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과 파도가 지나갈 때

18.09.18(화)

by 어깨아빠

모두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아내가 애들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한다며 출근하는 길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병원에 내려주고 출근했다. 점심 무렵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낮잠 시간이 또 괴로워지고 있음]

[30분째야]


소윤이가 낮잠을 자러 들어가서 또 아내의 화를 돋우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 한 시간쯤 또 카톡이 왔다.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아마 소윤이가 보낸 듯했다.


[소윤이가 보낸 거야]

[안 잤어]


그러고 또 한 시간쯤 뒤 이번에는 전화가 왔다.


"아빠아아"


소윤이는 울고 있었다.


"소윤아, 왜 울어?"

"아빠, 집에 오면 안아주세여"

"응?"

"집에 오면 소윤이 안아주세여"

"알았어, 소윤이 왜 울어?"

"엄마가 밥 안줘서여"

"엄마가?"

"네, 오늘은 굶으래여"

"왜?"

"깜빡 잊고 밥을 안 했다고 오늘은 굶으래여"

"어, 그래, 엄마 좀 바꿔줘"


"어"

"무슨 소리야?"

"소윤이가 말한 그대로야"

"응?"

"오늘은 아무것도 해주기 싫다고 했어"

"낮잠 안 잔 것 때문에?"

"어"

"....."

"밥하고 있어, 이따 전화할 게"


이런 전화를 받으면 다른 남편들, 아빠들은보통 어떻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난 심란했다. 딱 말 그대로. 이거 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일이 손에 안 잡혔다. 20-30분 후 카톡이 왔다.


[전화받고 심란했지? 나는 통화하고 나서 정신이 좀 들었네. 소윤이랑 잘 풀었고 괜찮아졌어요]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나의 심경과 생각을 깡그리 적었다. 초 장문의 답장이 왔다. 나의 얘기에 대한 아내의 생각과 바람 등이 적혀 있었다. 아내는 오늘 소윤이가 낮잠 안 자서 일찍 잘거니 잠깐이라도 나갔다 오라고 하려 했다며 그럴 생각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딱히 어디 가고 싶은 데는 없었지만 왠지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좀 떨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퇴근했더니 소윤이가 반갑게 달려오면서


"아빠, 아이스크림 사러 가여, 아이스크림"


이라고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스크림이여 아이스크림"


"아, 소윤이가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길래 아빠 오면 가자고 했거든"


저녁 먹고 사러 나가는 것으로 조정했다. 시윤이는 여전히 울보였다. 엄마 옆에만 딱 붙어 있으려 하고 조금이라도 엄마가 멀어지면 막 울면서 엄마를 쫓아다녔다. 소윤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그때부터 심해진 것 같다. 엄마를 독점하던 시간이 갑자기 훅 사라지니 그게 스트레스인 건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밥 먹을 때도 나는 무조건 거부하며 울고 아내가 앉아서 먹이면 받아먹는다. 어제는 내가 숟가락으로 떠 주니 그 숟가락을 손으로 잡아서 아내가 있는 쪽으로 가지고 갔다. 오늘도 처음에는 내가 앉아서 먹이려 했지만 강력히 거부하는 바람에 아내가 앉아서 먹였다. 아내는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라면을 끓여줬다. 엄마가 먹인다고 또 고분고분한 것도 아니다. 뭐가 불만인지 갑자기 막 울고 일어나고 내려놓으면 내려놨다고 울고. 울음을 멈추는 건 딱 한 가지 경우다. 아내가 안아줄 때. 엄마 품을 떠나면 누나한테 뺏긴다고 생각하는 건가. 계속 울길래 내가 먼저 유모차에 태워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랬더니 또 괜찮다. 답답해서 그런 건가. 한 세명쯤 키워 보면 척하면 척 알 수 있으려나. 도무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아무튼 시윤이랑 밖에서 나름 재밌게 놀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소윤이는 오늘 밥을 잘 먹었다. 밥 다 먹고 다 같이 단지 입구 슈퍼마켓에 갔다.


"아빠는 뭐 먹을거에여?"

"아빠는 안 먹어도 되는데"

"아빠 먹어여, 내가 사줄게여"

"괜찮은데"

"아빠 무슨 맛 좋아해여?"


돈도 없는 게 뭘 사주겠다고 자꾸 고르란다. 시윤이만 빈 손이고 소윤이, 나, 아내 모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내랑 애들은 그대로 집으로 올라가고 난 운동하러 갔다. 운동하고 나서는 어디로 갈지 정하지는 못했고 일단 운동부터 했다. 이럴 때 밤에 만나서 축구할 사람들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하고 나와서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스타필드에 갔다. 그냥 가서 혼자 여유롭게, 아내가 월요일에 그러는 것처럼 둘러보고 싶었다. PK마켓에 가서 한 바퀴 돌았다. 스타필드 근처에 있는 12시까지 하면서 분위기도 괜찮고

커피맛도 나름 괜찮은 한번 가봤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열심히 일기를 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고 그 때문인지 아니면 열심히 일기를 써서 그런지 아무튼 찌그러졌던 마음도 많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다. 카페 마감 시간이 다 돼서 지금은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안에서 나머지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아내는 자고 있지 않을 것 같다. 올라가면 아내를 마주하게 되고 며칠간의 난쟁이 어쨌든 봉합될 것 같다. 대체로 그랬다. 부디 이런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를 바라본다. 더 바란다면 성장과 성숙의 대가로 가족이 쓰이는 횟수도 줄어들었으면 한다. 아무튼 어렵다.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사람 노릇.



덧붙임)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애들 재우고 나서 통화를 했었으니까 아마 누군가 깨서 다시 재우러 들어갔다가

그대로 전사한 모양이다. 적막함이 반갑다. 고요함이 반갑고. 한참 즐기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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