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물은 가족 데이트지

19.05.05(주일)

by 어깨아빠

평소보다 20분 일찍 교회에 가야 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 부서가 통합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소윤이는 지난주부터 잔뜩 기대했다.


"아빠. 다음 주에 하늘아이 언니 오빠들이랑 같이 예배드린대여. 손철구 목사님이 설교도 하신대여"


언젠가 담임 목사님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소윤이가 깔깔거리며 재밌게 들었었다. 그때의 기억 덕분인지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마술과 비눗방울 쇼, 여러 간식과 선물 때문이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오늘만큼은 늦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알람까지 맞췄다. 보통 주말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주일에도. 어차피 애들이 먼저 깨우니까. 물론 오늘도 알람 시간보다 먼저 일어나 우리를 깨웠다. 버텼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8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어제 미리 아내와 얘기한 대로 (내) 엄마가 준 돈까스를 튀겼다.


밥도 부지런히 먹이고, 씻기는 것도 신속하게 마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외출 준비를 끝냈다. 그러고 나서 나도 샤워를 하고 준비했다. 아내도 서둘렀다. 노력 끝에, 신호만 잘 받으면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시간에 출발했다.


어른 예배 시간은 그대로고, 소윤이만 20분 일찍 데려다준 거라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본당에 들어갔다.


"여보.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


시작이 반인 것처럼, 늦으면 반은 깎아 먹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음 주부터는 꼭 제시간에 와야지.


시윤이는 요즘 주일에 항상 비슷하다. 오늘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몸을 비틀며 졸린 티를 팍팍 냈다. 뱀처럼 이리저리 몸을 배배 꼬긴 했지만 자지는 않았다. 아내는 예배가 시작하자마자 졸렸고, 난 설교 중간쯤에 고비가 찾아왔다. 어린이날이라고 장로님들이 시윤이에게 주신 초콜렛을 아내와 내가 나눠 먹었다.


소윤이 예배는 평소보다 길어서 늦게 끝날 거라고 미리 공지가 됐다. 일단 시윤이라도 밥을 먹이려고 식당에 갔는데 하필 매운 국이었다.


"여보. 매운 국인데?"

"나가자"


시윤이를 차에 태우고 [윌]에 갔다. 아내와 나의 계산대로 시윤이는 잠들었다.


"여보. 이게 얼마만이지. 우리 둘이 이렇게 평화로운 게"

"그러게. 시윤이 낳고 나서는 처음 아닌가. 애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이런 건"


시윤이는 쭉 잤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커피와 대화에 집중했다. 어린이날이라고 애들만 좋은 건 아니구나.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소윤이를 데리러 다시 교회에 갔다. 가는 길에 맛김도 샀다. 소윤이는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


"소윤아. 재밌었어?"

"네"

"목사님 설교도 잘 들었어?"

"네"

"무슨 내용이었어?"

"그건 기억이 안 나여"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그런데 기억이 안 나여"


맛김에 싸서 밥을 먹였다. 평소보다 아침은 일찍 먹고, 점심은 늦어서 그런지 둘 다 싸 주는 족족 입에 넣었다. 그때까지도 오늘의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다.


"소윤아. 아빠랑 충장체육공원 갈까?"

"공원? 좋아여"


아내가 어제처럼 비웃음을 머금고 얘기했다.


"여보. 그럼 그냥 진짜 축구하고 와"

"아니야. 그냥 장난이야 장난"

"장난 맞아? 하고 싶으면 하고 와도 돼. 진짜"

"아니라니까. 나 그런 쓰레기 아니다. 나 이미 불참에 표시했어"


암. 그건 쓰레기지. 어린이날에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축구라니. 그건 아주 상쓰레기지.


아내와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 광화문에 가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교보문고에 가서 소윤이 큐티책을 산다는 건 굳이 만들어 낸 것일 뿐. 차는 두고 가기로 했다. 그래도 저번에 잠실 갔을 때보다는 훨씬 가까운 거리라 수월했다. 오늘도 중간중간 등장하는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 지대가 가장 힘들었다.


교보문고에 가서 큐티책도 사고 소윤이 동화책도 한 권 샀다. 아내와 내가 읽을 책도 한 권 샀다. 어제 개교 예배의 후폭풍인지 아내와 나는 뭐 한 것도 없이 피곤했다.


"여보. 오늘은 너무 늦게 들어가지는 말자"

"그래"


광화문에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미세먼지 수치가 좋지 않았다. 교보문고에서 나오니 양호한 상태로 바뀌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온 거니 다음 행선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이나 한 번 가 보자"


분수를 벌써 틀어놨다. 많은 아이들이 분수 사이를 오가며 놀았다. 온몸을 흠뻑 적시면서.


"아빠. 나도 들어가도 돼여?"

"소윤아. 오늘은 옷도 안 챙겨 왔고, 차도 없어서 안 될 것 같아. 다음에 들어가자"

"아빠. 그러면 다음에 올 때는 갈아입을 옷이랑 수영복도 챙겨 오자여?"

