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캠핑

19.05.11(토)

by 어깨아빠

우리를 포함해 총 3팀, 아내의 친구 부부와 캠핑장에 놀러 가기로 했다. 자고 오는 건 아니고 2시부터 8시까지만 빌렸다. 소윤이는 캠핑이 처음이라 잔뜩 기대를 품었다. 소윤이가 처음이라면 나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소윤이 낳고 처음 경험하는 캠핑이었다. 물론 몸만 가는 무늬만 캠핑이지만. 아내와 친구들이 추진한 캠핑이었다. 이 날 괜찮냐, 장소 여기 괜찮냐 물어볼 때마다 건성으로 괜찮다고 했다. 내가 막 열심을 낼 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아내와 친구들이야 당연히 무지 친하고 아이들도 자주 만났지만, 남편들끼리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남편 중 한 명은 대화도 한 번 나눠 본 적 없었다. 막상 당일이 되니 아침에는 조금 귀찮기도 했다. 시작이야 다 그렇고, 오늘을 기점으로 조금씩 더 친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이제 좀 일어나여 좀"


소윤이는 깨우다 깨우다 지쳐서 한탄을 내뱉었다. 작정하고 늦잠 좀 자려고 했는데, 가만 두지를 않는다. 아내도 나랑 같은 각오였는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아주 늦은 아침, 아니 오히려 점심에 가까운 첫 끼를 먹었다. 아침도 늦은 데다가 가정 예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어느샌가 시간이 촉박해졌다.


"소윤아, 시윤아. 얼른얼른. 빨리빨리. 캠핑 가야지"

"아빠. 나두? 아치(같이)?"

"어. 시윤아. 당연히 시윤이도 가지"

"은나두 아치?"

"응. 누나도 같이 갈 거야"

"엄마두 아치?"

"그럼. 엄마도 같이 가지"

"아빠두 아치?"

"응. 아빠도"


나에게는 아주 재미없는 대화일지 몰라도 시윤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거다. 얼마나 재밌고 신기하겠나. 자기 입에서 나가는 소리도, 귀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도. 최대한 다양한 표현으로 대답해 주려고 하는데, 역시 쉽지는 않다. 성실한 대답의 의지를 끌어올리는 게.


마장 호수에 붙어 있는 카라반 캠핑장이었다. 카라반은 딱 2명 정도 잘 수 있는 작은 크기였다. 여러 명이 간다고 하니 아주 넓은 공간을 우리에게 내어주셨다. 2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으니까 해가 아직 머리 위에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애들은 소윤이와 시윤이를 포함해 다섯 명이었다. 자주 본 사이라 적응기 없이 바로 어울려 놀았다.


고기와 새우를 주메뉴로 거하게 한 상을 차렸다. 아마 아내랑 나 둘만 있었으면 진작에 영혼을 털렸을 텐데, 여럿이 있으니 좀 나았다.


'역시.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어'


애들 나이가 다 비슷하다. 6살 한 명, 5살 두 명, 3살 두 명. 그러다 보니 각 엄마, 아빠들의 입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비슷했다.


"00야"

"00야. 아니에요. 그건 하지 마세요"

"00야. 그만. 엄마가 여러 번 말했지?"

"00야. 마지막이야. 그만해"

"00야. 이리 와서 밥 먹고 놀아"


애들이 겸상하고 있을 때까지만 보면, 캠핑은 또 하나의 불나방 같은 행위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그러다 애들이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식탁에서 빠지자 놀라운 평화가 찾아왔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다들 나랑 비슷하게 느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계속 주의와 관찰이 필요했다. 뛰다 넘어지고, 놀다 싸우고, 가지 말라는 데 가고. 그래도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않으면 자기들끼리 복작거리고 잘 놀았다.


6살짜리 아내 친구 아들이 내일 생일이라 함께 생일 축하를 해줬다. 시윤이 생일 때 썼던 장식을 활용했다. 커다란 텐트를 배경으로, 볕 좋은 날 사진을 찍으니 꽤 그럴싸했다. 사진으로만 보면 제법 운치 있었다. 뭐 아이들을 담는 사진이 다 그렇듯, 현실은 아니었지만.


"00야. 여기 봐봐. 얼른. 얼른"

"00야. 가만히. 웃어 봐"

"00야. 이제 다 끝났다. 마지막. 마지막"


애들은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카라반에 들어갔다가, 모래 놀이도 했다가,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덕분에 엄마, 아빠들에게는 짬짬이 휴식 시간이 생겼다. 엄마들끼리 잠깐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떠났다. 애들은 여전히 잘 놀고. 아빠들끼리 어색하고 피상적인 몇 마디가 오갔다.


아빠 A(40) - 아빠 B(36)는 같은 교회 출신이고 찬양단도 같이 했다. 그렇다고 또 막 엄청 친하지는 않다. 나(35)는 아빠 A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기는 했다. 아내와 아빠 A도 같이 찬양단을 해서 어느 정도 친밀한 사이였다. 그렇지만 한 번도 얘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다. 아빠 B 하고는 따로 만난 적도 있고, 아빠 A보다는 덜 어색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깊다고 말할 사이는 또 아니었다. 마장 호수의 평온한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여운과 공백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해가 산 뒤로 모습을 감추니 캠핑의 진짜 매력이 이런 건가 싶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아쉽지만 우리는 곧 가야 했다. 컵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아빠 B네 가족은 아들(5살)이 이마를 살짝 다치는 바람에 먼저 갔다. 애들은 햇반에 김을 싸서 줬다.


다들 모래밭에 뒹굴어서 씻겨야 했다. 따로 샤워실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화장실에 달린 샤워기로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겼다. '샤워'라는 건 단지 물로 이물질을 씻어내는 과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잔뜩 흥이 올라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신나게 놀고 있는 애를 적절한 설득과 압박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부터, 잘 씻겨서 옷을 갈아입혀 내보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은 집에서 해도 힘들다. 하물며 이렇게 열악하고 불편한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시윤이의 사타구니와 똥꼬에서 모래가 후두두둑 떨어졌다. 소윤이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머리를 못 감긴 게 찝찝했다.


"소윤아. 캠핑 재밌어?"

"네. 우리 다음에 또 오자여. 그때는 자고 가자여"

"그래. 아빠도 캠핑 좋다"


소윤이를 씻기며 물었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나도 진심이었다. 무엇보다 애들이 어디 갇혀서 놀지 않고, 바람과 볕을 맞으며(비록 좀 탄다 할지라도) 흙바닥을 뒹구는 게 좋았다. 물론 덕분에 씻기느라 땀을 뻘뻘 흘렸지만. 두 녀석을 다 씻기고 나서 생각했다.


'그래. 텐트는 안 사는 게 좋겠다. 여기서 텐트까지 치고 걷으려면 장난 아니겠네'


무사히 두 녀석을 씻기고 자리를 정리해서 차에 태우고, 아내 친구네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밤이 되니 카라반 앞에 불을 피워 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이 많았다.


'아. 캠핑은 밤이 진짜구나'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엄마, 아빠랑 여행 가서 텐트 치고 자는 게 재밌긴 했다. 아빠가 되어서 처음 해 본 캠핑도 아주 재밌었다. 진짜 좋은 호텔이나 풀빌라 아니고서는 어설픈 펜션 잡고 노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대신 텐트를 직접 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아무튼 다음에는 꼭 1박을 해야겠다. 그리고 꿈을 꾼다. 애들 재우고, 아내랑 오붓하게 앉아 불 피워 놓고 밤 풍경을 바라보며 수다 떠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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