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19.04.29(월)

by 어깨아빠

아내의 몸이 정상이 아니다. 엄청 아픈 건 아닌데, 눈과 코가 엄청 간지럽다고 한다.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처럼. 안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는데도 소용이 없다. 정확한 원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면역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 같다. 어제는 소윤이도 비슷한 증세를 보여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별 일이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하람이네를 가장 많이 만난다. 오늘도 하람이네랑 시간을 보냈다. 퇴근할 무렵에도 하람이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주차하고 놀이터로 갔다. 내가 아이들을 보고, 아내는 바로 집 근처 내과에 가보기로 했다.


"소윤아, 시윤아. 10분만 더 놀고 들어가자?"

"네"


약속했던 10분이 지나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들어가자"

"으으응(아니라는 의미)"


소윤이가 고개를 저었다. 말 안 듣고 고집부리려고 시동 걸 때 나오는 반응이다. 좋게 타이르면 순순히 뜻을 접기도 하고, 아니면 더 강하게 반항하기도 한다.


"소윤아. 아까 약속했잖아. 이제 들어가자"

"싫어어어어어어"


소윤이가 소리를 빽 지르며 주저앉았다. 울기 시작했다.


"소윤아. 아빠한테 무슨 태도야. 그렇게 울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빠. 조금만 더 놀고 갈래여"

"이미 늦었어. 아빠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굴면. 오늘은 일단 들어가자"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윤아. 너 자꾸 이렇게 해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얼른 울음 그치고, 아빠한테 버릇없이 그만 하고 들어가"

"싫어여어어어어어어"

"그럼 아빠는 시윤이만 데리고 들어갈 테니까 너 혼자 놀다 오던지"

"아니야아아아아아아"


시윤이는 내 손을 꼭 잡고 서서 이 상황을 조용히 관망했다. 소윤이도 결국 일어났다.


"남옥 이모랑 하람이한테도 인사하고 와"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소윤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강소윤, 화장실 가서 손 씻고, 안방으로 들어와"


너무 졸려서 다소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걸 핑계로 봐줄 일은 아니었다. 내 안에서 정상참작은 해주더라도. 병원에 간다던 아내가 여전히 집에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접수는 마감이 됐다고 해서 못 갔단다.


소윤이는 방에 들어와서도 한 번씩 파닥(?) 거렸다. 꽤 오래 걸렸다.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나오면 소윤이가 뒤끝이 있고 그러지는 않다.(진짜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고, 늘 궁금하지만) 본인이 납득한 경우에는 그래도 감정의 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거라고 믿고 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 저녁을 먹었다. 한 끼 먹는데 한 세월이 걸리는 소윤이의 모습에도 크게 뭐라 하지 않고, 잘 참았다.(퍽퍽 시원하게 밥을 떠먹지 않고 자꾸 다른 짓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정말 큰 인내가 필요하다) 이제 거의 다 먹은 거 같길래, 더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몇 차례 물어봐도 남은 걸 마저 먹겠다고 했지만 줄어들지 않았다.


"소윤아, 그럼 이제 그만 먹어"

"아빠아아아아아, 싫어어어어어, 더 먹을 거야아아아아"


글쎄, 뭐 나도 엄청 다정함이 묻어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떤 제재를 가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그만 먹으라는 말이었는데, 소윤이는 오해했다.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냈다. 아무리 말해도(아무리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너무 짧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강소윤, 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처치홈스쿨도 가지 마. 가서 배운 걸 지키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가. 내일은 처치홈스쿨 가지 마"

"아아아아아악. 싫어여어어어어어"

"이것 봐. 또 똑같잖아"

"아빠. 처치홈스쿨 갈 거에여"

"됐어. 오늘은 끝났어. 내일 가지 마"


그러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협박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진짜 안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내가 개입했다. 소윤이는 아내와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윤이는 자기도 따라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내가 안고 잘 설명했더니 금방 뜻을 접었다. 둘째의 눈치는 신이 주신 축복이다.


아내와 소윤이는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왔다.


"아빠. 아까 제가 소리 지르고 짜증 낸 거 죄송해요"

"그래. 엄마랑 이야기 잘했지?"

"네"

"알았어. 아빠도 화낸 거 미안해"

"아빠. 아까 저는 밥 다 먹으려고 했는데 아빠가 치워서 속상한 마음이 조금 있었어여"

"그래. 아빠는 소윤이가 다 먹은 줄 알았지.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짜증 내지 말고 얘기해. 알았지?"

"네"


소윤아, 아빠가 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다. 너 바른 사람으로 자라라고 가르치기 위한 거 반, 그냥 아빠의 덜 된 성품 때문에 그러는 거 반이야. 어떻든, 어느 순간에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식탁을 치우는 아내를 보더니 시윤이가 말했다.


"빠? 은나? 안머? 아빠? 치?"


아내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3살의 언어.


[누나가 밥 안 먹어서 아빠가 치웠어요?]


대충 이런 뜻이다. 동생의 외계어에 소윤이도 웃음을 찾았다. 친구한테 빌릴 게 있어서 신림동에 가야 했다. 아내의 free day는 내일로 미뤘다. 아내는 빨래를 널고, 처치홈스쿨 반찬(새우야채볶음)을 만드는 게 오늘의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여보. 갔다 올 게. 소윤이 좀 많이 안아주고"

"알았어"

"그리고 몸 안 좋으니까 다 두고 일찍 자. 내가 할 게"

"뭘 여보가 해. 내가 하고 자면 되지"

"몸이 안 좋으니까. 새우야채볶음에는 뭐뭐 들어가?"

"당근, 호박, 양파, 버섯"

"간은? 간장으로?"

"소금도 좀 넣고. 너무 짜지 않게"

"야채 볶다가 새우 넣고 소금이랑 간장으로 간 하면 되지?"

"응"

"내가 할 테니까 꼭 일찍 자. 알았지?"

"알았어"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갔다 올 게. 엄마 말 잘 듣고, 잘 자고?"

"네에"


신림동에 도착해서 카페에 막 들어갔을 때쯤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 잘 갔어?"

"어. 애들은 금방 잤어?"

"어"

"소윤이도 기분 좋게 잤어?"

"어. 괜찮았어"

"오늘은 시윤이도 금방 잤나 보네?"

"어. 졸렸나 봐"

"여보. 코랑 눈은 어때?"

"또 엄청 심해졌어"

"좀 더 큰 안과를 가봐야 하나"

"그러게. 여보 어머니한테는 안 들를 거예요?"

"어. 그냥 말 안 하게. 너무 늦어서. 여보도 얼른 자"

"알았어. 빨래만 널고. 반찬은 여보한테 맡길 게"


친구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안 자고 있었다.


"뭐야. 자라니까. 뭐했어?"

"그냥 빨래 널고 쉬고 있었어"

"얼른 들어가서 자지"

"여보 오면 얼굴 보고 잘 게"

"그래. 알았어"


거의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래서 대령했다. 아내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부터 난 새우야채볶음 만들기 돌입. 우리 애들만 먹을 거면 대충대충 만들 텐데, 다른 아이들도 먹어야 하니 그럴 수가 없다. 한참 걸렸다. 요리할 때마다 느끼지만, 당근은 도대체 왜 이렇게 안 익는지.


오랜 시간 새우야채볶음, 특히 당근과 씨름하며 요리를 끝냈다. 아내가 빨래를 나에게 넘기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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