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07(화)
지난주까지는 처치홈스쿨 마치는 시간이 대략 1-2시였는데, 오늘부터는 4시 30분이다. 거기에 중간에 낮잠 시간도 생겼다. 이미 낮잠과 담을 쌓고 지낸 지 너무 오래돼서 과연 소윤이가 낮잠을 잘까 싶었다. 난 안 잘 거라는 쪽에 더 마음을 실었다. 예측일 뿐,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소윤이도 일어났다는 게 약간 희망적인 요소였다.(그만큼 일찍 일어났다는 거고, 낮잠 시간의 피로도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소윤이 30분 만에 잠들었당]
계속 눈 뜨고 그러긴 했지만, 비교적 순순히 잠들었단다. 차 타고 가다가 잠드는 것도 희귀한 일인데, 이렇게 자리 깔고 누워서 낮잠 잔 건 얼마 만인지 계산도 안 된다. 어제도 그랬지만 시윤이는 아직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늦게, 많이 자도 밤에 일찍 자는 날이 있다는 말이다. 소윤이는 아니다. 철저한 총량제다. 낮에 그만큼 잤으면 밤잠은 줄어든다. 오늘도 초특급 야근을 각오했다.
아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 이렇게 얘기했다.
"오늘 끝나고 갈 수 있으면 갈게"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연락 없이 이미 출발해서 오고 있거나, 예상보다 늦게 끝났거나. 두 가지를 예상했고, 후자였다.
"여보. 너무 늦게 끝났다. 집으로 갈게요"
"그래"
퇴근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버스 기다리는 중"
"그래? 그럼 우리가 대화로 갈까 하는데"
"왜? 또 맑음케이크 가려고?"
"아니. 그건 아니고. 저번에 말했던 코다리 먹을까 했지"
"아. 그래?"
"그래도 우리가 대화로 가면 좀 낫잖아. 여보가 별로 안 내키면 그냥 집에 가고"
"아니야. 그럼 대화에서 만나자"
내가 먼저 식당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아내와 아이들도 들어왔다. 웬일인지 시윤이는 자기가 먼저 나서서 내 옆에 앉겠다고 했다. (보통은 내 옆에 앉으라고 해도, 아내 옆에 앉겠다고 버틸 때가 많다)
"아빠. 머거여어?"
"아빠. 이거 머지여어?"
"아빠. 어떠여어"
아주 말문이 트인 것이 마주 보고 있을 맛이 난다. 애들이랑 밥 먹을 때는 잘 먹으면 잘 먹는 대로 바삐 먹여줘야 해서 바쁘고,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끊임없이 시도해야 해서 바쁘다. 한 마디로 어차피 힘들 거면 그나마 잘 먹으면서 힘든 게 낫다는 말. 오늘이 그랬다.
밥 먹고 맑음케이크에 갈까 했는데 휴무였다. 아내는 카페를 간절히 원하는 듯했다. 다만, '아무 카페'나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동네에는 아내를 만족시킬 카페가 마땅히 없었다. 일단 다른 제안을 했다.
"여보. 어디 마트 같은 데 갈까?"
"왜?"
"킥보드도 볼 겸"
"아. 그럴까?"
"트레이더스나 이마트 같은데 가 볼까?"
"여보. 차라리 거기 가보자"
"어디?"
"그 우리 집 가는 길에 토이플러스인가 그거 있잖아"
"아. 그럴까?"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는데, 지나다니는 길에 있어서 늘 눈에 띄던 할인 매장에 가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킥보드를 보기는 했는데 아주 대충 봤다. 가격이 얼추 맞으면 사 줄까 했는데, 아내는 다른 모델을 인터넷에서 구매하자고 했다.
소윤이는 정신없이 장난감 구경을 했다. 시윤이는 안 보이길래 뭐하나 봤더니 한쪽에 서서 큰일을 보고 있었다.
"여보. 시윤이 똥 쌌다"
아내가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처리하는 동안 소윤이랑 있었다.
"아빠. 이거 사주세여"
"오늘은 못 사"
"아빠 그러면 나중에 엄마랑 아빠랑 얘기해 보고 사 줄 생각이 들면 그때는 사주세여"
"그래. 알았어. 그런데 우리 소윤이 진짜 짱이네"
"왜여?"
"아니,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예쁘게 말하니까"
"갖고 싶어도 참고 그렇게 말하는 거에여"
"그래. 잘하는 거야"
소윤이나 시윤이나 뭐 사달라고 떼쓰는 건 없다. 진심으로 기특해서 뭐라도 사주고 싶었다. 진작부터 사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캐치볼을 하나 들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소윤아. 이거 하나 살까?"
"뭔데여?"
"이거 그때 공원 갔을 때 공 주고받는 거 본 적 있지? 그거야"
"그거 하나 사자여. 나중에 공원 가서 아빠랑 나랑 하자여"
"그래"
시윤이를 닦아주고 온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이거 하나 사줄까?"
"뭔데?"
"캐치볼"
아내가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아니, 난 유모차 하나 사줄까 했지?"
"진짜? 갑자기? 왜?"
"아, 소윤이가 너무 옛날부터 갖고 싶어 했거든"
"아. 그래? 그럼 사주지 뭐"
아내는 소윤이를 불렀다.
"소윤아. 이리 와 봐"
"네. 왜여?"
"소윤아. 유모차 진짜 갖고 싶어?"
"네. 나는 이렇게 생긴 거. 이게 좋아여"
"엄마, 아빠가 이거 하나 사줄까?"
"진짜여? 왜여?"
"그냥 소윤이가 옛날부터 갖고 싶어 했잖아"
"좋아여. 좋아여"
소윤이 얼굴에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미소가 번졌다. 엄마, 아빠가 사주는 건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동의 소유며, 따라서 언제든 동생과 양보하며 나눠 놀아야 한다는 약속을 받고 유모차를 사줬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여태껏 사 준 장난감 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모차를 세우더니 바로 아기 인형을 태웠다. 난 그 정도인 줄 몰랐는데 아내 말로는 아주 오랫동안 유모차를 갖고 싶어 했단다. 시윤이와의 유모차 쟁탈전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뽀로로 카트를 유모차 대신 시윤이에게 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 밤에 시도해 봤는데, 시윤이는 그것도 좋다고 카트를 밀며 누나 뒤를 쫓아다녔다.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애들은 금방 재웠는데 누워서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한다고 한참 있다가 나왔다.
아내가 낮에 처치홈스쿨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줬는데 매우 심란해졌다.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고, 정돈되지 않아서 큐티 책을 폈다. 잘 때도 소윤이 옆에 누워서 소윤이에게 손을 얹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기도를 하다 잠들었다)
소윤아. 아빠는 널 정말 많이 사랑하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