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보다 더 힘든 토요일

19.05.18(토)

by 어깨아빠

몇 주간 쉬던 부모교육이 다시 시작됐다. 아침 10시까지 가야 해서 주말이었지만 알람을 맞춰 놓고 일찍 일어났다. 아내와 나는 물론이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긴밀하게 협력한 덕분에 많이 늦지 않고 출발했다. 다만, 아내는 머리를 못 감아서 매우 불쾌해했다.


그냥 부모들만 가서 강의를 듣는 거면 모르겠는데 애들도 함께 있으니 계속 신경 써야 하고, 또 부모교육 말고도 하는 게 많아서 꽤 진을 뺐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내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일이 있어서, 앉아 있기가 더욱 힘들었지만 의지를 발동해서 자리를 지켰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친구, 누나가 많으니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잘 놀았다. 시윤이는 똥을 두 번이나 쌌다. 하아. 평소에 아내가 "오늘은 세 번 쌌어"라고 했을 때 더 깊이 공감하지 못한 것을 반성했다.


"아빠. 똥끄. 아파여"

"어. 조금만 참아. 아직 똥이 묻어 나오네"

"아빠. 아파여"

"어. 아빠가 살살할 게"

"아빠아. 아파여어"

"그래그래. 이제 다 했어"


빨리 기저귀 떼고 싶다.


원래 끝나고 다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가,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고 다들 지쳐서 가정별로 알아서 해결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쪽 동네에는 아는 곳이 전혀 없었다. 가끔 김밥을 샀던 분식집에 가서 먹으려 했는데, 마침 확장공사를 하느라 손님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이미 많은 체력을 소모한 상태에서, 목적지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건 무지 힘들었다. 그것도 시윤이를 안고. 어느 갈빗집에서 점심 식사를 팔길래 들어가기로 했다.


"여보. 안 하는 것 같은데?"

"진짜?"

"어. 그러네. 텅텅 비었네"


길을 건너서 반대편으로 갔다.


"아빠. 도대체 우리 어디 가는 거에여. 다리가 아파여"

"어. 조금만 참아. 엄마, 아빠도 지금 찾아보는 중이야"


짬뽕 전문점 하나가 있었다.


"여보. 저기서 먹을까?"

"그럴까? 애들 탕수육 시켜 주고?"

"탕수육 있으려나"


다행히 거기는 공사도 안 하고 있었고, 문을 닫지도 않았다. 자리에 앉아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주문했다. 기왕 들어온 거 맛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앉아 있었다.


"아빠. 왜 이렇게 안 나와여?"

"그러게. 아, 저기 쓰여있네. 여기는 우리가 주문을 하면 그때 만들기 시작한대"

"왜여?"

"그래야 맛있으니까. 만들자마자 먹어야. 그래서 조금 오래 걸린대"


그렇구나. 기대감이 상승했다. 기대는 만족으로 이어졌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다 맛있었다. 아내는 다이어트한다고 자기 먹을 양을 따로 덜어냈다. 난 저녁에 식사 약속이 있어서 적당히 먹으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숟가락과 젓가락을 손에 든 이상, 적당히는 없었다. 35년 내 인생에서.


소윤이랑 시윤이도 아주 잘 먹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만족스러웠던 식사를 마치고 차에 탔다. 아내는 시윤이를 재우지 않기로 했다. 밥 먹고 차에 탄 시간이 이미 3시가 넘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윤이는 타자마자 잠들려고 했지만 아내가 마구 깨웠다.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놀이터로 갔다. 비눗방울도 샀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신나게 잘 놀았다. 놀이터는 역시 아빠랑 와야 번쩍번쩍 들어 올려 주기도 하고, 받아 주기도 하니까 아마 더 재밌었을 거다. 애들은 잘 놀고 있었는데, 아내랑 나랑 얘기하다가 불꽃이 튀었다. 파바박.


