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의 끝은 어디인가

18.09.19(수)

by 어깨아빠

아내의 목장 모임이 있는 날. 애 둘을 데리고 있는 데다가 차가 없어 기동력이 떨어지는 아내를 위해 우리 집에서 고정으로 하고 있다. 집을 내어주기 위해 청소와 정리를 열심히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쨌든 깨끗해지는 거니까 나름 유익함이 있다. 열심히 말씀과 삶을 나누는 어른들 틈바구니에 소윤이 시윤이도 함께 한다.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자상하냐면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손수 과일을 깎아 준비해주시는 정도라며 어느 집사님이 얘기를 하자 옆에서 딴짓하고 있는 듯 보이던 소윤이가 아내에게


"엄마, 시안이 아빠도 그러잖아"


라고 말했다. 지난번 홈스쿨링 때문에 만났던 시안이네 아빠가 한참 동안 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접시에 담아내어 오는 걸 기억했나 보다. 낮말은 소윤이가 듣고 밤말도 소윤이가 듣고. 소윤이 앞에서는 기침도 함부로 못한다. 목장 모임의 최대 혜택은 끝나고 나면 거의 1시-2시라는 것. 오전뿐만 아니라 오후까지 거저먹는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효과일 뿐 실제는 아니지만)


퇴근해보니 집이 북적북적했다. 하람이(505호 사모님 딸, 소윤이 베프), 수윤이(전 어린이집 오빠), 다원이(같은 동 친구, 하람이랑 더 친함) 가 엄마들이랑 와 있었다. 놀이터에 놀러 나갔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다 우리 집으로 피신 겸 놀러 왔다. 나의 등장으로 인해 오래지 않아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아내는 설 선물 사러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한살림에 잠시 다녀온다며 나갔다. 원래 시윤이만 데리고 가려했으나 소윤이가 자기도 따라간다길래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갔다. 그 사이 나는 처분이 임박한 반찬 몇 가지를 넣어 볶음밥을 만들라는 아내의 지시에 따라 잡탕 볶음밥을 제조했다. 만드는 김에 아내가 먹을 만큼 만들었는데


[이삭 토스트 사 감]


이라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하여간 이런 자잘한 군것질 같은 식사 참 좋아한다. 빵도 참 좋아하고. 아내 몫으로 만든 볶음밥은 비상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얼려 놨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그럭저럭 맛있게 잘 먹었다. 애들 재우고 운동 갔다 와서 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 아내가


"우리는 어제 그 카톡으로 정말 얘기가 다 끝난 거야? 여보는 나한테 할 말 없어?"


라며 얘기를 꺼냈다. 할 말이 없었던 건지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건지 아무튼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는 물러설 뜻이 없어 보였고 아내의 수를 받아 대화의 테이블에 앉았다. 할 말 없냐는 물음은 보통 '난 할 말 있다'는 뒷 말을 포함한다는 걸 알아서 어쩌면 더 내키지 않았나 보다.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그냥 일단 미루고 싶었나 보다. 내가.


역시 아내도 나도 듣고자 하는 마음보다 들려주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컸다. 개운치 않았다. 아내가 내 얘기를 충분히 듣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아내도 나처럼 생각하는 게 느껴졌고. 이래서 한참 미루고 나서 기억이 난다면 그 언젠가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쨌든 모든 대화가 끝난 건지 아니면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찜찜한 상태로 대화는 중단 혹은 마무리되었고 침묵 속에 각자 할 일을 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수 분간 지속됐다. 자기 전에는 서로 웃으며 일상의 수다를 나눴으니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인가.


여보.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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