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뒤였다. 일어날 시간이 되어서 소윤이랑 함께 거실로 나갔다.


"소윤아. 엄마, 아빠가 소윤이 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아침에는 잠을 좀 푹 자야 하루를 잘 살 수 있어. 그래서 그러는 거야"

"알아여. 아빠"

"소윤아. 아까 거실에 나오는 것 같던데 왜 다시 들어왔어?"

"아. 처음에는 거실에 나와서 블럭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시끄러울 것 같아서 다른 거 뭐할까 했는데 할 게 없어서 심심해서 들어갔어여"

"그다음에는?"

"아. 그때는 똥꼬를 손으로 만져서 손 씻으러 나왔지여"

"그랬어?"

"네. 비누로 박박 닦았어여"


아내랑 시윤이는 내가 나갈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윤아. 아빠 갈 게. 거실에서 블럭해도 돼"

"알았어여. 아빠. 잘 갔다와여"

"엄마 깨우지 말고. 알았지?"

"네"


한 15분쯤 뒤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잘 가고 있어?"

"어. 지금 일어났어?"

"응"

"소윤이가 깨웠어?"

"응"


그래도 혼자 일어나서 아빠를 배웅해주는 큰 딸이 기특하다.


퇴근할 무렵, 아내는 집 앞에 있는(그래도 걸어서는 못 가고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야 하는. 차는 나에게 있으니 버스 타고 가야 하는) 카페에 가려고 막 나왔다고 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답답했는지 소윤이가 어디라도 가자고 해서. 퇴근하는 길에 들러서 태워 가기로 했다. 한 20분 뒤 전화가 왔다.


"여보"

"어"

"오늘 휴무일이네?"

"아. 진짜?"

"어. 문이 닫혀 있다"

"어떻게 해? 어디로 가?"

"그러게"


잠시 후, 아내는 다시 동네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뒤에는 한살림에 들렀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고. 어디라도 가자고 성화였던 소윤이는 괜찮냐고 했더니 잘 설득했단다. 어쨌든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했으니, 어느 정도는 욕망을 해소한 게 아닐까.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에 올라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다소 찬 바람을 뚫고 다다다다 달려와서 나에게 안기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동시에 안았다. 누구도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니 호기를 부렸다.


"그래. 아빠가 둘 다 안고 가지 뭐"


고작 엘리베이터 앞에 가서 태세를 전환했다.


"아우. 야. 너네 왜 이렇게 무겁니. 내려가. 걸어가"


이두와 삼두, 코어 운동에 조금 더 집중해야겠다.


금요철야예배에 갈 때 보다 더 빨리 나가야 해서 아주 잠깐, 집에 머물다 나갔다. 저녁 시간의 진행이 많이 늦기도 했고, 월요일이기도 해서 아내는 유독 피곤해 보였다. 아마 아내의 몸은 [월요일=자유]에 맞춰졌을 테니까.


부흥회를 마치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라면 끓여먹은 사진이 답장으로 도착했다.


[또 라면 먹음. 배고픈데 먹을 게 없어서]


아내는 후식으로 마실 커피도 요청했다. 윌에 들러 아이스바닐라라떼를 한 잔 샀다. 집에 돌아왔는데 거실 스탠드는 켜져 있고,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와 풍경이 방금 전까지 아내가 앉아 있었다고 말해줬다. 닫혀 있는 안방 문 너머로 소윤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한 10여분이 지나고 아내가 나왔다.


"소윤이는? 자?"

"아니"

"어떻게 나왔어?"

"일단 자라고 하고 나오긴 했는데"

"잘까?"

"그러게. 기침을 엄청 많이 해. 콧물이 많이 있기는 한데"

"내일 병원에 가 봐야 하나"

"그러게. 그리고 계속 무서운 게 쫓아온대"

"그래?"


어제 지하철 탔을 때도, 긴급상황 시 대피요령을 안내하는 방송을 듣더니


"엄마. 저기서 뭐라고 하는 거에여?"

"우리 불나면 어떻게 해여?"

"불났는데 못 나가면 어떻게 해여?"


라는 질문을 계속했다. 아내가 그건 굉장히 드문 일이며 그런 일이 생겨도 저걸 보고 침착하게 움직이면 된다고 얘기해 줘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더니, 급기야는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왜 열리는 거냐며, 얼른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늘 무서운 게 쫓아온다는 것도 그렇고, 소윤이의 내면에 뭔가 불안한 게 있나 걱정이 되긴 했는데 알 턱이 없으니.


아내랑 조용히 소윤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소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일단 사 온 커피라도 마시고 들어가기 위해, 소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소윤이는 내가 안았다. 무섭거나 불안할 때는 나한테도 잘 안긴다.


"소윤아. 왜 울어?"

"엉엉엉엉엉엉"

"왜 우는지 얘기해 줘야 아빠가 해결해 주지"

"엉엉엉엉. 무서운 게 자꾸 쫓아와서여"

"무서운 꿈꿨어?"

"네"

"무슨 꿈?"

"몰라여. 무서운 꿈"


일단 소윤이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일부러 웃긴 얘기도 하고 그랬더니 웃기도 하고 조금 안정을 찾기는 했다. 기침을 많이 했다. 아내랑 나누던 얘기를 계속하려고 다시 아내가 소윤이를 안고 얘기를 이어갔다. 소윤이는 아내 품에 꽤 오래 안겨 있다가, 빨리 자러 들어가고 싶다며 낑낑거렸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다 아내의 무릎에 누웠고, 그대로 잠들었다. 그렇게 눕혀 놓고 나서도 한참을 대화를 나눴다. 소윤이랑 5년을 같이 살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내와 내가 주고받는 나지막한 목소리와 곤히 잠든 소윤이의 얼굴, 숨소리가 어우러지니 참 기분 좋은 차분함을 느꼈다.


대화를 정리하고 아내가 소윤이를 데리고 들어가려는데, 역시.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치면 섭섭하고 시윤이는 거실을 지나치면 섭섭하지. 시윤이도 깨서 나왔다. 야밤에 온 가족 회동이로구나.


오늘도 두 아이를 책임지러 방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늠름한 뒷모습을 보며, 하루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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