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24(주일)
소윤이랑 시윤이가 몇 번씩 방에 들어와서 아내와 나를 깨웠던 것 같은데, 나도 아내도 그대로였다.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잘 수 있는 한 최대한 늦은 시간까지 자다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상 받아먹고.
"아빠. 나는 아침부터 아이스크림 먹었어여"
소윤이가 할머니네 집에 오기를 즐거워하는 가장 큰 이유겠지. 할머니, 할아버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소윤이의 모습은 확연하게 다르다. 카시트에 앉아 차 문을 사이에 두고 온갖 인사를 나누는 걸 보고 있자면, 그렇게도 좋을까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
엄마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교회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지 않았다. 20분 걸리는 우리 집에서는 맨날 늦는데. 시윤이는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지 교회 가는 차 안에서 잠들었다. 평소 낮잠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언젠가 아내가 얘기하길, 주일날 차 안에서 자는 게 가장 영양가 없다고 했다. 예배 시간에 자면 예배를 편하게 드리고, 예배 끝나고 자면 카페에서 편히 있을 수 있는데 차에서 자는 건 정말 아무런 유익이 없다. 교회에 도착하니 번쩍 눈을 떴다.
소윤이는 새싹꿈나무 예배드리러 가고 시윤이와 함께 본당으로 갔다. 어찌나 졸리던지, 목사님의 말씀이 시작함과 동시에 눈이 막 감겼다. 이미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옆에 앉은 아내도 부창부수였다. 오늘은 시윤이가 다른 날에 비해 얌전해서 훨씬 예배드리기 좋았는데, 몸이 편하니 이런 부작용이 생기나 보다. 그걸 알고 그동안 시윤이가 그렇게 우리를 귀찮게 한 건가.
보통 주일 아침에는 밥을 잘 안 먹는데, 오늘은 배불리 먹은 탓에 점심은 거르기로 했다. 물론 아내와 나에게 한정되는 이야기고, 애들은 먹여야 했다. 점심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윌] 근처에 있는 [선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먹기로 했다. 아내 말로는 싸고 양 많고 맛있는, 가성비 좋아서 손님 많은 식당이랬는데, 정말 그랬다.
토마토 파스타와 새우볶음밥을 시켰는데, 파스타는 고르곤졸라밖에 안 된다길래 해물 쌀국수로 변경했다. 강시윤은 음식이 나오기도 전부터(즉, 앉자마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나 오늘 쉽지 않을 거야'
이런 기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울고, 떼쓰고, 드러눕고. 하필 하나 있는 아기 의자를 다른 손님이 쓰고 있어서 일반 의자에 앉혔더니 더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볶음밥이랑 쌀국수가 나왔는데 정말 양이 많긴 많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그릇에 볶음밥을 조금씩 덜어줬다. 시윤이는 여전했고. 쌀국수가 나왔는데 바지락조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도무지 바지락을 무시하고 젓가락을 넣을 수 없는 규모였다. 바지락의 살을 하나씩 발라 내고 살은 다시 국물에, 껍질은 빈 접시에 담았다. 눈 앞에서는 강시윤이 생난리를 피우고, 아내는 쩔쩔 매고. 바지락을 하나하나 들추다 보니 왠지 모를 열불이 났다.
'이 따위로 음식을 만들면 살 발라내다 나가라는 거야 뭐야'
'백종원 오면 이거 당장 지적당하겠구만'
'다시는 안 시킨다. 아내랑 둘이 와도 절대 안 시킨다'
'망할 놈의 해물 쌀국수. 바지락도 해물이냐'
다 발라내려면 30분은 걸릴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차오른 분노대로 행동하자면, 바지락을 통째로 넣고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어느 정도 젓가락질이 가능한 정도로만 발라내고 때려치웠다. 바지락 산 밑으로 많은 양의 면발이 잠겨 있었다. 맛있었는데 맛있지 않았다. 강시윤이 얄미웠다.
'고얀 놈'
"여보. 식사의 질은 시윤이가 결정하는 것 같아"
라는 아내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 가족의 식사 시간은 휙휙 바뀐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시윤이의 생떼는 그치지 않았고, 내가 먼저 데리고 나갔다. 엄한 호통과 함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앙"
또 꼬집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카페도 가기 싫고, 그냥 커피만 사서 집에 가고 싶었지만 소윤이가 원했고 아내도 원했다. 시윤이는 잔뜩 의기소침해서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아내가 사 온 빵을 보고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딱 아내와 내가 커피 마실 동안만 앉아 있다가 나왔다.
잠시 집에 들렀다가 홈스쿨 부모 OT가 있어서 교회(우리가 다니는 홍익교회 아님)에 갔다. 열 가정 정도가 왔고 애들도 꽤 많았다. 부모들의 원활한 OT를 위해 아이들은 따로 공간을 마련해 주고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여러 명이 함께 노는 걸 보니 또 소윤이의 새로운 특성을 볼 수 있었다. 소윤이는 잘 삐진다. 집에서도 툭하면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는 삐진 내색을 자주 하는데, 친구들이랑 놀 때도 비슷했다. 악한 말과 행동이 아니면, 웬만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는 편이라 크게 개입하지는 않았다. 또 소윤이한테 약간 독단적인 기질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섯 살이 되니 자기가 큰 만큼 친구들도 커서 예전처럼 소윤이한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소윤이도 그 상황이 당황스럽지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상과 사람이 자기 뜻대로 안 된다는 걸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시윤이는 잘 놀다가, 늦게 온 아이 데려다주러 온 아내 얼굴을 보더니 곧바로 아내한테 가겠다고 울었다. 어쩔 수 없이 시윤이는 중간에 아내가 데리고 갔다.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꽤 늦게 집에 돌아왔다. 둘 다 잠들었다. 웬만하면 씻기지 못하고 자는 걸 찝찝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자랑은 아니지만), 오늘은 굉장히 마음에 걸렸다. 더 심한 데서도 지내다 온 다른 날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유독 그랬다. 그렇다고 잠든 아이를 깨워서 씻기고 다시 재우는, 현명하지만 용기 있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자기 전에 따뜻하게 적신 손수건으로 손과 발, 얼굴을 닦아주며 미약하게나마 죄책감을 씻어냈다.
니네를 깨끗이 씻기지 않고 재운 건 미안하지만 너네도, 특히 강시윤 너는 오늘 엄마, 아빠에게 미안할 짓 많이 했잖아. 또이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