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7(금)
요즘은 처치홈스쿨 끝나는 시간이 거의 내 퇴근 시간 무렵이다. 그러니까 아침 9시 30분까지 가서 4시 30분까지, 거의 7시간을 있는 거다. 새삼 애들도 대단하고, 아내는 더 대단하고.
금요일이라 집에 잠시 들렀다가 금방 교회를 가야 했다. 조금이나마 시간을 더 확보해 보려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왔다. (버스 배차가 길어서 몇 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면 20분을 기다리기도 한다) 정류장의 알림 화면에 [200번 - 1 정류장 전]이라고 알려줬다. 이 버스를 보냈으면 일찍 나온 보람도 없이 20분을 기다려야 했는데, 참 다행이었다. 막 버스에 탔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방금 버스 탔는데. 여보는? 이제 끝났어?"
"어. 지금 끝나서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데. 여보 백석에서 내릴래여?"
"백석에서? 그럴까? 그런데 여보가 더 빨리 도착할 텐데"
"그럼 주엽으로 갈까?"
"그러던가"
그 후로도 여러 번의 통화로 만남의 장소를 조율해서 결국 마두에서 만났다.
"소윤아 안녕. 시윤아 안녕"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늦게, 많이 낮잠을 자서 최고의 상태였다. 시윤이는 나랑 눈만 마주쳐도 괜히 웃고, 히죽댔다. 시윤이가 표정과 눈짓으로 날 반겼다면, 소윤이는 끊임없는 대화로 날 반겼다.
차에 타고 얼마 안 있다가 소윤이가 나에게 얘기했다.
"아빠. 우리 밖에서 밥 먹을까여?"
"글쎄. 엄마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엄마. 우리 밖에서 밥 먹고 들어가도 돼요?"
"음. 엄마가 생각 좀 해보고"
잠시 후 소윤이가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밖에서 밥이 너무 먹고 싶은데 그래도 돼여?"
"그래. 오늘 밖에서 먹자"
아내와 나는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했다. 아내도 다이어트한다고 밥을 조금만 먹는다 그러고, 나도 뭐 시간의 압박이 있으니 딱히 욕구가 끓어오르지 않고. 왠지 고생만 하고 돈과 시간만 허비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한마디로 외식의 기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아내도 그랬을 거다. 다시 소윤이에게 말을 걸었다.
"소윤아"
"네"
"우리 그냥 집에 가서 밥 먹으면 안 될까?"
"싫어여"
"아니, 시간도 없고 딱히 먹을만한 것도 없어서"
"아. 싫어여. 밖에서 먹고 갈래여"
"소윤아. 무조건 싫다고만 하지 말고"
소윤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럴만하다. 기껏 먹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소리 하는 아빠가 야속했을 테다. 그걸 아니까 나도 고분고분 설득을 시도했다.
"소윤이가 그러게 울면 더 이상 얘기를 못하지"
"안 울 거에여"
"소윤아. 왜 밖에서 밥 먹고 싶어?"
"어. 그냥 밖에서 먹는 게 좋아여"
"왜?"
"밖에서 먹는 게 더 맛있어여"
"정말? 집에서 먹는 건 맛이 없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집에서 밥 먹는 게 싫어여"
"진짜? 소윤이 그 말은 굉장히 위험한 얘긴데? 집에서 밥 먹을 수 있는 건 엄청 감사한 거야. 아무리 밖에서 밥 먹고 싶어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얘긴데"
"집에서 먹는 것도 좋기는 한데 오늘은 밖에서 먹고 싶어여"
"집에서 먹고 대신 아빠가 핫초코도 타 줄게"
"그래도 싫어여. 밖에서 먹고 싶어여"
"그래. 알았어. 이건 엄마가 소윤이랑 그렇게 하기로 정했던 거니까 밖에서 먹자"
소윤이는 완강했다. 핫초코도 마다할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뱉은 말이 있으니까. "소윤아 대신에 가서 딴짓하지 말고 밥 열심히 먹어. 남기지 말고. 니가 밖에서 먹자고 했으니까" 따위의 치사하고 옹졸한 문장이 나도 모르게 턱밑까지 올라왔다. 이런 거 보면 인간은 참 악하다. 부모도 악하고. 다행히 이성의 통제로 입 밖에 나오자마자 후회할 그 말은 잘 참았다.
이번에는 아내가 나섰다.
"소윤아. 그럼 엄마 얘기도 한 번 들어볼래?"
"뭔데여?"
"엄마가 생각을 해봤는데 잘 들어봐. 집에서 먹지만 외식하는 느낌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뭐여?"
