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힘들지만 힘들어

19.05.03(금)

by 어깨아빠

아내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갛고 눈곱도 많이 끼었다. 처치홈스쿨 가기 전에 잠깐 안과라도 들러야 할 것 같았다. 애 둘을 데리고 그 바쁜 아침에 병원까지 들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혹시나 전염성 있는 눈병이면 큰일이니까. 막 집을 나서려는데 소윤이, 시윤이가 동시에 깨서 급히 인사만 나눴다. 소윤이는 나의 뽀뽀 요구를 거부했다. 막 잠에서 깼으니 싫다는 거다. 시윤이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걸어와서는 입술을 맞추고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알러지가 너무 심해서 그런 거래]

병원에 다녀온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전염되는 건 아니니까. 주사까지 맞았다고 하니 금방 낫겠지. 그나저나 애 둘을 데리고 주사는 어찌 맞았을까.

처치홈스쿨을 마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우리 이제 끝났어"
"오늘은 좀 빠르네?"
"그런가? 여보. 우리가 데리러 가는 게 좋아?"
"여보 마음대로 해"
"아니, 오늘 시윤이 안 재워볼까 싶어서"
"아. 그래? 난 상관없어. 여보 마음대로 해"
"알았어. 그럼 이따 연락할 게"
"그래"

한 시간쯤 뒤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우린 스타필드에 옴]

사실 내심 아내가 데리러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럼 속시원히 말할 것이지 이제 와서 여기다 끄적거리고 있냐고 뭐라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를 비롯해서. 기대라는 말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할 때 쓰는 거다. 기대했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내 편한 대로 하라는 것도 진심이었다) 내일 맡은 일이 있는데, 그걸 좀 준비하고 싶었다.

아마 아내가 스타필드에 있다고 밝힌 건, 퇴근하고 그리로 오라는 의미도 포함했을 거다. 아내의 동선과는 별개로 바로 집으로 퇴근해서 조금이라도 내일의 일을 준비하고 연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버스 기다리고 있어"
"아. 그래? 여보, 우리 오늘 외식할까?"
"아. 그래? 아니, 난 원래 오늘 집에 가서 내일 찬양인도 연습 좀 하려고 했지"
"아? 진짜? 그럼 여보 데리러 갈 걸"
"아니, 뭐 그건 괜찮은데. 난 그냥 집으로 갈 게"
"알았어"

아내와 통화를 마치고 생각(혹은 계산)해보니 막상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내가 데리러 왔으면 모를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 고작 20-30분 있다가 교회에 가야 했다. 다시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그냥 밖에서 밥 먹자"
"괜찮겠어?"
"어. 어차피 시간도 별로 없고. 내일 오전에 시간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디서 먹으려고?"
"아. 하루애 갈까 했지"
"아. 알았어. 그럼 원흥에서 내리면 되나?"
"맞아. 그럼 대화역에서 지하철 타면 연락해"
"오케이"

원흥역에서 아내, 소윤이, 시윤이와 재회했다.

"소윤아. 시윤아. 안녕"

소윤이는 함박웃음으로 화답했지만, 시윤이는 답이 없었다. 막 잠들려는 찰나였다.

"여보. 시윤이 자는데?"
"어. 안 돼. 안 돼"

아내가 운전을 하는 중이라 내가 필사적으로 시윤이를 깨웠다. 몇 분을 못 버티면 몇 시간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물론 나는 교회로 떠나지만, 남게 될 자인 아내를 위해 악역을 자처했다. 시윤이는 순도 1000%의 짜증을 몇 번 발산하더니, 이내 잠이 깼는지 초롱초롱한 눈을 되찾았다.

식당에서도 돈까스, 파스타, 밥을 골고루 잘 먹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시윤이는 요즘 부쩍 말이 많아졌다. 물론 제3자가 들으면 대부분 해석 못 할 말이지만, 아내와 나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내가 해석하지 못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껑깡(혹은 깡깡, 껑껑)"

이게 뭔지 모르겠다. 그냥 재밌어서 내뱉는 의성어(혹은 의태어)인지, 아니면 어떤 의미를 담은 단어인지. 이것 말고는 이제 웬만한 말은 통역이 가능하다. 듣는 우리가 신기하고 재밌는 것처럼, 말하는 시윤이도 마찬가지인지 입이 바쁘다.

밥을 다 먹고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줬다. 바로 교회에 갈까 하다가 입은 옷이 너무 후줄근해서 옷만 갈아 입고 다시 나왔다.

"아빠. 가지 마여"
"소윤아. 아빠 가야 돼. 대신 내일 어린이날이고 월요일도 아빠 출근 안 하잖아"

예배 반주를 마치고 카톡을 확인하는데 아내가 보낸 카톡이 있었다. 8시가 넘어서 온 카톡이었다.

[우린 지금 나옴. 잉크가 불안해서]

여러 장 출력할 게 있었는데, 혹시 중간에 잉크가 떨어질까 봐 그걸 사러 나왔다는 말이었다. 낮잠도 안 잔 시윤이와 8시 넘어 외출이라니. 카톡을 보냈다.

[헐. 시윤이 괜찮아?]
[유모차에서 바로 잘 줄 알았더니 안 잠. 집에 와서 바로 잤어용]

집에 돌아갔더니 오늘은 아내가 살아(?) 있었다. 약의 효과인지 전반적인 상태도 훨씬 나아 보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아주 멀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로 인한 만성 피로는 아내도 어쩔 수 없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나 급격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먼저 방에 들어갔다.

여보. 오늘도 수고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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