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전을 부치세요

19.05.30(목)

by 어깨아빠

낮에는 평범한 하루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서 밥 먹고, 좀 쉬며 놀다가 오후에는 스타벅스도 가고. 외출할 때쯤 시윤이도 자고. 덕분에 소윤이는 엄마랑 오붓한 시간도 보내고. 아내랑 아이들은 내가 퇴근할 때까지도 밖에 있었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보다 먼저 퇴근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금방 돌아왔다.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맞았는데, 소윤이 표정이 뾰로통했다.


“소윤아. 왜 그래?”
“아. 소윤이가 하람이네 집에 가기로 했었는데 못 가게 돼서 그래요”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하람이네 못 가서 속상했구나”


뭐 충분히 속상할만한 일이니까 별 다른 위로(?)나 조언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뒀다. 차라리 그대로 뒀으면 괜찮았을 텐데, 어쩌다 보니 또 몇 번 하람이네를 가려고 했다가 못 가게 됐다가를 반복했다. 쉽게 말해 소윤이 입장에서는 자꾸 줬다 뺏었다를 당한 거다. 당연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소윤이의 저녁 시간은 슬픔과 실망이 지배 아래 짜증과 떼가 춤추는 무대가 됐다.


큰 건 아니어도 자잘자잘한, 그러나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계속 훈육(혹은 잔소리)을 하게 됐고. 거기에 시윤이는 오늘도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짜증을 내며 어금니 꽉 깨물도록 만드는 태도를 보였다. 오늘만큼은 시윤이를 상대하며 몸과 마음의 힘을 뺏기기 싫어서 아내에게 맡겼다. 그러긴 했어도 퇴근해서 애들 자기 전까지 얼마 안 되는 시간을 계속 잔소리하고 싫은 소리 하느라 다 써버렸다.


“소윤아. 이게 뭐야. 아빠 퇴근하고 와서 너네랑 즐겁게 보내야 하는데, 계속 짜증내고 떼쓰고 그러니까 아빠는 계속 소윤이한테 뭐라 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다 가버렸잖아. 소윤이는 그러고 자면 행복해? 기분이 좋아?”


소윤이한테 푸념을 늘어놨다. 진심이었다. 스트레스가 막 차올랐다. 그냥 누구한테가 아니라 상황 자체가 뭔가 싫었다. 집에 왔는데 한 번 웃지를 못하고 계속 잔소리만 하고, 애들은 애들대로 울고. 이럴 거면 뭐하러 퇴근했나 싶고. 평소에도 이런 날이 없지는 않을 텐데(오히려 대부분 이런 날일지도 모르고) 오늘은 나도 좀 피곤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유독 그랬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데리고 들어가고 나서도 한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운동이고 뭐고 가기 싫었는데 그대로 앉아 있느니 운동이라도 하고 오면 스트레스가 풀릴까 싶어 억지로 집을 나섰다. 운동도 일부러 제일 힘든 하체 운동을 했다. 운동할 때는 좀 나아지나 싶더니 집에 돌아가 여전히 남은 육아의 공기를 들이마시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계속 마음을 억눌렀다. 이상한 곳(이를 테면 아내라던가)으로 엉뚱하게 표출되지 않도록.


“하아. 여보 스트레스가 안 풀리네. 어쩌지”


아내는 별 대답이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겠지. 혼자 스트레스받고 난리인데 거기다 무슨 말을 하겠나. 책상에 앉아 계속 마음을 가라 앉히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내일 옥수수전이라며. 내가 해줄까?”

“그거 하면 스트레스가 좀 풀릴 것 같아?”
“아니,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냥 여보 도와주려고”


아내는 반찬 만드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재료는 아내가 이미 다 썰어놨다. 거기에 부침가루랑 계란만 풀어서 섞으면 되는 거였다. 물론 부치는 것까지. 애들 먹을 거라 기름 적게 쓰고 달라붙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스트레스받을까 봐, 기름도 막 엄청 흥건하게 둘렀다.


‘에라 모르겠다’


양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꽤 힘들었다. 그래도 아내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아무 생각 없이 기름 두르고 전 부치고 뒤집는데만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스트레스도 좀 달아났고. 그래도 받은 만큼 (누구, 어디에든) 돌려주지 않은 게 어디냐. 그걸로 자족하고 있다.

​역시, 가끔은 단순 반복 노동이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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