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21(목)
아내가 홈스쿨 모임이 있다고 해서 차를 두고 출근했다. 오늘 홈스쿨 모임은 오후에 하는데, 끝나고 나서는 아빠들도 합류해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무슨 말이냐면 그냥 내가 차를 가지고 출근했어도 괜찮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어차피 집에 갈 때는 나랑 같이 가니까. 게다가 갑자기 날씨도 추워졌다. 내일도 차를 못 쓴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아쉬웠다.
'오늘은 그냥 내가 차 쓸 걸'
그래도 나의 헌신과 부지런함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이 편안하게 돌아다녔다고 하니 그거면 됐기는 무슨. 두렵다. 이제 일주일에 세 번씩 홈스쿨 모임 할 텐데. 어떻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나 싶다.
아내랑 아이들은 은평 한옥마을에 다녀왔다. 잘 모르지만, 은평한옥스타일고급주택마을 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날도 화창하고 공기도 깨끗해서 505호 사모님이랑 함께 갔는데, 아내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여보. 여기 진짜 좋다. 이런 데서 살고 싶다"
여보. 나도 바라는 바야. 우리 말고 누가 강력히 바라지 않는가 봐.
엄청 큰 빵집에도 가고, 꽤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다. 거기서 바로 시안이네로 간다고 했다.
"여보. 어디야? 도착했어"
"여보. 엄청나게 황당한 일이 있었어"
"왜?"
"소윤아. 소윤이가 아빠한테 설명해 드려"
"아니. 아빠. 우리가 북한산 한옥마을에 갔는데 거기 주차장에 시윤이 유모차를 놓고 온 거에여. 그래서 다시 유모차를 가지러 갔다가 지금 시안이네로 온 거에여"
아내의 정확한 설명에 의하면, 505호 사모님네를 화정역에 내려다 주려고 함께 차에 타고 있었다. 시윤이가 타던 유모차는 트렁크 뒤에 세워두고. 505호 사모님이 어떻게 접는 거냐고 물어봤지만, 애들 태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냥 자기가 접고 실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단다. 본인도 신경을 못 써버렸다. 유모차를 그대로 세워 두고 출발했고, 시안이네 거의 다 도착해서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갔다. 다행히 유모차는 잘 보관되고 있었다.
다들 이런 경험 한 번씩은 있지 않나? 애만 안 놓고 오면 되지 뭐.
퇴근하는 길에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을 찾아서 시안이네로 갔다. 이제 도시락 두 개로 네 명(소윤, 시윤 포함)이 먹는 건 확실히 부족하다. 특히 시윤이가 너무 잘 먹어서 감히 밥은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시윤이는 밥을 그렇게 먹고도, 소윤이는 밥은 그렇게 안 먹고도 과일과 빵이 나오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특히 빵 앞에서는. 둘 다 어찌나 욕심을 내던지. 빵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초콜렛이나 과자 같은 걸 안 줄 때는, 안 주니까 괜히 더 그러나 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 웬만한 건 다 먹을 수 있고, 주기도 하는데 그래도 음식 앞에서의 열정과 집중은 여전했다.
그래도 어른들이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애들은 자기들끼리 잘 놀았다. 오히려 너무 신이 나서 그 흥분을 몇 차례 가라 앉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아주 많이 늦어져서, 마지막에는 소윤이도, 시윤이도 졸음에 허덕였다. 괜히 칭얼대고, 부비적거리고. 간단하게라도 씻겨서 왔으면 좋았겠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시안이네도 빨리 자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나왔다.
당연히 둘 다 잠들었다.
아내는 배고픔을 호소했다. 아내도 제 양껏 못 먹었겠지. 아내는 집에 있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걸 조금씩 먹었다. 주로 빵이다. 우리 집에는 항상 빵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아내가 얼마나 빵을 좋아하냐면, 낮에 애들이랑 같이 있을 때도 몰래몰래 빵을 먹는다. 애들한테 주기는 싫지만, 혼자라도 당장 꼭 먹어야만 할 때, 아내는 싱크대 아래로 몸을 낮추고 숨어서 우걱우걱 빵을 먹곤 한다. 자주.
애들하고 같이 먹지 않는 건, 별로 건강하지도 않은 걸 굳이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시윤이, 소윤이랑 먹으면 무서운 속도로 먹어 치우니까 자기 먹을 게 없어져서 그럴 거다. 아내는 식탐이 있다.
누가 됐든 같이 식사를 하는데 상대가 자기보다 빠른 속도로 먹으면, 자기는 맛있는 걸 못 먹을까 봐 신경이 쓰이고 다급해진다고 나한테 고백했다. (초고속 먹성을 자랑하는 나에게, 알아서 완급조절하라는 의미였겠지)
남들이 보면 소윤이, 시윤이의 식탐이 다 아빠에게 물려받았다고 생각할 것 같아 억울하다. 풍채는 이래도 식탐은 없다. 내가.
애들 식탐은 다 아내 때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