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17(월)
아침부터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싸늘했다. 어젯밤 그대로 잠들어서 아침에 깬 아내는 표정부터 말투까지지 어두움 그 자체였다. 걱정스러웠다. 순간의 분노나 짜증이 아닌 잘 숙성된 고농축 우울함이었다. 애들하고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낮잠 늦게, 많이 잔 소윤이가 밤에 잘 안 잘 거라는 건 당연하지 않나? 내가 깨워도 못 일어난 걸 왜 아침부터 짜증 폭발인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도 그런 상황에는 자주 짜증내기도 하고 틱틱거리기도 하니까. 어쨌든 출근했다. 일 하다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내는 여전히 짜증이 한가득이었고 애들한테는 날이 서 있었다.
"여보, 오늘 밤에 자유잖아, 조금만 참아"
"그거랑은 다른 문제야. 그걸로는 해결이 안 돼. 정리가 안 된 감정이 있어"
"아..."
말문이 막혔다. 아내가 하는 말이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지만 납득되지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어디까지, 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생각이 아니라 원망 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둘을 데리고 있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후에 전화가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우리 지금 병원에 갔다 왔어여"
"병원? 그게 무슨 소리야?"
"시윤이가 턱 있는데서 넘어졌어여"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턱 있는데서 넘어져서 다쳤다구여"
아내가 옆에서
"소윤아 그건 엄마가 얘기할게"
라며 말을 끊었다. 아내나 나나 소윤이랑 통화할 때 말을 끊거나 대신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내가 전화를 이어받았다.
"시윤이가 넘어졌어"
"어디서? 어떻게?"
"소윤이가 기침을 하다가 너무 심하게 해서 토했거든. 소윤이한테 간다고 유모차에서 손을 놨는데 유모차가 찻길 쪽으로 가다가 턱에 걸려서 넘어졌어"
"많이 다쳤어?"
"턱 쪽에 상처가 났어"
"까졌어?"
"꿰맬 정도는 아닌데 까진 것보다는 깊이"
"어떻게 됐다는 거야?"
"유모차가 찻길 쪽으로 넘어졌다니까. 큰일 날 뻔했지"
화가 났다. 부주의함 때문에 다친 게 아니라 아침부터 이어진 아내의 짜증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이가 갑자기 토하고 시윤이는 굴러서 피를 철철 흘리고 아내가 얼마나 정신없고 놀랐을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보통 이런 경우 아내는 말 한마디를 원한다. 연애할 때부터 그 말 한마디를, 작은 태도 하나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내는 항상 서운해했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가장 아파할만한 말을 하는 고약함과 동시에 상대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끝까지 안 하는 고약함. 난 이런 못된 구석을 지니고 있다. 병원에 가서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고 통화를 끊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갔을 때는 아내도 나름 마음을 추슬렀는지 다들 괜찮았다. 나는 아니었지만.
저녁을 먹는데 시윤이는 또 아기의자에 앉기 싫다며 일어서서 울고 아내한테만 먹여달라고 하고. 소윤이는 잘 안 먹고 뺀질뺀질거렸다. 몇 번을 꾹꾹 참고 좋은 말로 잘 타일렀지만 소윤이는 듣지 않았다. 소윤이가 막 기분이 안 좋거나 울고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웃으며 뺀질거리고 있었다. 밥을 부지런히 먹지 않고, 감사히 먹지 않는 것은 마땅히 혼내야 할 일이다. 혼냈다.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는데 그걸 계기로 내 안에 쌓여 있던 분노나 짜증, 화를 다 쏟아냈다. 결국 또 소윤이가 피해자가 됐다. 아내는 나갔다. 아내가 나가고 나서도 추스르는데 한참 걸렸다. 폭발해버린 소윤이의 서글픔과 슬픔도 받아주지 않았다. 하필 시윤이는 엄마가 나가고 나니 또 나한테 딱 붙어서 안겨 있었다. 나는 시윤이를 안고 있었고 소윤이는 그 옆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고. 좋지 않은 구도였지만 나도 한참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한 숨을 쉬며 시간을 보냈다.
"소윤아, 들어가서 자자"
소윤이는 계속 훌쩍거리며 엄마를 찾고 있었다.
"엄마 나간 거 알잖아. 엄마한테 그렇게가고 싶으면 문 열고 혼자 나가. 그만 울고. 계속 울면 아빠는 시윤이만 데리고 들어가서 잘 거야"
소윤이는 억지로 울음을 참았고 함께 방에 들어갔다.
"아빠 책 몇 권 읽어줄 거에여?"
"책은 무슨 책이야, 그냥 자"
"으아아아아아앙"
"아빠도 이런 기분으로는 책 못 읽어. 오늘은 그냥 자"
"책 읽고 싶어여어어어어"
"계속 울면 아빠 나갈 거야"
소윤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소윤이에게 말을 걸었다.
"소윤아"
"....."
"아까 아빠한테 안길래? 싫으면 그냥 자도 되고"
"안길래"
소윤이가 내 팔을 베고 누웠다. 여전히 훌쩍 거리고 있었다.
"소윤아, 많이 속상해?"
"응"
"뭐가 제일 속상해?"
"아빠가 혼낸 게"
"소윤아. 소윤이가 밥을 안 먹고 계속 장난치고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잘못한 거야 아니야?"
"잘못한 거야"
"그렇지? 그래서 아빠가 그건 혼낸 거야. 소윤이도 그건 알지?"
"응"
"소윤이가 밥 안 먹어서 혼낸 건 맞는데. 아빠가 무섭게 얘기하고 다정하게 얘기하지 못한 건 아빠가 잘못한 거야. 그건 아빠가 소윤이한테 사과해야 하는 게 맞아. 그건 아빠가 미안해. 사과할게"
"....."
"아빠가 그건 정말 미안해"
"네"
"아직 많이 속상하지?"
"네"
"그래. 이따 엄마 오면 소윤이 옆에 누우라고 할 테니까 너무 많이 울지 말고 이제 얼른 자. 알았지?"
"네"
훌쩍훌쩍 대더니 금방 잠들었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 예능 레전드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아내는 멀쩡해 보였다. 오히려 나의 상태를 걱정했다. 근본적인 원인 제공은 아내였는데 아내는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내가 그저 소윤이와의 일로 붕괴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치킨을 사 갈까라고 물어왔다. 그러라고 했다. 마음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치킨은 맛있게 먹었다. 치킨을 먹어서 그런 건지 아내랑 얘기를 좀 해서 그런 건지 (전혀 상관없는 수다였지만) 잠시 괜찮아진 듯했다.
소윤이는 두 번 깼다. 아내가 오기 전에 한 번, 아내가 오고 나서 한 번. 처음에 깼을 때
"소윤아, 아직도 속상해?"
"네"
두 번째 깼을 때
"소윤아, 지금도 속상해?"
"아니여"
"지금은 괜찮아졌어?"
"괜찮아여"
"그럼 아빠한테 뽀뽀해 줄 거야?"
"네"
나름 열심히 사는데 왜 맨날 미안한 일 투성인 거지. 하아. 힘들다 애 키우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