"그래. 알았어. 다음에 올 때는 꼭 그렇게 하자"


고맙게도 소윤이는 잘 이해했다. 나 같아도 엄청 뛰어들고 싶었을 텐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분수 곁을 걸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물방울을 맞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워했다.


"소윤아. 저기 땅콩과자 판다. 저거 먹을까?"

"그러자여"


호두과자와 땅콩과자를 섞어서 한 봉지 샀다. 광화문 광장 한쪽 의자에 앉아서 먹였다. 양이 꽤 많았는데 둘이 어찌나 잘 먹는지. 다 먹고 다시 광화문 광장을 조금 걷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급하게 검색으로 찾은 중국집이었다.


"소윤아. 소윤이 오늘 좋겠네. 좋아하는 짜장면이랑 탕수육까지 먹고"

"으히히"


잔뜩 기대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내부 수리 관계로 5/4~5/5 영업을 중단합니다]


"소윤아. 어쩌지. 여기 오늘 문 안 열었대"

"왜여?"

"어, 여기 공사한대. 다른 거 먹어야겠다"

"짜장면이랑 탕수육 먹고 싶은데"

"문을 안 열었잖아. 어쩔 수 없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낙지요리 가게에 들어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애들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먹고 싶은 거나 먹자며 고른 메뉴였다. 다행히 계란말이도 있어서 큰 걸로 하나 시켰다. 아내와 나는 낙지비빔밥과 막국수를 시켰다. 식사 시간도 나름 수월했다.


오늘의 가장 큰 공로자는 강시윤이었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유모차에 옮긴 후 저녁 먹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유모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서너 시간 가까이 땅을 밟지 않고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식당에서도 아기 의자가 없어서 유모차에 앉혀 놓고 밥을 먹였다. 시윤아, 고마워. 오늘의 MVP는 너야.


식당은 덕수궁 돌담길 바로 옆에 있었다.


"시윤이. 좀 내려줄까?"

"그럴까?"


시윤이한테 미안한 마음에 잠시 돌담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어떻게 참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윤이는 팔딱팔딱 뛰어다녔다. 돌담길을 따라 한 30분 가까이 걸었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니, 육아로 인한 기본 피로는 당연히 있었지만 특별히 더 힘들 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를 번갈아 안아주고 목에 태우느라, 몸이 엄청 고되기는 했다. 두 녀석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기는 하는데 한 3초 간다. 금방 다시 힘이 떨어진다.


광화문 광장과 덕수궁 돌담길을 거니는 동안 날이 날이니만큼 많은 부모, 아이와 마주쳤다. 저녁 먹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마주친 많은 엄마, 아빠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고단해 보였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잘 지켜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내와 소윤이가 미리 약속한 내용인, [아이스크림 먹기]까지 이행하고 어린이날 광화문 일정을 종료했다. 원래 시윤이에게는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는데, 오늘은 줬다. 평소에는 주더라도 엄청난 연기와 과장을 동원해 쥐꼬리만큼 주거나, 주는 척만 하고 속이는데 오늘은 정량(?), 정품(?)을 정당히 분배해줬다.


"엄마. 떠여. 떠여(떠여)"

"엄마. 어떠여(없어여. 또 주세여)"


MVP에게 주는 특별 시상이라고 여기거라.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아내랑 아이들이 나란히 앉고 난 건너편에 앉았다. 아내는 정신없이 졸았, 아니 잤다. 그걸 보며 킥킥대던 나도 마지막에는 좀 졸았다.


"아빠. 자지 마여. 우리 이제 내려야 되잖아여"


소윤이는 매우 불안한 얼굴로 나를 깨웠다. 내가 잠들면 내릴 곳을 놓칠까 봐 걱정했다. 교회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에 탔고, 시윤이는 금방 잠들었다. 소윤이는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자는 척을 했다. 자는 듯 눈을 감고 있었지만 진짜 잠들었을 때의 눈꺼풀이 아니었다. 미세한 떨림과 억지로 감았을 때 생기는 주름이 잠들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막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상황에서 주차장에 도착한 게 아닐까 싶다.


집에 들어갈 때까지 연기를 하던 소윤이는 자기 자리에 눕히자 그제야 눈을 떴다. 기왕 일어난 거 옷 갈아 입혀서 재웠는데, 양치시키는 걸 깜빡했다. 아내는 소윤이 재우러 들어갔다가 잠들지 않고 다시 나왔지만, 어제부터 이어지는 고민스러운 일로 평정심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여보. 난 그냥 들어가서 자야 할 것 같아"

"그래. 깨어 있어 봐야 마음만 고생이지"


몸과 마음이 모두 피로한 아내는 일찌감치 들어갔다. 원래 내일도 어디를 가야 하나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 광화문에 다녀오면서 생각이 싹 바뀌었다.


얘들아. 내일은 무리하지 말자. 재정비의 시간을 좀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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