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06(월)
아주 늦은 아침을 먹었다. 거의 점심에 가까운. 다 함께 집 치우고 예배드리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 이미 오후였다. 아내가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낮잠을 재웠다. 아마 아내는 잠든 것 같았다. 그동안 소윤이랑 나는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 쓰레기, 일반 쓰레기를 버리고 오기로 했다.
"소윤아. 아빠랑 또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갈까?"
"왜여?"
"많이 쌓였으니까. 싫어?"
"아니여. 좋아여. 가자여"
"그래. 고마워"
"아빠. 비눗방울도 불고 오자여"
"그래. 그러자"
오늘 소윤이와 꼭 해야 할 일은 비눗방울 불기였다. 어제 교회에서 선물로 받은 건데, 원래 어제 광화문에 가서 불기로 했었다. 모두 깜빡 잊었고 소윤이는 오늘은 꼭 불어야 한다며 생각날 때마다 얘기했다.
"아빠. 비눗방울은 언제 불어여?"
"아빠. 오늘 불거지여?"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김에 좀 놀다 올 생각이었다. 열심히 쓰레기를 모으고(?) 있는데 아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 잠들었네. 쓰레기 버리려고?"
"어"
소윤이도 대화에 참여했다.
"엄마. 아빠랑 비눗방울도 불고 올 거에여"
"아. 그래? 소윤이 좋겠네"
다시 아내와 나.
"아, 엄청 달콤하게 잤는데"
"그럼 조금 더 자"
"그럴까"
단지 집안일을 분담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 소윤이의 두 손은 정말 쏠쏠한 도움이 된다. 아주 가볍지만 나 혼자 다 들 수 없는 자투리 뭉치를 쥐어주면 낑낑대며 들고 간다. 가서도 나한테 물어가며 손수 분리수거를 한다.
"아빠. 이거 플라스틱 맞아여?"
"아빠. 이거는여?"
"아빠. 이거 여기다 넣으면 되지여?"
분리수거를 모두 마치고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고마워. 소윤이가 도와주니까 엄청 큰 도움이 되네?"
"아빠. 왜 맨날 그렇게 말해여?"
"아. 진짜 고마우니까"
기계 같은 나의 리액션을 읽었는지, 날카롭게 던진 소윤이의 질문에 멈칫했지만 잘 대응했다.
곧바로 놀이터에 갔다. 소윤이는 한참을 서서 비눗방울을 불었다. 마침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여기저기로 금세 날아가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한참을 불더니 나에게 비눗방울을 맡기고 놀이터로 뛰어갔다. 원래 비눗방울만 불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냥 뒀다. 아내랑 시윤이가 자고 있으니 밖에서 더 놀고 들어가는 게 나았다. 혼자 놀면서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다시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만 막 깨서 나왔다. 시윤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여보. 오늘 특급 야근 예약이네?"
"그러게. 두렵다"
저녁에는 장인어른, 장모님을 만나서 밥을 먹기로 했다. 금촌 어딘가의 중국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했다. 늘 그렇듯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시윤이는 잔뜩 흥이 올라서 혼자 중얼거리며 소리도 지르고 그러는데, 소윤이는 눈꺼풀이 반쯤 감겨 가지고는 말이 없었다.
"소윤아. 졸려?"
"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작은 골목길에 진입하기 위해 서 있는데 앞차가 슬금슬금 후진을 하더니 내 차를 쿵하고 받았다. 범퍼만 살짝 찌그러질 정도로. 아내와 아이들은 내려서 먼저 식당에 가고 난 상대 운전자와 보험처리를 한 뒤 갔다. 시윤이가 날 보더니 얘기했다.
"아빠? 아빠 차가 쿵?"
시윤이도 적절한 조사를 쓰기 시작했다. 시윤이의 말을 듣고 모두 웃었더니 그게 재밌었는지 시윤이는 시도 때도 없이 그 얘기를 반복했다.
"아빠 차가 쿵"
밥 다 먹고 나서는 마침 열리고 있는 금촌 5일장을 구경했다. 그냥 한 바퀴 슥 둘러봤다. 대화동에 살 때 자주 갔던, 소윤이를 예뻐했고 소윤이도 좋아했던 사장님이 운영하는, 아내의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해 핫초코도 주문했다.
"시윤이도 주게?"
"어. 한 번 주지 뭐"
그동안은 색소 첨가 수준의 무늬만 핫초코를 마셨다면 오늘은 진짜 핫초코였다. 정신을 못 차리고 마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뜨뜻미지근했다. 배가 불러서 그랬나? 아무튼 잘 마시긴 했지만 '오, 이게 무슨 맛이지' 이런 느낌은 또 아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소윤이야 당연히 예상했지만 시윤이까지 잠들었다. 또 느지막이 깨서 거실로 나왔고 아내를 끌고 들어갔다.
연휴인데 아내랑 집에서라도 영화 한 편 못 보고, 야식 먹으며 수다도 못 떤 걸 보면 아주 제대로 아이들한테 헌신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