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리지만 자고 싶지는 않아

19.05.26(주일)

by 어깨아빠

방과 거실을 들락날락했다. 시간도 많이 늦었고.


"소윤아. 오늘 아침은 계란밥 먹자"

"좋아여"


"아빠. 빠아. 빠아. 빠아여"

"알았어. 시윤아. 조금만 기다려"


계란을 프라이팬에 막 떨어뜨렸을 때쯤 아내도 일어났다. 일어난 시간도 좀 늦었고 그렇다고 딱히 다른 주일보다 서두르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다른 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참 신비하다. 주일의 아침 시간.


오늘은 시윤이가 졸린 기색이 없었다. 대신 자꾸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 예배 시간이니 조용히 하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아랑곳하면 세 살이 아니겠지) 너무 심해져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시윤아"

"네"

"아빠 눈 보고"

"(다른 데 보면서) 네"

"아빠 눈 보고 대답해야지"

"(다른 데 보면서) 네"

"시윤아. 얼른 아빠 눈 보고 대답하세요"

"(다른 데 보면서) 시더여"


시윤이의 몸을 휘감아 안아서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그냥 예배당 밖으로 나가면 오히려 좋아하니까, 뭔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주려고 고안한 방편이었다.


"아빠아아아. 아파여어어"

"시윤아. 그럼 저기 가서 아빠 눈 보고 대답할 거야?"

"아니여"

"그럼. 계속 여기 이렇게 있어야 돼"

"아빠아아아아. 아파여어어어"

"아니야. 시윤이 아프지 않아. 고집부리는 거야"

"네. 아빠"

"가서 얘기할 거예요?"

"네"


"시윤아"

"(다른 데 보면서) 네. 아빠"

"어? 아빠 눈 보고 대답하기로 약속했지?"

"(다른 데 보면서) 네. 아빠"

"얼른 아빠 눈 보면서 대답하세요"

"(다른 데 보면서) 네. 아빠"


다시 원점으로. 이 과정을 한 두어 번 반복하고 나서야 시윤이는 내 눈을 보고 대답했다. 눈을 보고 안 보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시윤이가 아내와 나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걸, 자기 나름대로 최후의 고집으로 삼은 거다. 그전까지의 대답과 태도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연기일 뿐이다. 눈을 보고 대답해야 진짜인 거다. 소윤이에 비하면 느낌상 훨씬 고분고분한데, 또 이런 똥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아무튼 요즘은 시윤이랑 예배드리는 게 쉽지 않다.


[밥솥에 문제가 생겨 금일 점심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예배 마치고 식당에 갔더니 이런 게 붙어 있었다. 교회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에는 식당이 별로 없어서 고민하다가, 차로 한 5분 떨어진 곳에 있는 [국수나무]에 가기로 했다. 돈까스와 국수를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소윤이에게 물었다.


"소윤아. 오늘은 무슨 말씀 들었어?"

"몰라여. 까먹었어여"

"에이. 잘 생각해 봐"

"까먹었다니까여"

"아닐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면 생각날 것 같은데"

"음. 아빠 생각났어여. 옛날에 이삭이랑 나삭(소윤이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두 명이었어여. 그런데 엄마가 팥죽을 끓였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달라고 했더니 그런다고 했어여. 그 사람 이름이 뭐져?"

"에서?"

"네. 네. 맞아여. 에서랑 그 동생은여?"

"야곱?"

"네. 맞아여. 야곱은 무슨 뜻이에여?"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야"

"아. 맞다. 야곱이 태어날 때 형의 뒤꿈치를 잡은 거에여.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래여....."


약간 뒤죽박죽에 가상의 인물도 등장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집중해서 들은 티가 났다. 평소에 하도 말을 잘하니까, 이렇게 뭔가 어리숙하거나 말하다 헤매는 걸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아내가 날 다시 교회에 데려다줬다. 모임도 해야 하고, 그거 끝나면 축구도. 아내는 딱히 약속이 없었다.

"여보. 갈 게. 전하하고"

"잘하고 와요"


모임이 끝날 때까지 한 3-4시간이 걸리는데, 모임이 거의 끝나갈 때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우리 교회로 감]


아내는 나와 헤어지고 나서 서울에 있는 어느 빵집에 갔다. 시윤이는 잠들고.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을 위한 건강하고 살 안 찌는 빵을 만드는 곳이란다. 그걸 먹으려고 여의도까지 다녀오다니. 아내의 빵을 향한 열정이 이 정도구나 싶었다. 애 둘을 데리고 오로지 빵을 목적으로 서울까지 나갔다 오다니.


굳이 교회로 또 온 건, 모임 끝나고 축구장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 나를 위해서였다. 축구장까지 바래다주는 특급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소윤이는 끊임없이 틈새시장을 공략했지만(예를 들면, 잠깐 내린다거나. 물 좀 마시겠다거나) 아내의 빠른 귀가를 위해 다 차단했다.


아내는 날 내려주고 곧장 집으로 갔다. 축구 마치고 들어갔을 때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물론 아내만. 두 녀석은 온 집안을 천지창조 이전의 흑암이 깊은 시기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는지 매 분, 매초 집을 더 어지럽혔다.


"여보. 미안"

"응? 뭐가?"

"아직 애들 밥도 못 먹인 상태니까. 여보 실망할까 봐"

"실망은 무슨. 전혀"


이건 뭐지. 축구하고 와서 언제나 미안한 기색이 깔려 있는 나에게 되레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서 나의 미안함을 증폭시키려는 고차원 전략인가. 아무튼 아내 말대로 많이 늦긴 했다. 저녁 먹이고, 씻겨서 재우려고 누운 게 이미 9시가 넘었으니까.


아내는 매우 지쳐 보였다. 육체는 물론이고 마음도. 그렇다고 뭔가 우울하고 어두운 기색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그냥 끊임없는 육아로 인해 말랑말랑한 감성이 메마른 상태랄까. 여지없이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다가 잠든 아내를, 오늘은 깨워야만 할 것 같았다.


"여보"

"......"


허벅지를 살짝 찌르며 다시 깨웠다.


"여보"

"어...어..."

"일어날 거야?"

"어. 일어나야지. 얘(시윤이)가 자꾸 움직여서"

"여보. 시윤이 이제 자. 여보도 잠들었고"

"그래?"


아내는 거실에 나와서도 소파에 앉아 계속 졸았다. 내가 두어 번을 더 깨웠다.


"여보. 졸리면 그냥 들어가서 자"

"아니야. 잠 깨고 있어"


아내가 다이어트를 선포한 후, 처음으로 치킨을 시켜 먹었다.(당연히 나의 꼬드김) 물론 아내는 다이어트 전에도 치킨 먹으면 두세 조각 먹는 게 전부였다. 오늘도 그랬고. 수다와 함께 치킨을 다 먹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안방에서 소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 보니 시윤이도 깼고. 어쩜 이렇게 자주 깨는가 싶어서 짜증이 나려다가, '그래. 다 먹고 난 뒤에 깨 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분히 자조적인 고마움이지만)


엄마 좀 그만 뺏어가라.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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