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는 거들뿐

19.03.20(수)

by 어깨아빠

출근하는 길에 아내랑 아이들도 함께 파주(처갓댁)에 간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머리 손질. 장모님이 애들 봐주시는 동안 미용실에 다녀온다고 했다. 워낙 머리 손질을 안(못)해서 단골이라고 할 미용실도 없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도 한참을 가던 대화동의 미용실에 가려고 했다. 아내는 갑자기 마음을 바꿔 지역 맘카페에서 평이 좋은 운정의 어느 미용실을 찾았고,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나도 퇴근하고 파마를 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나도 거기서 하라고 했다.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소윤이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내에게 토라져서 매우 버릇없이 굴었다. 내가 짚고 넘어가려는데 나한테도 그 태도를 이어갔다. 방에서 따로 이야기하자니까(현재 우리 집에서 훈육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싫다며 말을 안 들었다. 제대로 훈육하려면 대충 계산해 봐도 15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오늘은 아빠 소윤이한테 더 이상 얘기 안 해. 마음대로 해"


익숙하지 않은 수가 나오니 당황했는지 소윤이는 오히려 얘기할 거라며 먼저 방에 들어갔다.


"아빠아아아아. 얘기할 거에여"

"아니야. 오늘은 끝났어. 됐어"


카시트를 타고 파주에 가는 동안 소윤이는 어물쩍 넘어가려는 듯, 나한테 말도 걸고 장난도 치고 그랬지만 즐거이 호응하지는 않았다. 바쁜 아침이라 더 이상 얘기하지는 못하고 출근했다. 아내에게 나 대신 소윤이와 얘기를 하라고 카톡을 남겼지만 아내는 한참 있다 메시지를 읽었다.


장모님은 점심에 약속이 있으셔서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어야 했다. 사무실 근처에서 함께 먹기로 했다. 소윤이는 장모님을 따라가고 시윤이만 왔다. 시윤이는 오면서 잠들었고, 덕분에 아주 평화로운 점심 식사가 가능했다. 다 먹고 나서도 깨지 않아서 사무실에 데리고 왔다. 꽤 오랫동안 유모차에 누워서 잤다. 잠을 푹 잤는지 깨고 나서 기분이 좋았다. 짧은 시간이긴 해도 덕분에 시윤이랑 놀면서 일했다. 아내는 시윤이와 함께 처갓댁에 갔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다시 차를 가지고 나왔다.


원래 소윤이도 함께 나오려고 옷까지 다 입었는데, 소윤이는 마지막까지 갈등하다 결국 할머니와 함께 있는 걸 택했다. 덕분에 아내랑 소소한 데이트. 미용실에 가서 파마하고 아내가 가고 싶어 하던 카페에 갔다. (가고 싶은 카페는 주기적으로 생성되나 보다) 분위기에 비해 커피맛은 그냥 그랬다. 굳이 또 찾아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장모님이 둘 다 밥도 먹이고, 씻기기도 하셔서 짐을 챙겨 출발만 하면 됐다. 부흥회 마지막 날이고, 오늘은 드럼도 안 쳐서 다 같이 부흥회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야 당연하고, 시윤이도 낮잠을 일찍 자서 다른 날보다 더 졸려 보였다.


"가는 길에 잠들면 어떻게 하지?"

"그러게. 깨워야 되나"


어찌 보면 당연히 벌어질 일이었는데, 아내도 나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졸려서 자겠다는 애들 깨우는 것도 영 찜찜하고. 추적추적 내리던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졌다.


"여보. 그냥 오늘 가지 말자"

"진짜?"

"어. 이렇게 가 봐야 힘들기만 하고 제대로 못 들을 것 같아"

"그렇긴 하지"


부흥회 첫날이었던 주일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다. 오늘도 그렇게 될 것만, 아니 그것보다 더 할 것 같았다. 부흥회 가야 한다고 부리나케 나왔는데, 이럴 거면 조금 더 있다 올 걸 그랬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나는 소윤이, 아내는 시윤이를 안고 집까지 올라가면서 아내랑 얘기했다.


"여보. 이래 가지고 부흥회는 무슨"

"그러니까. 이거 잠깐도 이렇게 힘든데"


부흥회 갔으면 왠지 부흥회에서 지옥을 경험했을 것 같은 그런 어떤 느낌적인 느낌.


놀랍게도 시윤이는 오늘도 출근했다. 시윤이 요새 야간 근무한다. 이름하야 거실 시찰.


"시윤아. 엄마 5분 남았어. 5분. 5분만"


하나님을 등진 아내는 이동욱과 유인나를 만나고 있었다. 그런 거 말고 [눈이 부시게] 같은 거 좀 보라니까, 왜 자기의 선택과 취향을 폄하하느냐며 툴툴댔다. 아내의 소중한 5분을 지켜주기 위해 아예 시윤이랑 자리 잡고 놀았다. 놀수록 눈망울이 똘망해지는 것 같아 염려스러웠지만, 이내 접었다. 어차피 아내가 데리고 들어갈 테니까.


"시윤아. 잘 자. 여보도 잘 자고"


내일도 대중교통 타고 가야 한다. 이번 주에 대중교통 출퇴근이 너무 많아서 싫다. 소윤이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소윤아. 세상에는 싫은 일이 더 많아. 싫어도 해야 하는 일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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