"집에 가는 길에 소윤이가 먹고 싶은 걸 하나 사서 들어가는 거야. 그걸 집에서 먹는 거지"
이런 허접한 수가 먹혀들었다. 역시 아빠들이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소윤이는 치즈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했고 집 앞 돈까스 가게에서 사기로 했다. 소윤이는 자기도 내리겠다고 했지만, 아빠 혼자 얼른 내려서 사 오겠다고 하고 나만 내렸다. 즉석에서 튀기는 거라 시간이 좀 걸렸다. 생각해 보니 그냥 소윤이도 내리라고 해서 같이 걸어가도 좋을 것 같았다. 나를 내려주고 뱅뱅 주변을 돌던 아내를 멈춰 세웠다.
"왜? 여보?"
"어. 소윤이는 그냥 내려서 같이 기다릴까 봐. 여보랑 시윤이는 가고"
"아. 그럴까?"
소윤이 쪽 문을 열어주고 소윤이가 막 내리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차. 그럼 시윤이는 어떻게 하지. 자기도 내리겠다고 난리 칠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시윤이는
"아빠. 나두 나두. 아치(같이) 아치"
라고 말하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길에 잠깐 세운 거라 굉장히 분주했다. 시윤이의 절규를 귀담아듣고 말고 할 정신이 없었다. 다시 전진하는 차 안에서 미세하게 시윤이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떻게 해. 아들 난리 났어"
"우리만 내렸다고?"
"어. 자기도 가고 싶다고"
"그럼 시윤이도 내려 줘. 여보는 먼저 집에 가고"
"괜찮겠어?"
"어. 코앞인데 뭐"
다시 만난 시윤이는 카시트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벨트를 풀어줬더니 세상에 둘 도 없는 행복한 웃음을 발사했다.
"시윤아. 아빠랑 누나만 가서 슬펐어?"
"네"
정말 집 앞(걸어서 5분도 안 걸림)이라 오히려 막간의 행복을 만끽했다. 오른쪽은 소윤이, 왼쪽은 시윤이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갈 때의 그 느낌은, 정말. 5분 남짓 한 시간에 누릴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소확행이 아닌가 싶다.
소윤이가 돈까스와 함께 먹고 싶다던 우동은 집에 있는 인스턴트 우동으로 대신했다. 햇반으로 주먹밥도 만들었다. 시윤이는 돈까스부터 집어먹었고 소윤이는 우동부터 공략했다. 둘 다 속 시원하게 먹지는 않았다. 특히 소윤이는, 기분은 매우 좋으나 밥은 깨작깨작 먹었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오늘 외식을 하지 않은 건 5월 들어 제일 잘한 일이군'
소윤이와 시윤이가 채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교회 갈 시간이 되었다. 아내가 안쓰러웠다. 둘 다 늦고, 풍성한 낮잠을 잤으니 이른 밤잠은 성취될 리 없었다. 내가 교회에 가고도 아내는 많은 걸 해야 했다. 밥마저 먹이고 핫초코도 대령해야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소윤이는 목욕이 가능한지 아내에게 물었고, 어차피 일찍 재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아내는 흔쾌히 수락했다) 부디 아내도, 아이들도 행복하게 눕길 바라며 집에서 나왔다.
드럼 연주를 마치고 내려와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때가 9시 40분쯤이었다.
[여보의 현재 상황은?]
[이제 책 다 읽고 누움]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10시가 코앞인데 이제 누웠다니.
[멘탈은 괜찮아?]
[응 좀 지칠 뿐 하핫]
다른 집에서야 이 시간에 애들 재우는 게 흔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아니다. 오랫동안 이른 밤잠의 삶에 길들여지니 이 정도 시간까지 애들이랑 함께 있으면 적응이 안 된다.
집에 갔을 때 아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방금 도적떼를 만났다 풀려난 얼굴로. 비염 때문에 정신없는 데다가 애들 재우느라 애를 많이 써서 뭔가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자서 들어가는 건 너무 억울하고.
그렇게 앉아서 카톡과 웹서핑을 하며 기력을 찾아가던 찰나 시윤이가 깨서 나왔다. 아내는 진심으로 좀 짜증이 난 듯했다.
"여보. 왜"
"그냥. 재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깨서 나오니까"
아내의 그 감정을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는데, 그게 무슨 느낌인지는 잘 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단 1분 1초도 아내만의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
시윤이에게 슬쩍 아빠랑 들어가서 자겠냐고 물었지만, 당연히 거절당했다. 아내는 모든 걸 체념하고 들어가서 누웠다. 살짝만 스쳐도 베일 듯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얼른 방 문을 닫고 나왔다.
여보. 오늘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