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먹은 날

19.03.26(화)

by 어깨아빠

홈스쿨 모임을 마친 아내가 파주(나의 사무실, 처갓댁이 있는 곳)로 온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친정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애 둘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 보면 참 대단하기도 하고, 얼마나 고될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대단하다. 은근히 강인하단 말이야.


퇴근해서 처갓댁으로 갔더니 소윤이랑 시윤이는 장모님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보다 넓으니 숨을 데도 많은 데다가, 시윤이가 매우 협조적(비협조적일 때도 고의는 아니었을 거다. 어려서 이해력이 부족했을 뿐)이어서 소윤이, 시윤이 모두 즐거워했다.


아내는 컴퓨터에 앉아 홈스쿨과 관련된 문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옆 침대에 누웠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장모님을 성가시게 하는 대신, 아내와 나는 건드리지 않았다. 수다를 겸한 휴식을 취했다. 장모님이 소윤이와 시윤이 씻기는 것도 맡으셨다. 이쯤에서 항상 비슷하게 내뱉는 아내의 말에는, 언제나 진심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 제가 할게요"


제가 하는 것 치고는 엉덩이가 꽤 견고하다.


씻기고 옷 입혀서 근처에 있는 돈까스 집으로 갔다. 장인어른도 퇴근하고 그리로 오셨다. 소윤이랑 시윤이 모두 무지하게 졸렸다. 소윤이는 먹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니 그래도 꾸역꾸역 먹어야 할 만큼은 먹었다. 시윤이는 잘 먹지 않았다. 처음에 새우 볶음밥은 아예 입에도 안 댔다. 그러다 흰 밥을 주니 그건 잘 먹었다. 소윤이는 할머니 집에서 온갖 군것질을 많이 했다더니, 스스로 양심이 발동했는지 카페로 옮기는 길에 편의점 들르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장모님, 장인어른이 자주 가시는 단골 카페라 조금 이해해 주시긴 해도, 오늘 같은 날은 어쩌면 단골이라 더 말 못 하신 건지도 모른다. 시윤이는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면서 냉장쇼케이스 발로 차고, 진열장 두드리고. 소윤이는 괜히 시윤이 따라 한다고 똑같이 하고, 자잘자잘한 번잡스러움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늦기도 했지만 애들의 난쟁이 점점 극으로 치달아서 금방 나왔다. 오늘은 둘 다 타자마자 조용해졌다.


소윤이는 낮에 홈스쿨 모임 할 때, 꽤 오랜 시간 혼자 삐져 있었다고 했다.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스스로 소외시켰단다. 단 둘이 만나서 놀 때는 자기 고집도 받아주고, 뜻대로 해주던 친구들이, 여러 명이 함께 모여서 노니 소윤이를 빼고도 짝짜꿍이 맞으니 굳이 그러지 않는 거다. 소윤이에게는 아마 낯선 풍경인가 보다. 독불장군처럼 굴어서는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것, 아주 작은 일에 그렇게 일희일비해 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것, 아무리 삐져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 또래의 친구 사이에 있으면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것 같아 걱정과 고민이 많다. 혹시 뭔가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게 그런 성향이 강화되도록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건 아닌지. 어느덧 다섯 살이라고 하니, 문득문득 더 겁이 날 때가 있다. 홈스쿨을 결정하고 나서는 괜히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오늘은 별로 한 게 없어서 생각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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