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고집의 발현

19.05.29(수)

by 어깨아빠

다행히 시윤이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아내였다.


[나는 오늘 왜인지 짜증지수가 높네. 작은 거에도 자꾸 짜증이 나서 다스리는 중인데 잘 안됨]


아내는 우스갯소리로 [당이 부족해서 그런가]라고 자문했다.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생각이 나는 대로 뭐든 집어먹었는데, 요즘은 군것질을 거의 안 하고 있으니. 날이 좋으니 시윤이 재울 겸 밖에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단 커피도 마시라고 말을 보탰지만, 혼자도 아니고 애를 둘이나 이끌고 나가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풀리겠나 싶긴 했다.


[시윤이는 일찍 재웠어. 오늘 대청소. 될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짜증은 여러 이유가 뭉치고 뭉쳐 유발되는 게 대부분이다. 아무 이유 없다는 말이 사실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뭐 하나 꼽을 수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고. 아내는 며칠째 어질러진 채 방치되었던 집을 치우는 걸 선택했다. 즐거워서라기보다는 난잡한 방과 거실을 보면 괜한 스트레스와 치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고, 어찌 됐건 깨끗하게 치우면 그 상태 자체는 아내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니까. 애 키우며 살림하는 엄마들의 딜레마랄까. 치우긴 싫은데 치워진 상태는 좋고. 그걸 남편이 해주면 참 좋겠지만, 남편의 손길은 또 성에 안 찰뿐더러 난잡함의 허용 범위가 아내보다 훨씬 관대해서 아내가 못 참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 얘기다.


[여보. 미안하지만 오늘 수요일이네. 혹시 이따 충격받을까 봐]

[알고 있었어. 다행스럽게도]

[난 언제든 집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어]


집에 최대한 빨리 가서 아내에게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축구를 포기하고 아내에게 시간을 주는 건, 차마 할 수 없었다. 물론 아내가 간곡히 요청했다면 그리했겠지만) 서둘러서, 10분이라도 빨리 가려고 유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이제 좀 있으면 도착해"

"여보 오면 한 30분만 애들 데리고 나가서 놀다 올 수 있어?"

"어. 왜?"

"아니, 애들이랑 나가기로 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네. 여보가 데리고 나가면 그 사이에 청소도 좀 더 하고"

"안 그래도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가서 놀다 오려고 했는데. 완전 통했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반갑게 날 맞이했다. 요 며칠 중 가장 격렬하게.


"아빠. 얼른 나가자여"

"아빠아. 나가여어"


정확히 말하면 '날' 반겼다기보다는 놀이터에 함께 갈 '관리자인 나'를 반겼겠지. 들어가자마자 나가자고 난리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계획대로 흐르지 않으니, 미리 축구 복장으로 갈아입고 놀이터로 갔다. 전동식 비눗방울도 챙겨 갔는데 시윤이는 거기에 빠져서 처음에 조금 놀고 나서는 놀이 기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녁도 아예 밖에서 먹였다. 식당에 가서 먹을까 하다가 그럼 노는 시간이 너무 줄어들 것 같아서, 주먹밥을 사다가 놀이터에서 먹였다. 둘 다 엄청 잘 먹었다. 주먹밥 두 개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식탁에 앉혀 놓고 먹일 때는 그렇게 먹어라, 먹어라 해도 세월아 네월아더니. 밖에서 먹이니 놀면서 먹어도 금방이네.


꽤 많이 놀았다. 아내가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 버리러 내려오면서 놀이터로 왔다. 엄마가 오면 집에 들어가는 거라고 미리 말해놨고, 소윤이도 아내가 등장하자 두 말 않고 바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윤아. 시윤이도 얼른 가자"

"엄마 안꼬"

"아. 엄마는 누나랑 갔으니까 아빠랑 가자. 얼른"

"시어여. 엄마 가치"

"엄마 누나랑 갔잖아. 아빠랑 가자. 얼른 와"

"시어여. 아빠 시어여"


그러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달래지지 않길래 안고 가려고 들어 올렸더니, 더 난리를 쳤다.


"으아아아아. 아빠아아아아. 엄마 가치이이이이"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량으로, 우렁차게도 울어댔다. 복도에 들어서면 너무 시끄러우니 약간 힘을 줘서 고개를 내 가슴 쪽으로 밀착시켰다. 그랬더니 그게 싫다고 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다가, 내 가슴을 콱 깨물었다. 아프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순간 후왁 화가 났다. 시윤이는 시윤이대로 더 난리고. 현관을 들어서며 딱밤을 몇 대 때렸더니, 아까는 최대치가 아니었다는 듯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대로 방으로 데리고 가서 훈육을 시작했다.


오래 걸렸다. 낮에도 아내랑 두 번이나, 한 30분씩 그랬다더니 저녁에도 비슷했다. 언제 또 이렇게 바뀌었는지 좀처럼 자기 고집과 분을 꺾지 않고, 내질렀다. 그저 우는 것과 몇 마디 내뱉는 것뿐이지만 거기에 어떤 감정이 담겼는지 대충 알 수 있다. 거기에 내 팔을 한 번 더 깨물었다. '이 녀석 봐라'하는 심정으로 더 강하게 결박했다. 결국은 울음과 성내는 것을 멈추고 "네. 아빠"하고 대답을 하긴 했다.


어느새 축구하러 갈 시간이 되어서 아내에게 넘겨주고 집을 나왔다. 축구하고 나서도 뭔가 매우 찝찝했다. 훈육하고 나서 뭔가 찝찝하거나 걸리는 게 있으면 제대로 된 훈육이 아니라던데. 아마 나도 화가 나서 너무 감정적으로 대한 것, 이 녀석을 복종(순종이 아니고) 시켜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혔던 것 등이 후회의 원천인 듯했다.


"시윤이는? 울면서 잤어?"

"울면서는 아닌데 서러움이 가시지는 않았지. 나한테서도 등 돌리고 잤어"


시윤이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비교적 말도 잘 들어서, 소윤이한테만 집중했는데(훈육에서만큼은) 이제 시윤이도 존재감을 드러내는구나. 고집이 고집이 아주 이런 똥고집이 따로 없네. 그러고 보면 소윤이도 어릴 때는 순하다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지금은 사실 순한 거 하고는 좀 거리가 있지 싶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게 소윤이를 한 번 키워봤는데도 왜. 도대체 왜. 시윤이도 똑같이 어려운 거냐는 말이다. 한 번 겪었으면 '하하. 이 정도야 뭐. 다 겪었던 거지' 이래야 되는데, 왜 늘 새로운 거지.


아무튼. 오늘은 뭔가 매우 개운치 않다. 내일 시윤이랑 눈 마주치면 시윤이가 날 보며 웃어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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