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9(화)
아내와 아이들은 오전에 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끝나고는 병원에도 들러야 해서 아내에게 차를 넘기고 출근했다. 저녁에는 나도 부흥회를 가야 했다. 가는 건 별 문제가 아닌데, 부흥회 끝나고 집에 오는 게 문제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면 1시간이 걸린다.(한 번도 타 본 적은 없다. 카카오맵이 그렇게 알려줬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나는 내 한 몸 고생이지만 아내 쪽은 셋이 고생하게 될 테니 내가 뚜벅이가 되는 게 맞지.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이따 그냥 내가 거기로 갈까?"
"여기로?"
"어"
"괜찮아. 뭘 힘들게 여기까지 와"
"난 생각보다 안 힘들어. 그래도 가면 여보는 엄청 편하잖아"
"그렇긴 하지"
"어차피 이따 교회에서 올 때도 문제고"
"그래? 그럼 여보가 알아서 해"
차에 앉아 통화를 듣고 있던 소윤이도 끼어들었다.
"아빠. 난 아빠 데리러 가는 게 좋은데여"
아내에게 결정권을 넘기고 통화를 끝냈다. 시윤이는 홈스쿨 모임 하는 중간에 데리고 나가서 재웠다고 했다. 무려 카시트에 태워서. 그냥 유모차에 태워 돌까 하다가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쓸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확률이 높은 걸 택한 거다. 아내의 한 수는 적중했다.
소윤이의 기침은 아침이 되자 눈에 띄게 줄어 들어서 병원에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아내는 일단 들렀다. 다행히 콧물 때문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만, 천식은 기침이 정말 심할 때 병원을 급히 찾아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어서 여지는 남아 있다고 하셨다.
아내는 사무실로 오겠다고 했다.
일을 다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소윤이가 문을 열었다.
"아빠"
"강소윤. 오랜만이네"
"아빠. 다 끝났어여?"
"응. 다 끝났지. 자, 여기 소윤이가 아까 붙인다고 한 거"
오기 전에 통화할 때, 자기가 택배 송장 붙여 놓을 테니 남겨 놓으라고 했다. 빈 송장 하나와 빈 상자를 하나 줬다.
"소윤아. 엄마랑 시윤이는?"
"차에 있어여"
"아. 소윤이만 내린 거야?"
"네"
"그럼 얼른 붙이고 가자"
그때, 시윤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들"
"아빠아"
잠깐 있다가 금방 차에 탔다. 부흥회에 가야 해서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의 수고 덕분에 편히 집에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윤이가 말타기를 하자며 매달렸다. 잠깐 있다가 나가야 하니 웬만하면 해주려고 했는데, 정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딱히 일이 더 힘들거나 그랬던 것도 아닌데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아. 소윤아. 말타기는 아빠가 정말 너무 힘들어서. 미안해. 다른 거 하자"
"아. 그래여? 그럼 우리 카드 맞추기 할까여?"
과일과 채소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한글로 각각의 이름이 쓰인 카드를 뒤집어 놓고, 내가 얘기하는 과일이나 채소의 카드를 짝 맞추어 찾는 놀이다. 카드 숫자도 워낙 조금이고 이제 소윤이는 글자의 모양을 외워서, 틀리지도 않는다. 조금 더 어리고 글자를 전혀 모를 때, 이것저것 뒤집어 가며 짝을 맞추면 내가 막 과장되게 좋아하고 그랬다. 지금은 재미가 없다. 내가 재미가 없으니 아무리 과장을 해도 영혼 없는 반응이 나갈 테고, 소윤이도 조금씩 그걸 느끼고 있겠지. 그럼 이 놀이도 곧 안녕이다. 대신 시윤이의 놀이가 되겠지. 아직 나름의 재미가 있는 숨바꼭질도 몇 판 했다.
"여보. 화이팅"
아내의 건투를 빌며 집을 나섰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조금 있다 전화가 왔다.
"하아. 여보"
음, 뭔가 수월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이 기류.
"왜? 애들 금방 안 잤어?"
"시윤이 1시간 30분 걸렸어"
"진짜? 대박이네"
시윤이는 통화하기 30분 전쯤 잠들었고, 아내는 뻥 뚫린 마음을 진정시키려 30분 정도 누워 있다가 막 나왔다고 했다.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구운양파(과자)를 하나 사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저녁도 못 먹고 그 짓(?)을 했다. 장모님이 싸 주신 김치찌개를 데워 먹겠다길래, 내가 두부도 좀 더 넣고 파도 좀 더 넣어서 차려 준다고 했더니 그냥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빨리 달라고 했다. 밥을 푸고 그 위에 김치찌개를 끼얹었다.
아내는 저잣거리에 있는 주막집에서 국밥을 먹는 남정네처럼 맛깔나게 먹었다. 아내가 그렇게 먹는 건 흔한 모습은 아니다. 배고픔 때문이었을지, 분노 때문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후루룩후루룩 잘 먹었다.
강시윤한테 그렇게 당하고서도, 아내는 그의 귀여움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를 열심히 묘사했다. 그러다 또 사진 보고. 자러 들어가서는 또 한참 매만지고.
당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