"소윤아, 시윤아 이제 들어가자"


들어가기로 정한 시간이 다 되기는 했었다. 놀이터에서는 불꽃이었던 것이 집에 들어와서는 불길이 되었다. 자기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지 못한 데다가 아빠가 매몰차게 대한 것이 서러워 울던 소윤이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바로 울음을 그쳤다. 그러고 보니 애들 있을 때는 작은 티격태격도 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좀 특이한 경우였다. 불길은 금방 진화됐다. 그 자리에서.


밥도 먹여야 하고, 씻기기도 해야 하고. 아직 아내가 할 일이 많이 남아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소윤이, 시윤이 모두 눕자마자 잠들 것 같아서 걱정이 덜 되기도 했다. 어제도, 오늘도(그리고 내일까지도) 아내에게 힘겨운 밤 시간을 줘서 미안했다. 나의 쾌락과 영달을 위한 일은 아니지만.


저녁 약속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아내는 그냥 쉬고 있었다.


"애들은 괜찮았어?"

"어. 금방 잤지 뭐"


아내랑 대화하다가 머지않은 미래에 베란다에 쌓인 물건을 정리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애들이 있으면 5분 걸릴 일이 10분 걸리고 30분 걸릴 일이 1시간씩 걸리니까.


"언제 한 번 애들 맡기고 우리만 남아서 정리해야지"

"막상 애들 맡기면 이거 하고 싶겠어. 나가서 놀고 싶지"

"그건 그래"

"그냥 야금야금 조금씩 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


말 나온 김에 조금이라도 정리해보자며 베란다를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치우다 보니 베란다를 베란다답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솟구쳤고, 멈출 수 없었다. 묵은 짐들을 하나씩 꺼내 거실에 모았다. 베란다가 깨끗해질수록 거실이 수습불가였다. 버릴 건 버리고, 팔 건 팔고, 다시 정리할 건 정리하고. 베란다에 있을 때는 모르는 척 지내왔지만, 거실로 꺼낸 이상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시윤이가 깼다. 더 잠이 깨기 전에 아내가 잽싸게 다시 데리고 들어갔다. 다행히 아내는 금방 다시 나왔다.


과연 오늘 안에 끝이 나기는 하나 의심하며 치우는데, 이번에는 소윤이가 깼다. 이 녀석들이 이제 하다 하다 교대 근무를 서나. 방에서 나온 소윤이의 눈빛과 몸짓을 빠르게 분석한 결과, 왠지 다시 재우려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만약에 아내가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 못하면 낭패였다. 거실의 혼돈을 유발하는 건 쏟아져 나온 옷 때문이었는데, 아내만 옷 분류 작업을 할 수 있다. 버릴 것, 누구 줄 것, 여름에 입힐 것, 올겨울에 입힐 것 등등. 크기와 연식, 주변 인물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이었다. 난 손댈 수 없었다. 아내랑 소윤이 안 들리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보. 소윤이 그냥 여기 있으라고 할까?'

'그럴까'


"소윤아. 엄마, 아빠 지금 베란다랑 거실 정리해야 하는데 소윤이는 다시 들어가서 혼자 잘래? 아니면 여기 좀 있을래?"

"엄마랑 같이"

"엄마가 같이 들어갈 수는 없어. 이거마저 치워야 하니까. 대신 소윤이가 여기 앉아 있고 싶으면 엄마, 아빠 이거 다 치울 때까지 앉아 있어도 돼"

"여기 있을래여"


그리하여 소윤이에게는 매우 드문 일인 자다 깨서 엄마, 아빠랑 함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처음에는 졸려 가지고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더니, 조금씩 기운을 차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겁게 있다 들어가라고, 소윤이한테 말도 걸고 장난도 치고 그랬다. 아닌 밤중의 베란다 정리는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뻥 뚫린 베란다를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소윤아. 이거 봐. 이게 우리 베란다의 태초의 상태야"

"태초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어. 맞아. 그 태초"


물론 거실은 아직 난잡했다.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그런데 이 정도면 평소 우리 집 상태랑 비교하면 평균 정도야"

"맞아"


어쩌면 최악(?)의 상황일 때보다는 오히려 나았다.


아내랑 소윤이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소윤아. 잘 자. 사랑해"

"아빠 나도여. 아빠도 이따 잘 자여"


토요일이 증발한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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