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이어도 장녀는 장녀

19.05.10(금)

by 어깨아빠

다행히 오늘도 소윤이, 시윤이는 무사히(?) 낮잠을 잤다. 시윤이야 뭐 원래 낮잠 자던 애고, 아직 어리니까 당연하지만. 나름의 자기 습관과 양식이 있던 소윤이가,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기특하고 짠하다. 소윤이, 화이팅. 아빠는 기억할게. 너의 노력을.


아내는 오늘 바빴다. 처치홈스쿨 마치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바로 합정으로 갔다. 당연히 차는 아내가 가지고 갔다. 금요일이라 나는 교회에 가는 날이었다. 집에서 교회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거의 1시간이 걸린다. 퇴근해서 바로 교회 근처로 갔다. 시간이 좀 남아서 카페에 좀 앉아 있다가 교회에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합정에서의 만남을 마치면 교회로 오기로 했다. 설교 전 찬양이 거의 끝날 때쯤 아내와 아이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내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보이지는 않았다. 몸이야 당연히 힘들지언정, 정신까지 털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정했다.


반주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언제, 어디서든 반갑게 맞아주는 내 편 세 명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든든한 일이다. 흐뭇한 감상에 살짝 젖었는데 아내가, 아니지 시윤이가 산통을 깼다.


"여보. 나 좀 올라갔다 올 게"

"왜?"


아내는 눈을 찡그리며 검지로 시윤이의 엉덩이를 가리켰다. 아내와 시윤이가 나가고 소윤이랑 나란히 앉았다.


"아빠. 엘리베이터 생겼더라?"


먼저 온 난 눈치채지 못했는데 엘리베이터 공사가 완전히 끝나고 탑승이 가능했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윤이를 안고 오르내리는 수고라도 덜 수 있으니.


찬양이 끝나고 설교 전에 특별 순서로 집사님들의 워십 공연이 있었다. 소윤이는 그걸 아주 집중해서 봤다. 소윤이 다리 위에 손을 펴서 올리니 소윤이가 스윽 자기 손을 포갰다. 진짜 작고 작은 그야말로 고사리 같은 손이지만, 거기서 전해지는 온기와 특유의 촉감은.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어쩌면 소윤이가 아무리 나이를 먹고 커도 스킨십이 가능한 유일한 신체 부위가 손일 지도 모른다. 그때가 언제든 소윤이 손을 잡으면 아마 지금의 이 느낌이 생생히 되살아 날 것 같다.


"아빠. 목 말라여"


감상은 감상이고, 현실은 냉혹하다. 이번에는 소윤이의 요청사항.


"알았어. 엄마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떠다 줄 게"


아내와 시윤이가 돌아왔지만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갈증을 잊을까 싶어서. 소윤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었다.


"아빠. 왜 물 안 떠 줘여?"

"어. 갈 거야"


물 두 잔을 떠서 두 상전에게 대령했다. 물 마시고 나서부터, 시윤이의 잠투정이 시작됐다. 너무 졸린데 자지는 못하니까 자꾸 칭얼거리고, 낑낑대고. 소윤이도 엄청 졸렸지만 이제 참는 법을 좀 안다. 시윤이는 아직 그게 안 된다. 더군다나 졸릴 때는 나한테는 오지도 않고, 오로지 아내에게만 매달리니 아내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국 예배 끝날 때쯤에는 시윤이가 예배에 방해가 될 정도로 소리도 내고 부산을 떨어서, 아내가 데리고 나갔다. 소윤이도 따라 나갔다.


예배가 끝나고 로비에 올라가니 소윤이랑 시윤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내는 매우 매우 피곤해 보였다. 시윤이는 태우자마자 잠들었고 소윤이는 잠들지 않았다. 시윤이를 눕혀 놓고 소윤이만 씻겼다. 딱 봐도 아내는 눕자마자 의식을 잃을 것 같아서,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는 안 씻어도 돼?"

"씻을까?"

"그래. 아예 씻고 들어가"


아내는 세수만 한다더니 샤워를 하고 나왔다. 꽤 시간이 오래 걸렸고. 덕분에 소윤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꽁냥거렸다.


"소윤아. 오늘 처치홈스쿨에서 뭐 했어?"

"오늘이여? 오늘은 시옷을 배웠어여. 아, 시옷?"

"네. 그런데 사랑이가 자기 이름에 들어가는 게 나와서 신이 나니까 막 손을 흔들다가 내 눈을 찔러서 내가 엄청 서럽게 울었어여"

"아. 그랬구나. 아파서 울었어?"

"아니여. 속상해서 울었지여"

"아. 그랬구나. 속상했구나. 사랑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을걸"

"알아여. 나도 알아여. 그래도 속상해서 울었어여"

"그래. 뭐 울어도 돼. 또 뭐했어?"

"아, 미술활동도 했어여"

"진짜? 소윤이 좋았겠네. 좋아하는데 집에서는 한 적 별로 없잖아"

"네. 막 그 아빠 컴퓨터에 있는 하얀 종이 있져? 그런 큰 종이에 물감으로 하늘을 그렸어여"

"아. 천지창조 말씀 배운 거? 하늘?"

"네. 맞아여"


딸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때의 묘한 즐거움이란. 한참 대화를 하고 나서는 셀카를 찍었다. 소윤이는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손으로는 브이를 만들고, 얼굴로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즐겁다가도 결국은 엄마.


"아빠. 엄마 왜 이렇게 안 나오져?"

"그러게. 샤워하시나"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와 소윤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소윤아. 오늘도 기분 좋게 자겠네? 내일 캠핑 가는 거 생각하면서?"

"그리고 내일 아빠도 출근 안 하니까?"

"그렇지"

"아빠. 사랑해여. 잘 자여"

"그래. 소윤이도 잘 자"


아직 다섯 살인데 자꾸 뭔가 통하는 것 같고, 든든하고, 듬직하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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