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23(토)
소윤이가 없으니 평소랑 확연히 다른 건 아침이었다. 얼른 일어나라고 보채는 사람이 없으니, 아침이 한결 수월했다. 시윤이는 먼저 일어나도 소윤이만큼 성가시게 하는 기술이 없어서, 혼자 손가락 빨거나 뒹굴거리는 게 전부다. 오히려 다 일어나고도 시윤이랑 한참을 이불속에서 놀았다.
목동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원래 신림동에 들러 차는 두고 지하철을 타고 가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시간 차이가 많이 났다. 차로는 생각보다 덜 걸리고, 지하철로는 생각보다 많이 걸리고. 원래 미리 가서 밥도 머고 그러려고 했는데, 챙길 애가 한 명이어도 결국 촉박해지긴 마찬가지였다.
신림동에 도착한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졌다. 조금만 지체하면 결혼식에도 늦을 판이었다. 사회를 봐야 하니 괜히 더 마음이 급했다.
소윤이는 엄마, 아빠 없는 곳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아마 그랬을 거다) 어쨌든 하루만이었으니 반가운 마음이 컸는데, 얼마 없는 시간이 나를 박하게 만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충분히 논 것도 기분 좋고 엄마, 아빠가 온 것도 좋아서 과흥분 상태가 되었다. 아무리 서두르라고 말해도 신나서 방방 뛰기만 했다. 끊임없이 소윤이를 채근했고, 차에 타서 폭발했다.
소윤이가 자기 가방도 안 챙기고, 치치(인형)도 안 챙겼다면서 다시 가야 한다고 떼를 썼다. 이미 출발해서 안 된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울고, 소리 지르고. 듣기 싫은 울음소리와 늦어진 것 때문에 차오른 짜증을 발산했다.
10-20분 지나고 나니 슬슬 미안한 마음이 들길래, 소윤이를 한 번 쳐다봤다. 조금은 우울한 얼굴로 창밖으로 보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아빠. 아빠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여"
소윤이는 가끔 이렇게 전혀 애 같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
"그냥, 치치가 보고 싶어서여"
이럴 땐 또 영락없는 다섯 살이고.
난 먼저 입구에서 내리고, 아내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애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난 이미 사회자 자리에 있었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장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빠"
"아빠아"
다행히 시작 전이었다.
무사히 사회를 보고, 애들과 함께하는 결혼식의 최대 난코스인 사진 찍기까지 마쳤다. 우리 애들까지 포함해서 애가 넷이나 됐는데, 다들 오랫동안 얌전히 앉아 있어서 비교적 차분하게 이야기도 나누면서 밥을 먹었다.
물론 아무리 협조적이었다고 해도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정신없긴 했다. 여태껏 먹었던 결혼식 뷔페 중에 가장 맛있었을 정도로 음식이 괜찮았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여보. 맛있다"
"그러게. 애들 없이 차분하게 먹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첫 접시는 샐러드와 찬 음식 위주로. 두 번째는 따뜻한 음식으로. 세 번째는 또 어쩌구저쩌구. 이 따위 격식과 공식은 사치다. 먹을만한 게 보이면 일단 때려 담아야 한다. 내 접시 말고 애들 것도 챙겨줘야 한다. 애들의 요구사항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몇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나 스스로라도 움직임을 줄여야 한다.
"아빠. 물 갖다 주세여"
"아빠. 오줌 마려워여"
"아빠. 이거이거. 오리고기 더 갖다 주세여"
"아빠. 아까 그 케이크 같은 거 갖다 주세여"
"여보. 시윤이 이것도 좀 갖다 줘"
"여보. 나 음료수 좀"
음식이 맛있었지만, 정신없이 분주했고, 그렇지만 대화도 가능했던 묘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신림동으로 갔다. 자고 가기로 했다.
밤에는 장례식장에 다녀와야 했다. 나 혼자. (내) 엄마는 교회에서 무슨 교육이 있어서 밤 10시나 돼야 오신다고 했다. 아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눈을 붙였다. 나도 엄청 피곤하긴 했는데, 아빠한테 애 둘을 맡겨 놓기가 미안해서 자지 않았다. 시윤이는 할아버지랑도 엄청 잘 놀았고, 소윤이도 할아버지랑 잘 놀긴 했지만 확실히 할머니를 자주 찾았다.
"할머니 언제 와여? 할머니 보고 싶다"
아빠도 우리(나, 아내, 소윤, 시윤)도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에는 간단히(?) 치킨을 먹었다. 애들은 밥도 주고. 치킨 껍질을 튀길 때 매운 걸 넣었는지 매콤한 맛이 나서 껍질은 벗기고 살만 발라줬다.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은 교촌도, 비비큐도, 비에이치씨도, 처갓집도, 페리카나도, 바른치킨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맥칸치킨도 아니다. 뭐가 됐든 애들 다 재우고 아내랑 비밀스럽게 뜯는 치킨이 지상 최고의 맛이다. 이건 뭐 애들 발라주느라 정신없었다.
그러고 나니 장례식장에 가야 할 시간이라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나오기 전에 친구가 사회 사례비로 준 돈을 모두 아내에게 줬다. 아내는 아침에 축의금 얘기를 했더니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금액이 크다며 당황했다.(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여섯 번째인데) 그러더니 적금에서 긴급 출금 서비스를 이용한다느니 어쩌느니 이야기를 하길래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꾹꾹 참았다. 그게 뭐든 자기(아내) 친구의 경조사와 아기의 탄생 및 각종 기념일을 챙길 때, 한 번도 그런 내색(이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아내의 오늘의 그것과 같은)을 한 적이 없었다.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왔는데 여전히 냉랭한 나의 지갑 사정을 떠올리면 꾹 참고 지갑에 온정을 베푸는 게 맞지만, 그냥 짜증이 나서 아내한테 다 가지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엄청난 거금인 것 같지만, 그건 아니었다)
장례식장에는 나를 포함해 친한 친구 네 명이 함께 갔다. 한 명은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애가 없었고, 두 명은 시윤이랑 친구인 아들을 하나씩 두고 있었다. 아까 결혼식장에서 헤어질 때부터 꿍꿍이를 짜고 있었고, 각자 집에(아내에게) 허락을 득하고 나왔다.
"야. 어디로 갈까?"
"그러게. 이 근처에서? 아니면 동네로?"
"그냥 맨날 가던 데로 가자"
"그래 그럼. 고시촌으로"
각자 차를 가지고 고시촌으로 달렸다. 신나게.
"여보"
"어"
"애들은 괜찮아?"
"어. 괜찮아. 다 씻겼어"
"아. 그래? 여보. 나 지금 장례식장에서 나왔어. 나 집으로 가도 되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야. 친구들 만난다며"
"아니. 생각해 보니까 여보랑 아빠랑 둘만 있는 건 처음이더라고"
"아. 괜찮아"
"난 진짜 돌아가도 괜찮은데"
"아니야. 오랜만에 실컷 놀고 와"
"그래. 고마워"
아내가 돌아와 달라고 하면 정말 갔겠지만, 슬펐겠지.
우리는 2시까지 플스방에 있었다. 친구 한 명이 얘기했다.
"내 안의 위닝 열정이 다 식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동감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날락하던 플스방도 이제 1년에 두어 번 갈까 말까여서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이게 또 친구들이랑 만나서 패드를 잡으니, 몸이 기억하고 있네.
그나저나 위닝은 진짜 명작이다. 아니 열네 살 때 하던 게임이 서른다섯이 되어서도 이렇게 재밌으니 어쩌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