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디서 운동하는 거에여?

19.05.9(목)

by 어깨아빠

소윤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한테 착 달라붙었다. 보통은 출근하는 순간만큼은 나한테 안겨서 뽀뽀를 나누는데, 오늘은 출근하려고 문 앞에 섰을 때도 아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윤이도 문 앞에 서긴 했지만 아내 옆을 떠나지 못했다.


"아빠 늦어서 가야 돼. 빠이빠이"


문을 닫음과 동시에 소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나한테 인사(포옹과 뽀뽀)를 하겠다는 것 같았는데, 이미 문은 닫힌 뒤였다. 운전하고 있는데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아침에 제가 인사도 제대로 안 해서 죄송해여"

"괜찮아. 소윤아. 소윤아 오늘도 엄마랑 시윤이랑 즐거운 하루 보내"

"네. 아빠. 아빠도여"


부모인 나도 시윤이가 워낙 무던하니까(이게 천성인지, 아니면 월령에 따른 당연한 과정인지는 모르지만)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지만, 확실히 소윤이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아이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잊힐 아주 소소한 순간에 소윤이만의 따뜻함을 발산한다. 아빠는 기억하고 있다. 소윤아.


어제였다. 축구하러 가기 전, 아내가 조작된 다정함이라고 의심을 품은 포옹과 뽀뽀를 건넬 때, 애들이 듣지 못하게 아내에게 속삭였다.


"여보. 내일 나갔다 와"


날이 바뀌어 오늘이 되었지만 아내도 나도 그것(?)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아내도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오후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여보. 오늘 나갔다 올 거야?"

"그래도 돼? 괜찮겠어?"

"어. 상관없어"

"그래. 그럼"

"그럼 나 머리 좀 자르고 가도 되나?"

"그래요"


마침 차도 수리를 맡겨놨었다. 카센터에 전화해서 수리를 좀 일찍 마쳐 달라고 했다. 미용실 예약도 퇴근 시간과 거의 차이가 없게 잡았다. 머리 자르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지불한 돈이 살짝 아까울 정도로 금방 끝나버렸다.(결과물은 대만족이었지만, 뭔가 시간이 너무 조금 걸리니 괜히 아까운 느낌이랄까)


다각도로 노력한 덕분에 차 수리, 이발까지 하고도 평소랑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소윤이는 날 보더니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밥 빨리 먹고 엄마랑 나가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울먹거렸다. 내막은 이랬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소윤이, 시윤이에게 아내는 외출을 약속했다. 문제는 기약이 없었다는 거다. '나가야지, 나가야지' 생각은 했는데, 끝이 없는 집안 일과 육아의 물결 속에 미뤄졌다. 그러다 결국 '저녁 먹고 아빠 오기 전에 잠깐 나가자'라고 얘기를 했는데, 내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거다. 소윤이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소윤아. 그러면 소윤이랑 시윤이 저녁 먹고 아빠랑 놀이터에 나가서 놀다 오자"

"엄마는여?"

"엄마는 운동 가셔야지"

"엄마도 같이 놀고 싶어여. 같이 나가기로 했었잖아여"

"맞아. 그러긴 했는데 오늘 엄마는 운동 가셔야 돼. 대신 아빠랑 나가서 놀자"

"엄마도 같이"

"엄마는 소윤이가 아무리 얘기해도 같이 못 놀아"

"그럼 우리가 엄마를 데려다주고 놀이터에 가는 건 어때여?"

"어디를 데려다줘?"

"엄마 운동하는 곳이여"

"엄마 운동하러 차 타고 가는데?"

"차 타고 가여? 지하 주차장에서 가면 되잖아여"

"아니야"


소윤이는 당연히 아내가 진짜 운동하는 걸로 알고 있고, 그 장소가 단지 내 헬스장이라고 믿고 있다. 오늘도 소윤이에게 거짓말(아내가 화장실에 있는데 소윤이가 시윤이에게 호통치며 혼내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한테 호통치거나 혼내는 건 엄마, 아빠의 일이고 소윤이는 하면 안 되는 행동으로 정한 거라 아내가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다가 자백함) 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얘기했다면서, 아내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모두 함께 나가서 차 타고 떠나는 아내를 배웅한 뒤, 놀이터에 가는 것으로 대타협을 이뤄냈다. 거의 7시가 다 돼서 나갔는데 해가 늦게 떨어지니 대낮처럼 환했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엄청 일찍 나가는 착각이 들었다. 환하게 웃으며 운전대를 잡은 아내에게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었다.


"여보. 잘 가"

"엄마. 안녕"

"엄마. 빼이"


놀이터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많은 인파를 헤쳐가며 나름 잘 놀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둘을 보는 건 높은 수준의 민첩함과 성실함이 필요했다. 소윤이는 아직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매달리기, 매달려서 횡단하기, 그네 타기 등의 놀이를 할 때 나를 애타게 불렀다. 그렇다고 소윤이한테만 붙어 있기에는 시윤이가 불안했다. 툭하면 떨어지고, 미끄러지는 단계는 지났다고 해도 아직 혼자 두기에는 불안하다. 열심히 시윤이 쫓아다니랴, 소윤이가 부르면 달려가랴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재밌었다. 둘이 어울려서 놀 때는 둘도 없이 사이좋은 남매처럼 잘 놀았고. 힘들지만 즐거웠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우리 마트에 가서 간식 사서 먹고 들어갈까?"

"어디서여?"

"우리 집 앞에 조그만 놀이터에서"

"그러자여"


"아빠 나두여. 나두여"

"그래 시윤이도"


소윤이는 요구르트를 골랐다. 누나가 요구르트를 골랐으니 시윤이도 자동으로 요구르트. 가장 싸구려 요구르트보다는 뭔가 낫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조금 더 비싼 걸 쥐여줬다. 마실 것만 있으면 아쉬울 테니 조그만 쿠키 하나를 사서 반으로 나눠줬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야금야금 쿠키를 베어 먹고, 요구르트를 쪽쪽 빨아먹는 두 녀석을 한참 동안 기분 좋게 바라봤다. 그거 먹으면서도 서로 쳐다보며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 말 저 말 주고받으며 깔깔거렸다.


집에서 나가기 전 1차(정밀하게)로 씻겨서 나갔다. 돌아와서는 손과 발을 씻기고 양치질을 시켰다. 자러 들어간 시간이 늦긴 했지만, 들어가서는 금방 재우고 나왔다. 보통 늦은 시간에 재우면 잘 깨지 않는데(혹은 그렇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1시간 30분 정도 있다가 갑자기 시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빠. 와여"

"알았어. 시윤아"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시윤이와 함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시윤이는 곧장 눈을 감더니 자기 발을 내밀었다.


"아빠. 빠알. 빠알"


요 며칠 아내가 시윤이 재울 때 발을 잡아줬다더니, 나한테도 그걸 요구했다. 발을 살짝 잡았더니 힘을 빼고 다리를 내렸다. 시윤이는 금방 다시 잠들었는데, 괜히 한 20-30분 더 누워 있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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