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싶지 않은데 피곤하다

19.05.22(수)

by 어깨아빠

오후쯤 아내가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여보"

"어. 목소리가 왜 그래?"

"하아. 힘들다. 시윤이가 너무 안 자서"

"오래 걸렸어?"

"어. 한 40분 걸렸나 봐. 계속 울고"

"소윤이는?"

"밖에서 기다렸지"

"목소리가 꼭 어디 아픈 사람 같네. 괜찮아?"

"어. 그냥 뭔가 너무 힘들었어"


그나마 소윤이가 밖에서 잘 기다려서 다행이었다. 시윤이는 아마 너무 졸려서 잠투정을 부렸나 보다. 시윤이를 재우고 난 뒤 아내와 소윤이는 파스타를 해 먹었다. 소윤이가 파스타 먹는 걸 동영상으로 봤는데 뭔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그냥 고요한 가운데 아내랑 맛있게 파스타 먹는 게 행복해 보였다.


퇴근했을 때 아내와 시윤이만 있고 소윤이는 없었다.


"소윤이는?"

"어. 하람이네 갔어"

"아. 그래?"


덕분에 오늘은 시윤이에게 원 없이 퇴근 리액션(?)을 했다. 안아 올려서 돌리고 던지고. 소윤이가 있으면 자기도 해 달라고 하는데 이제 소윤이는 이런 거 함부로 하기 힘든 체급이 돼서 자제하고 있다. 시윤이라고 무한정해 줄 수 있다는 말은 또 아니다. 누나에 비해서 가벼울 뿐, 무게로는 3-4kg 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얘도 힘들다.


"아빠. 떠여. 떠여(또 해줘요)"


시윤이는 무한 반복을 요구했으나 적당히 하고 딴청 피웠다.


아내가 소윤이 데리러 간다고 하니 시윤이는 자기도 따라간다고 했다가, 내가 기차 장난감 가지고 그러자며 이내 뜻을 접었다. 레일 깔고 기차 스위치 켜면 레일을 따라서 도는 아주 단순한 그 장난감으로, 한참을 놀았다. 시윤이는 아주 좋아했다.


"아빠. 안 가여. 안 가여"

"어? 왜 안 가지?"

"(스위치 켜고) 아빠. 바바여(봐요). 가여"

"오잉"

"(깔깔깔깔)"


이걸 끝도 없이 반복했다. 그게 그렇게도 재밌을까.


아내와 소윤이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대충 예상은 했다. 아마 소윤이가 "조금만 더"를 외치며 나오지 않고 있을 거라고. 역시 맞았다. 소윤이는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놀고 싶은데 더 못 놀아서 우는 게 아니었다.


"거 봐. 소윤아. 엄마가 얼른 나오자고 했는데, 소윤이가 조금만 더 놀겠다고 자꾸 그래서 시간이 많이 지난 거잖아. 아빠 오늘은 좀 더 일찍 가셔야 된다니까"

"으아아아아앙. 아빠랑 조금 밖에 못 놀아서 속상해여"


하람이네 있을 때는 더 놀고 싶은 욕심에 밍기적댔는데, 막상 집에 왔더니 또 아빠랑 놀 시간이 없어서 속상하고, 시간을 돌릴 수는 없고. 뭐 그런 상황이었다.


"아빠. 몇 시에 나가야 돼여?"

"음, 긴 바늘이 1하고 2사이에 가면"

"그럼 나랑 좀 놀 수 있어여?"

"소윤이가 밥을 부지런히 먹으면 조금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얼른 먹어야겠다"


한 20여 분 동안 숨바꼭질을 비롯해 소윤이가 직접 창안했지만 하나도 재미없는 요상한 놀이까지, 꽉꽉 채워 놀았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제 갈게"

"여보. 갔다 올 게"


보통 수요일에는 진행이 빠르면 내가 나갈 때쯤 애들이 다 누워있을 때도 많은데, 오늘은 그에 비해 아내에게 떠맡긴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좀 미안했다.


축구하고 다시 마주한 아내의 얼굴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재우다 잠들어서 꽤 자다 나온 것 같았는데 크게 타격을 받지는 않은 듯했다.


"안 피곤하고 싶다. 왜 이렇게 졸리지?"


아내의 호소였다.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피곤한가 싶지만, 사실 별 거 한 게 없지 않고 많으니까 피곤한 거다. 아내는 수십 차례 하품을 하고 나서 자기도 자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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