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넷이서

19.03.28(목)

by 어깨아빠

차를 두고 출근했지만 다른 날처럼 힘들거나 슬프지 않았다. 제주도로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아내는 4박 5일 치의 짐을 싸고 시간에 맞춰 나를 태우러 사무실에 오기로 했다. 낮에 장모님이 집에 오신 덕분에 아내는 짐 싸기에 한결 집중할 수 있었다. 챙겨야 할 짐을 묻고 대답하는 아내와 나의 카톡 메시지에 '신남'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아내는 늦은 오후쯤 아이들과 장모님을 태우고 파주(처갓댁)에 갔다가 사무실로 왔다.


소윤이는 진작부터 제주도에는 몇 밤이나 더 자야 가느냐며 설렘을 드러냈었다.


"소윤아. 드디어 제주도 간다. 우와. 우리 숙소에 엄청 큰 욕조도 있어"

"오늘 가면 물놀이할 거에여?"

"그럼"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두 녀석은 최상의 상태였다.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수속을 밟고 보안 검색을 마친 뒤 비행기에 탈 때까지 막힘이 없었다. 아이들과 다닐 때 거추장스러워서 한동안 들고 다니지 않았던 카메라를 챙겼는데, 적당히를 모르는 소윤이가 카메라에 집착하는 바람에 잠시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뭐. 비행기에 타서도 결코 수월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시간이 워낙 짧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역시나 소윤이 보다는 시윤이가 관건이다) 아마 일본 정도만 됐어도 이미 비행기 안에서 모든 진력을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우와. 소윤아. 드디어 제주도다"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렌터카 예약시간이 오후 8시였는데 공항에 7시 50분쯤 떨어졌다. 8시 이후로는 공항에서 대여장소까지 데려다주는 셔틀버스가 30분에 한 대씩이라 나만 부지런히 뛰었다. 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을 때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여기 버스 타는 곳. 왜?"

"아. 우리 짐이 엄청 빨리 나와서. 그냥 우리도 같이 가면 될 것 같아"

"그래? 그럼 얼른 와"

"어디로 가야 돼?"

"나와서 오른쪽으로 쭉 와. 5구역까지"

"알았어"


아내는 20kg 넘는 캐리어, 16kg의 소윤이, 13kg의 시윤이를 홀로 데리고(혹은 끌고) 간신히 도착했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하아. 여보. 힘들다"


렌터카를 찾고 유모차, 카시트도 찾으러 갔다. 모든 착장을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인 제주 일정 시작. 일단은 마트부터 갔다. 숙소에 가서 먹을 저녁거리를 좀 사려고 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조리 없이 데우기만 해서 먹을 수 있는, 그런 걸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햇반과 컵라면, 계란, 소시지 등을 샀다.


첫 번째 숙소의 가장 큰 장점은 목욕탕 스타일의 커다란 욕조가 있고, 자는 방과 거실이 분리된 것이었다. 그동안 어디를 가든 주로 원룸형 숙소에서 지냈기 때문에, 애들 재우고 아내랑 오붓하게 영화라도 한 편 보려고 하면 소리는 작게 작게 하고 작은 뒤척임에도 흠칫 놀라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아내는 간단하게나마 저녁을 준비하고 난 두 녀석과 함께 바로 욕조에 입성했다. 소윤이도 좋아하긴 했는데 시윤이가 아주 난리였다. 까악 까악 소리를 질러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소윤이는 특유의 까탈스러움을 드러내며


"강시윤. 누나한테 물 튀잖아. 하지 마"


같은 말을 많이 했다. 물놀이와 물튐은 불가항력적인 관계라는 끊임없이 설명해줬다. 아내가 저녁상을 다 차렸다며 이제 나오라고 얘기했다. 소윤이, 시윤이는 내일도, 모레도 이 욕조는 우리의 것이니 너무 미련을 두지 말자는 나의 권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빠. 이제 밥 먹고 뭐해여?"

"응? 뭐하긴. 밥 먹고 자야지"

"아. 더 놀고 싶은데"

"소윤아. 이미 엄청 많이 늦었어. 벌써 11시가 넘었어"

"오늘은 내가 낮잠 자서 늦게까지 노는 거에여?"

"그렇지"


저녁을 먹고 아주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누웠다. 아내가 가장 먼저 잠들었다. 그다음 소윤이. 시윤이는 바뀐 잠자리가 어색했는지 꽤 뒤척이다 잠들었다.


"혀보호. 혀보호"


아내는 반응이 없었다. 살살 흔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갔나 보다'


체념하고 그대로 누워 잠시 휴대폰을 보는데 아내가 깼다.


"여보"

"어"

"애들 자?"

"어. 자지. 여보도 피곤하면 그대로 자"

"아이. 그래도"

"아까 깨워도 못 일어나더만"

"내가? 그랬어?"

"어. 피곤하면 일찍 자. 아직 남은 날이 많잖아"

"아. 피곤하긴 하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피곤하지 뭐. 애들이랑 다니는 게"


아내는 다시 눈을 감았고, 난 나왔다. TV가 없었다. 그래, 맞다. 이 숙소는 TV가 없었다. 그냥 자기가 억울해서 노트북을 펴서 일기를 하나 쓰고, 라디오스타를 시청했다. 거실과 방이 분리되어 좋아했는데, 또 나와 나머지가 분리되었구나.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제주도에서 느껴지는 삼송 육아의 향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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