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04(토)
연휴의 시작이지만 따로 여행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저녁에 처치홈스쿨 개교 예배가 있었다. (그동안에도 처치홈스쿨은 진행됐지만, 공식적인 개교는 오늘이다) 나름 맡은 것들이 있어서 준비도 하고, 여느 때처럼 아이들이랑 복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내가 집을 깨끗하게, 아주아주 완벽하게 치워 놓은 게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또 일주일 동안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 물론 아내가. 어제까지만 해도 그 상태가 제법 이어졌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조금씩 옛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소윤아, 시윤아. 밥 먹고 집 치우자"
"아빠. 밥 먹고 팝콘 먹구여"
"아니야. 밥 먹고 집 치우고 팝콘 먹는 거야"
"아빠. 엄마가 밥 먹고 팝콘 준다고 약속했는데여?"
"아, 그래도 집 치우는 게 먼저야. 집 치우는 건 어떤 약속보다 우선되는 우리 집의 규칙이야"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어릴 때까지 갈 필요도 없다. 결혼 전까지만 가도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가 이 광경을 보면 콧방귀를 뀌겠지? 소윤아, 넌 아빠에 비하면 훨씬 낫긴 하다.
막상 앉혀서 밥을 먹이고 나니 다시 내렸다가 올리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았다.
"소윤아. 그냥 밥 먹고 간식도 먹고 치우자"
"왜여?"
"아. 그게 덜 번거로울 것 같아서"
간식까지 다 먹고 모두 집 치우기를 시작했다. 난 소파에 앉아서 지시를 했다.
"소윤아. 저기 저 책들 치우고, 장난감도 치우고"
"여보는 왜 안 해?"
"나? 좀 쉬고 싶어서"
마침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도망치는 거 아니야"
아내가 시윤이 낮잠을 재우는 동안 소윤이는 퍼즐을 하자고 했다.
"아빠. 시윤이가 있을 때는 자꾸 방해해서 못하니까 잘 때 하자여"
"그래"
사실 나도 좀 쉬고 싶었는데 소윤이가 가만둘 리 없었다.
"아빠도 같이 하자여"
"소윤이 해. 아빠는 소윤이 하는 거 볼 게"
"아빠. 같이 해여"
"소윤이도 퍼즐 잘하잖아. 소윤이 하는 거 볼 게"
"아빠. 나도 하나. 아빠도 하나. 이렇게 하자여. 아빠 자 골라 봐여. 뭐 할 거에여?"
등쌀에 못 이겨 퍼즐을 하나 골랐다. 소윤이는 48조각, 나는 70조각. 퍼즐이 묘한 게 항상 하기 전에는 심드렁한데 막상 손을 대면 끝을 보고 싶다. 소윤이는 나랑 거의 동시에 퍼즐을 완성했다. 그전에는 하다가 못 하겠다고 포기했던 것 같은데, 이제 손쉽게 맞추는구나.
점심은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넘기고, 대신 교회에 가서 먹일 주먹밥을 아내가 만들었다. 개교 예배가 열리는(평소에 처치홈스쿨을 하는) 교회로 출발했다. 낮잠을 잔 시윤이는 누가 봐도 최상의 상태였고, 소윤이는 막 잠들려고 하는 걸 깨웠다. 준비하는 측이라 1시간 30분 일찍 갔다. 조부모님들도 초청했고 소윤이, 시윤이는 양쪽 조부모님들이 모두 오셨다.
예배가 시작하고 거의 2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니 애들한테 결코 쉬운 시간은 아니었을 거다. 소윤이는 1시간쯤 지났을 때가 가장 고비였다. 졸리고 몸은 뒤틀리고. 시윤이는 기분이 좋긴 한데, 통제가 되지 않았다. 샐샐거리며 돌아다녔다. 어찌 됐건 무사히 모든 순서를 마쳤다.
근처 식당에서 다 함께(조부모님, 외부 손님 포함) 식사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양쪽 할머니들과 함께 앉았다. 아내도 거기 앉긴 했는데 계속 나오는 음식 챙기고 나르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거기 직원인 줄 알았을 거다. 난 외부 손님들과 한 상에 앉았다. 머리를 굴려 대화를 해야 하는 자리라, 애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식사 후 손님들도 모두 가고 처치홈스쿨 리더 가정과 우리만 남았다. 정리하고 치우느라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집으로 출발할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둘 다 잠들었다. 아내도 나도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거기에 아내는 어떤 일로 마음까지 무거웠다.
"여보. 내일 뭐 하지?"
"그러게. 어디 가야 하나"
어찌 보면 오늘은 전초전이었다. 내일이 진짜 경기고. 마음 같아서는 예배드리고 1박 2일로 바람이나 쐬러 갔다 오면 좋겠는데,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지난번처럼 차를 두고 서울에 나갔다 올지, 차를 가지고 막히지 않는 곳을 잘 골라서 다녀올지. 몸과 마음의 피로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아주 창의적인 제안을 했다.
"여보. 우리 내일 충장공원이나 놀러 갈까?"
아내는 몇 초 생각하더니 의미를 파악하고, 날 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충장공원은 주일 축구선교회가 모이는 장소다.
여보,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